산토리니 지명의 기원
소설 속 주인공 이레네는 그리스 혈통의 소녀이다. 그녀는 험준한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카파도키아, 세속의 소란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땅에서 수도사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레네'는 부모가 신중하게 지은 이름이었다. 4세기의 순교자, 테살로니키의 성 이레네—부모는 딸이 그 성인처럼 마음속에 평화를 품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걷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이름의 역사적 유래를 알아보자.
테살로니키의 성 이레네: 순교자의 생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이레네(Εἰρήνη, Eirēnē)는 제우스와 정의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매 중 한 명으로, 평화와 번영을 관장하는 여신이었다. 그녀는 풍요의 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전쟁이 끝난 후 찾아오는 평온과 질서를 상징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문화권에서 오랜 세월 동안 평화와 조화를 뜻하는 고귀한 의미를 지녔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이교 신화 속 여신의 이름은 새로운 종교적 의미로 재해석되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세례를 받을 때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하는 새 이름을 받았는데, '이레네'는 그리스도가 가져온 영적 평화를 의미하는 세례명으로 인기를 얻었다.
소설 속 주인공 이레네의 이름은 4세기 초기 기독교 순교자인 테살로니키의 이레네(Irene of Thessaloniki)에서 유래했다. 그녀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 시기에 활동한 실제 역사적 인물이다. 현재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 모두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전승에 따르면, 그녀의 본래 이름은 페넬로페(Penelope)였으며 이교도 왕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여섯 살 때부터 기독교에 노출되지 않도록 그녀를 높은 탑에 격리했다. 그러나 아펠리아누스라는 이름의 늙은 교사가 그녀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임명되었는데, 그는 마침 기독교인이었다. 아펠리아누스는 수업 시간에 그녀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의 덕목을 가르쳤다.
페넬로페가 사춘기에 접어들자, 부모는 그녀의 결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비둘기 한 마리가 창문으로 날아와 부리에 올리브 가지를 물고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독수리 한 마리가 부리에 꽃 화환을 물고 날아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까마귀 한 마리가 뱀을 물고 날아와 탁자 위에 떨어뜨렸다. 페넬로페는 이 모든 일에 당황했고,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아펠리아누스는 비둘기는 그녀의 교육을, 올리브 가지는 세례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화관을 쓴 독수리는 미래의 성공을, 마지막으로 까마귀와 뱀은 그녀의 고통과 슬픔을 예고한다고 말했다.
페넬로페는 기독교에 귀의한 후 세례를 받으며 그리스어로 '평화'를 뜻하는 이레네(Εἰρήνη, Eirēnē)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는 단순한 개명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의 선언이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세례명은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운 삶의 시작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이레네는 아버지가 정한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신앙을 지키고자 하였다.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대박해(303—313년) 시기, 기독교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결국 이레네 역시 신앙 고백으로 인해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순교 전설과 기적
이레네의 순교 이야기는 여러 기적적 요소를 포함한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뱀과 독사로 가득한 구덩이에 던져졌으나 천사의 보호로 무사하였고, 달구어진 청동 소(brazen bull) 안에 갇혔지만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고문 방식들은 실제로 로마 제국 시대에 사용되던 처형 도구들이었다. 특히 청동 소는 기원전 6세기 시칠리아의 폭군 팔라리스가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잔혹한 고문 기구였다.
이러한 기적 이야기는 초기 기독교 순교록(martyrology)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따른다. 순교자가 겪는 고통과 그것을 초월하는 신의 은총을 강조함으로써, 신앙의 힘과 순교자의 영적 승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레네의 기적은 수많은 이교도들의 개종을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이레네는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했다. 테살로니키는 그녀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로 기록되며, 이후 이 도시에서 그녀를 기리는 신앙 전통이 확립되었다. 그녀의 축일은 카톨릭의 그레고리력으로는 5월 18일, 정교회 달력으로 5월 5일이다.
라스카리스가 이름을 묻자, 이레네는 "성 이레네와 같은 이레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레네 황후: 8세기 비잔티움의 여성 통치자
테살로니키의 순교자 이레네와는 별개로, 8세기 비잔티움 제국에는 또 다른 의미에서 유명한—어쩌면 악명 높은—이레네가 있었다. 이레네 황후(752–802, 재위 797–802)는 비잔티움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녀는 768년 콘스탄티노플로 와서 레오 4세와 결혼하고 황후가 되었다. 그녀는 곧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를 낳았다.
이레네 황후는 독실한 성상숭배자였다. 전승에 의하면 그녀는 몰래 두개의 성상을 소지품 속에 숨기고 있었다는 이유로 황제 레오4세에게 잠자리를 거부당했다. 남편 레오가 죽자 그녀는 아들 콘스탄티누스의 섭정이 되어 10년간 제국을 통치한다.
