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무

나무에게 나는 무엇일까

by 요히

앉는다. 창이 있다. 틈새 멀리 무언가 보인다. 움직인다. 푸른 머리를 한 무엇이다. 바람이 안았는지. 살랑살랑. 춤을 추는 듯하다. 그 누구보다 유연해 보인다. 서두르지 않는다.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퍼지는 것보다도 느린듯하다. 그 움직임은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기린. 그의 결코 빠르지 않은 듯한 그리고 우아한 달리기다. 이 움직임은 본다 한들 보이지 않는다. 그 움직임과 내 마음의 속도가 같을 때 만난다. 그처럼 고요해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무다.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주의를 끄는 것은 나무다. 언제서부턴가 살랑이는 나무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춤을 추고 있었을 테지. 너는. 밤낮이. 계절이. 해가 바뀔 때에도. 내가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 때도. 그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쉬워서였을까. 나무를 바라보지 않았던. 그래서 마음먹는다. 이제서라도 춤추는 나무를 보겠다고.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너를 바라보겠다고. 너는, 어느새 그런 존재가 된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 입구에는 큰 대왕 할아버지 같은 나무가 서있다.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듯이. 전에 살던 동네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 매미가 우는 때에 그 아래서 쉬고 있으면 마음이 그 계절로 가득해졌다. 나무는 나에게 무엇일까. 이곳 아프리카 가나에는 그런 나무가 어딜 가든 곳곳에 있다. 기린만큼이나 키가 크고 몸통이 코끼리 다리 같다. 가나 사람들에게는 나무가 무엇일까. 어떤 의미가 있기에 베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을까. 흔들리는 나무를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는다. 잎에 아름다움이 스민다.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바람이 분다. 피부에 부드럽게 닿는다. 그 바람을 원한다. 그의 심심을 덜어줄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춤추는 나무를 오늘도 내일도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안 하는 건 쉽다.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만. 매일 아침 떠오르는 생각으로 3페이지를 채우는 모닝페이지가 그렇다. 마음만 지속하고 싶다. 좋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첫 문장을 쓰기 전까지도 망설인다. 하루만 건너뛸까. 그러다 이틀을 쓰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돌아온다. 쓰던 것이니 돌아오는 것도 마냥 어렵지만은 않다. 모닝페이지를 오랫동안 쓰지 않은 적이 있다. 다시 쓰려니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 같았다. 잠시 쉬는 건 괜찮을지 모르겠으나 오래 하지 않으면 습관을 잃는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않는다. 우두커니. 나무의 허리에 손을 올려본다. 잘 있었니. 너는 불행한 걸까.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니. 아니면 행운인 걸까. 누군가에게 베이지 않았으니.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베이고 있을까. 누군가에 의해서. 누군가는 결코 누군가가 아니다. 나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매일 나무를 벤다. 그렇게 사랑하는 나무를 베고 있다. 매일 바라보며 아름답다 여기는,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타령을 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음을 편안케 해주는 나무를 베고 있다. 매일 상자를 뜯으며, 종이를 쓰며, 포장지를 풀고, 가구를 사용한다.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도 습관을 들이는 데 며칠 몇 년이 걸린다. 나무는 어떨까.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 같은 나무는. 훼손된 자연이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베이고 베인 나무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오늘도 내일도 오염되는 물이 강이 바다가 다시 깨끗해질 수 있을까. 지구의 자정 능력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대단할까. 지구도 습관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환경은 그런 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데에는 적합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어야 했으며 그에 따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소비라는 걸 해야 했다. 소비는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그 소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결코 생각게 하지 않았다. 다만 다음의 소비를 부추길 뿐이었다. 친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곤 한다. 때론 이미 늦었다는 이야기도. 그럼에도 사실 현실에선 크게 와닿는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 삶은 여전히 돌아가며 나는 전과 같이 쓰고 버린다. 그리고 또다시 쓸 것이다. 바람은 더 많고 더 큰 바람을 낳았다. 지금도 여전하고 앞으로도 결코 그럴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생활을 할지 고민하지만 어떻게 하면 나무가 더 잘 자랄지는 한 번을 생각지 않는다.

하루에 베이는 나무가 자라는 대지의 넓이는 몇 만 헥타르에 해당되고, 아마존은 해외직구 사이트가 아니라 우리 지구의 허파인데 그곳의 면적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며, 지구온난화의 시계는 몇 시이고, 지구의 이미 몇 도 이상 올랐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이미 하고 있지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정보도 지식도 없을뿐더러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내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이대로 가는 게 맞는 것인지 생각해 볼 여지는 충분치 않을까. 살면 살수록 정답이 없다는 걸 느끼는 요즘의 삶인지라 그런 길이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 나에게는 소비할 권리가 있는가. 지구에 짐을 지어주고 지금의 삶을 불평하며 더 나은 무언가를 바랄 자격이 있는가. 들어줄 이 없는 질문을 허공에 던진다. 지금도 어디선가 춤을 추고 있을 당신을 앞으로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우아한 그 자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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