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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수 Aug 19. 2020

그렇기에 나는 죽을 것이다 _ 1

나는 죽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이 한마디를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랬기에 ‘아프다’ – 부터 - ‘너무 아프다’까지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고, 이젠 이름 짓길 포기한 수많은 것들이 나를 짓누른다.
 
 언제부터였더라- 내가 죽고 싶었던게.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것이다. 처음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친구들이 괴롭혔기에.
 참으로 단순해서 꽤나 확실한 고통이었다.

어느 날 교실에 가니  친구가 날 밀쳤다. 소위 말하는 아이들끼리의 기싸움이었다. 허나 당시에 나는 그에 대항하기에 너무 소심했고,  그것은 일방적인 폭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런 친구들의 숫자가 하나둘 늘어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들에게 ‘왕따’라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 죽음을 떠올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나는 죽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품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그저 아파하는 걸 반복하면 됐을 뿐, 특별한 과거사나 불우한 배경이 그 원인이 되진 않았다.
 어린 마음에 싹튼 그 감정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나는 죽음이 낯설지만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후의 기억으론, 나를 괴롭히던 한 친구가 날 자신의 집에 초대한 것이다.
 ‘왜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심 속으론 기뻤다.  친구 집에 가는 건 너무도 오랜만이었으니까. 하굣길에 항상 제일 늦게 교실에서 나오는 내겐 그들의 등만이 친숙한 존재였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작은 기쁨이 마음속에 일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쓸데없었단 걸 깨달은 건 방과 후 그 친구의 방에서 나뒹굴었을 때였다.
 
 괜찮은 건가- 뭐, 좀 아프지만 그래도 괜찮은 거겠지- 그래도 아프다.
 누군가 들으면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다. 부정하진 않겠다. 허나 단지 너무 순수했을 뿐이었다고, 이젠 다 자란 과거의 나에게 그런 한마디를 부탁한다.
 
 진실은 아프니까.
 
 이렇게 너무도 단순한 내게, 죽겠다는 생각은 일종의 원동력이 되었다.
 
 ‘원동력 : 어떤 움직임의 근본이 되는 힘’
 
 근본이라면 근본이었겠지. 죽기 위해 어떻게 죽으면 덜 아플까- 부모님께서 덜 슬퍼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기에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랬기에 얼굴에 일말의 생기가 돌았다.
 웃기는 일이었다. 죽고 싶어지니 삶에 기운이 돋는다는 게.
 
 학교 옥상은 잠겨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은 경비아저씨께서 금방 발견하실 터였다.
 인터넷에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죽지 마라’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은 내 유일한 원동력을 앗아가려고 했다. 그렇기에 그것을 믿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학교 화장실이었다. 옥상 다음으로 높은 5학년 화장실. 누구나 열 수 있는 창문으로 친구들이 뛰어내리라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그때 종이 쳤었나- 아무튼 어떻게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낡은 나무문을 열고 변기통 위에 걸터앉았다.
 여기서 죽으면 걔들도 놀라려나. 엄청 놀라면 좋겠는데. 기왕이면 부모님께 혼나면 더 좋고.
 결국, 그곳이 죽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갑자기 떠오를 때 여기서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잠을 잤다.
 
 다음날은 주말이었다. 토요일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 다음 날인 주일은 교회에 갔었다.
 10시 초등부 예배를 마치자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 엄마였다.
 
 친구 엄마는 친구가 죽었다고 했다.
 내 유일하다 싶은 친구였다. 걔가 입원한 게 4학년 말이었던가? 그 친구가 학교를 떠난 이후로 나는 혼자가 된 것 같다.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긴지 2주째,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지난주에 문병을 갔을 땐 괜찮은 것 같았는데. 그렇게 아픈 거였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었다.
 걔는 알았을까. 알았다면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알아볼 수 없이 부은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병문안 선물로 가져간 게임용 카드를 누워서 구경하는 친구의 얼굴이 생생했다.
 친구의 부모님은 엄청 슬퍼하시겠지. 친구를 살리기 위해 죽도록, 혹은 그 이상으로 노력했을 텐데 결국은 떠나보내게 됐으니.
 