그러나 군대가 그녀를 인정하지 않자,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에 의해 폐위되어 외딴 교외의 궁전으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797년, 그녀는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번에는 아들을 역으로 폐위시키고 비잔틴 제국 최초의 여성 독재자가 되었다—뜨겁게 달군 청동 그릇으로 아들의 눈을 지져 실명시킨 채.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통치한 여제는 비잔티움 제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녀가 제국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해 성상파괴운동(Iconoclasm)을 종식시키고 성상 공경(iconodulism)의 전통을 복원한 것이다. 이 결정은 당시 마찬가지로 성상 공경을 찬성하던 카톨릭의 환영을 받았고, 이후 동방 정교회의 신학과 예배 전통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두 이레네는 시대는 달랐지만, 모두 '평화'라는 이름의 의미를 각자의 방식으로 구현하였다. 순교자 이레네는 고난을 통해 신앙의 평화를, 황후 이레네는 권력을 통해 교리의 평화를 추구했다. 물론 후자는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수도자이자 역사가였던 '증거자 테오파니스'(Theophanes the Confessor, 758-817)는 그녀의 권력 편향을 못마땅히 여겨 그녀를 못생긴 추녀로 묘사하기도 했다.
산토리니: 성 이레네의 이름을 간직한 섬
현재 휴양도시로 유명한 산토리니(Santorini)는 그리스 에게해 남부 키클라데스 제도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그 이름이 '성 이레네(Santa Irene)'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13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 시기에 확립된 명칭이다. 라틴어 'Santa Irene'가 이탈리아어 발음을 거쳐 산토리니로 변형된 것이다.
섬에는 성 이레네에게 헌정된 교회가 있었으며, 이 교회는 베네치아 상인들과 선원들에게 중요한 항해 랜드마크 역할을 하였다. 중세 지중해 해상 무역에서 교회와 수도원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항로 표지와 피난처, 보급 거점으로 기능했다. 성 이레네 교회 역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며 섬 전체의 명칭이 되었다.
'이레네'라는 이름의 지리적 확산
성 이레네의 이름은 산토리니뿐 아니라 비잔티움 세계 전역에 흔적을 남겼다. 콘스탄티노플(現 이스탄불)에는 '성 이레네 교회(Hagia Irene)'가 세워졌다. 이 교회는 하기아 소피아와 함께 비잔티움 제국의 주요 성당 중 하나였으며, 현재까지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비잔티움 시대 건축물이다.
이 교회는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에 건립되었다. 하기아 소피아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콘스탄티노플의 대성당 역할을 했다. 532년 니카의 난으로 소실된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재건했고, 740년 지진 피해 이후에는 콘스탄티누스 5세가 복원했다. 오스만 제국 정복 후에도 이 교회는 모스크로 개조되지 않았다. 대신 무기고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오늘날까지 박물관과 콘서트 홀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이레네(평화)'라는 이름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지중해 세계 전역에서 성인과 교회, 지명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성인 공경 전통이 비잔티움 문화와 지리적 경관에 깊이 각인되었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 이레네의 캐릭터 역시 이러한 역사문화·종교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두 캐릭터들과는 달리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지성적인 새로운 서사를 써내려 갈 것이다.
트리보니안이 이름을 묻자, 이레네는 "성 이레네 교회와 같은 이레네"라고 답한다.
연표
고대 그리스 에이레네 (Eirēnē), 평화와 번영을 관장하는 여신(제우스와 테미스의 딸). 이름의 어원적 기원
303년 테살로니키의 성 이레네. 로마의 대박해 시기, 신앙을 지키려 순교한 초기 기독교 성인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성 이레네 교회(Hagia Irene)'를 건립
485년 소설 속 주인공 이레네 에이레니케(Irene Eirenikē) 출생
787년 이레네 황후, 제2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성상 공경(Iconodulism)을 복원.
797년 이레네 황후 단독 집권, 비잔티움 제국 최초로 여성이 황제(Basilissa) 칭호를 사용.
13세기 산토리니 명칭 확립. 베네치아 지배 시기, 섬에 헌정된 교회 이름 '성 이레네(Santa Irene)'에서 유래
참고자료
Jonathan Shepard (ed),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Byzantine Empire c. 500-1492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125.
Elizabeth Jeffreys, John F Haldon and Robin Cormack (eds), The Oxford Handbook of Byzantine Studies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1008-1009 'Irene'
‘Irene of Thessaloniki - OrthodoxWiki’ https://orthodoxwiki.org/Irene_of_Thessaloniki
추가: 역사적으로 이레네 이름을 가진 성인은 카톨릭과 정교회史에 여러명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설명한 '테살로니키의 이레네'인데 이와 유사한 '마케도니아의 이레네'도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둘의 이야기가 전승되면서 섞이거나 애초에 하나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마케도니아의 이레네가 테살로니키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사실이 그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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