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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직가시

어느 사람

을 기리며

by 준수

쿵, 소리를 내며 닫힌 철문을 뒤로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천장이 펼쳐진다.

내가 어쩌다 이곳에 왔나, 고민하며 그는 걸음을 옮긴다.

좀 전까지 펼쳐졌던 아름다운 저녁노을은 더는 없었다.

다만 불규칙적으로 나열된 콘크리트 패턴들이, 밤하늘 별빛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별빛을 따라가다 보면 늘 집에 도착했었다.

코끝 찡한 추위를 뚫고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는 성취감과, 어느새 그 온기로 녹아내린 몸을 다시 차가운 맥주로 식혀줄 때면, 늘 그 별빛과 이 콘크리트 천장을 겹쳐 보였다.

그러면 다시 내일을 살아갈 용기가 생겼고, 또 아침엔 밤을 그릴 수 있었다.


밤을 그리는 건 참 쉬운 일이다. 어느 계절에도, 늘 어둠은 찾아오니 단순히 시간을 죽일 방법만 찾으면 될 일이다. 그가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한 건 그 이유에서였다.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해 별달리 수학에 자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좋아하던 소설책 바로 옆에 나열된 바보 같은 표지의 수학책이 그 첫 시작이었다.


그는 '안 그래도 세상은 문제 가득인데, 사서 고생이다'라는 말로 수학을 설명하곤 했다. 그렇다고 과학을 경멸하진 않았다. 적어도 천문학이나 우주를 담은 그런 학문들 말이다. 여느 때처럼 저만치 소나무 보이는 카페에 앉아 그는 수학문제를 풀었다. 그러면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이 큰 구름에 가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그 구름이 걷히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정답이 빤히 보이더라도 굳이 굳이 돌아가는 방법을 좋아했다. 피타고라스나, 무슨무슨 공식이나, 그는 그렇게 쉽게 답이 보이는 걸 싫어했다. 그건 로봇청소기의 '작동'버튼을 누르는 것과 똑같을 뿐이었다. 그 기곗덩어리가 온 집구석을 휩쓸면서 세상엔 스스로 청소조차 못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는 연필을 깎고, 지우갯가루를 불며 턱끝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창가로 노을빛이 희어지면 저만치 콘크리트 패턴이 펼쳐졌기 때문에 그는 매일 일곱 시 정각에 카페를 나왔다. 어김없이 그 콘크리트 줄기를 따른다. 늘 순서는 같다. 철문을 열고, 도로 닫는다. 그럼 늘 그렇듯, 아름다운 별줄기가 온 천장을 뒤덮는다. 그는 이 삶을 좋아했다. 그는 이 밤하늘을 사랑했다. 늘 그래왔듯, 그는 수학문제를 풀고, 별하늘 아래를 걷다,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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