 뭔가 허무했다. 친구가 갑자기 죽어서?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사람이란 존재가 너무도 나약해서? 그때엔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답은 ‘그냥’이었다. 나는 죽고자 했고, 그는 살고자 했지만 먼저 떠난 건 그였다.
 그랬기에 순간적으로 생명이란 것에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생명은 어떠한 존재이고, 죽음은 그 존재를 없애는 것이라는, 그 시절 아주 단순했던 나는 죽음에 대한 일말의 단순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사이코패슨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이코패스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진 몰랐지만, 왠지 내가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를 것이었다.
 그랬기에 내게 죽음이란 게 더더욱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 순간 눈물이 났었단게 기억난다. 그것이 타인의 죽음에 슬퍼해야 한다-라는 의무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진심으로 친구의 죽음에 슬퍼해서였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을 뿐이었다.
 집에 가는 내내 그 친구를 떠올렸다. 점심은 먹지 않겠다고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야 맞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방에 들어가 잠에 들었고 다음 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일말의 원동력으로 등교하였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첫 번째 죽기 위한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그저 어느 날 아침, 내 안의 원동력이 희미해져 학교에 가지 않았고, 선생님은 자신의 쉬는 시간 내내 동네에서 나를 찾아다니셨다고 한다. 그리고 반 친구들은 온종일 수업 대신 그 선생님께 혼났다고 한다. 통쾌하진 않았다. 그런 감정을 아직 배운 적이 없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어제처럼 등교하는 척 집을 나왔다. 부모님의 휴대폰은 선생님 전화번호를 수신 거부 해놓았었다. 하지만 내 계획은 등교하는 같은 반 친구한테 들켜 무산됐다. 항상 무리 지어 다니는 여자애들 중 한 명이었다.
 
 그 친구는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깜짝 놀랐다. 내 이름이 또래의 입 밖으로 나왔다는 게 위화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아주 어릴 적 이후로 대화해본 적이 없는 여자애였다.
 나 때문에 꽤 혼났을 텐데, 화를 내려나? 제법 겁을 먹은 채 그 친구 쪽으로 다가갔다.
 
 “등교하는 거야?”
 
 걱정과는 달리, 그 친구는 나를 향해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뒤따라오는 그녀의 친구들도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위화감이 들었다. 나쁜 것과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 섞여 있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그들과 등교를 해 반에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에 다른 친구들은 없었다.
 
 긴장됐다. 뚜렷한 감정을 아직 잘 느껴본 적 없는 나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저 그들이 두려웠다. 정확힌, 그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날 뭐라고 생각할까. 안 좋게 생각해서 또 따돌리겠지.
 
 허나 내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별문제 없이 아침 수업이 지나고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단지,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이 그 괴롭힘을 멈추었을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수업이 되었다. 무슨 시간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선생님께서 영화를 트셨다. 귀여운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선생님께서는 영화를 틀기 전, 잠시 화면을 멈추시고 다들 어제 숙제로 내준 것을 꺼내라고 하셨다. 친구들은 가방에서 제각각 방식대로 접힌 종이들을 꺼냈다. 편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두 명씩 내 책상으로 앞으로 와 그 편지들을 건네주었다.
 
 그중에는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도 있었다. 아침 등굣길에서와 비슷한 위화감이 들었다. 하지만 특별한 생각을 하진 않았다. 예컨대 당황이라던가, 슬픔이라던가, 감동, 분노 같은 감정들 말이다. 나는 그저 그렇게, 마치 떨어지는 빗방울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바보라도 된 듯, 그 순간 내 안에서 어떠한 감정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된 나는 그 시절의 내가 단지 약했기에 그랬을 거라, 그렇게 추측해볼 뿐이다. 약했기에 내가 한 생각들을 믿지 못했고, 그랬기에 생각하는 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절대로 확실한 답은 아닐 것이다. 아직 어린 우리가 알다시피, 어린 순간에는 어린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을 터이니 말이다.
 
 서른 명 남짓한 친구들의 얼굴이 지나가자 내 책상은 많은 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받아보는 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편지란 걸 받아본 지가 얼마 만인지 몰랐다.
 
 몇몇 편지들에는 낯선 이름들도 있었다. 우리 반인지도 몰랐던 친구, 나를 괴롭히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날 괴롭혀서 미안하다는 친구, 또 내가 괴롭힘당하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미안하다는 친구. 그들의 편지에는 하나같이 ‘미안해’, ‘앞으로’, ‘잘할게’라는 등의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아니, 왠지 모든 편지가 그런 단어들의 반복이라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은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기대’라는 걸 품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덕분에 나는 그들과 별 어려움 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정말 나를 친구라 여겼는지 확신이 서진 않지만, 그 당시의 내게 나는 그들과 어느 정도 ‘친구’라는 관계라 일컬을만한 사이가 되었다. 때때로 카드게임을 같이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름 별 탈 없이 나머지 5학년을 마쳤다.
 
그리고 6학년으로 진학한 날 순간 깨달았다. 정확힌, 우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죽지 않았다.’
 
먼저 떠오른 것은 의문이었다.
 
‘어째서지?’
 
그것은 두 가지를 향한 의문이었다. 첫째론 왜 죽지 않았는지. 둘째는 어떻게 내 안에서 죽음이란 존재를 잊었는지.
아마, 그 두 가지 질문들의 답은 같을 것이다. 또한, 단순했던 내게 꽤나 어울릴만한 단순한 답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었기에.’
 
딱히 행복해졌다거나 살고 싶어졌단 생각이 들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내 안과 밖에서 반복되었던 아픔들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 일종의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 죽음은 그것을 떠올리기가 어렵지만은 않았기에, 잊는 것 또한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내 첫 번째 죽기 위한 계획은 수포가 되었고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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