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교사들은 자녀의 입학식에 어떻게 할까? 생애 한 번뿐인 입학식, 가야하지 않을까? 우리 반 학생들을 만나는 첫 날, 담임교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날이다. 매우 갈등하겠지만 보통은 내 아이 보다 우리 반 아이들을 선택한다. 교사들의 책임감은 생각보다 무겁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입학식을 부탁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도 있을 것이다.
아이와 같은 학교에 가기 위해 이사를 했다. 초등학생 1학년은 생애 첫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과밀학학급, 대규모 학교에서는 쉽지 않다. 오직 학군지 주소만 확인한다. 교사라면 공문을 작성하고 저녀를 데리고 다닐 수 있다. 이 또한 과밀 지역에서는 어렵다. 그래서 학교 바로 앞으로 이사를 강행했다.
나는 아들의 입학식에 참여를 했다. 같은 학교 였기 때문일까? 사실 같은 학교여도 10분 쉬는 시간에 잠시 들릴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첨석은 어렵다. 학부모공개수업 마저 공개수업 시간이 같으면 불가능하다. 당시 나는 본의 아니게 입학식 담당자였고, 사회자였다. 보통 아이가 1학년 때, 휴직을 하기도 하는데 교무 업무를 맡았다. 아이가 1월 생이라 큰 걱정을 안했던 것도 있다. 저학년 때는 1월 생과 12월 생의 발달 정도의 차이가 매우 크다.
"학교에서 엄마를 만날 수도 있을거야. 그래도 엄마라고 부르는 것은 좀 그래."
"왜? 왜 안되는 거야?"
"음... 너가 엄마라고 부르면 다른 친구들도 엄마가 보고싶지 않을까?"
"..."
"그러니까 서로 웃거나,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 어떨까?"
"진짜 엄마라고 부르면 큰 일 나?"
"큰 일은 아니고, 집에선 엄마, 학교에선 선생님 하자."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이와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눴다. 이 사실을 안 나의 남동생은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는 신길동이 탄생했다며 다소 애석해했다. 뭔가 아이답지 못한 행동을 요구한 것은 아닌지 마음 한 켠이 아리긴 했으나 당시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교사가 아니더라도 부모님 모두 아이의 입학식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참석하시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두 참석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코로나 때는 온라인 입학식, 학급에서의 입학식, 가족 1인만 참석하는 입학식 등으로 집합을 최소화 했었다.
2023년은 다소 완화가 된 분위기라 입학식에 오는 인원을 따로 제한하지 않았다. 우리 집의 경우 양가 어른들께서도 참석이 여의치 않았다. 아마 내가 담임교사였다면 친정부모님께 간곡히 부탁드렸을 것도 같다. 남편도 당시에는 다른 학교의 입학식 담당자였다. 엄마, 아빠가 나이가 많으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입학식은 10시였다. 나의 출근시간에 함께 학교에 가서 아들은 학교 도서관에서 홀로 책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10시가 되면 2층 강당으로 올라오기로 했다. 2월, 입학식을 준비하며 강당에 플랭카드를 걸고 풍선아치도 설치를 했다. 그때 미리 도서관의 위치와 강당의 위치를 알려주고 입학식 당일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줬다.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께 입학하는 아이들에게 사탕으로 만든 꽃다발을 사주고 싶다 하셔서 미리 마련해두었다. 담임교사가 입학하는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시간도 훈훈했다. 학부모 교육을 위해 학부모님들은 자리에 남고, 아이들은 교실로 가는 시간이 되었다. 한 반씩 차례차례 움직였다. 200명이 조금 넘는 학생과 200여명이 훌쩍 넘는 학부모님들이 함께 하는 입학식은 안정정으로 진행이 되었다.
교실로 이동하는 그 시간, 학생들은 사회자 옆을 지나 강당의 앞문으로 교실로 갔다. 많은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동을 도왔다. 마침 나의 아이도 지나가기에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엄마가 자기를 밀더란다. 아니야. 자연스럽게 토닥였다고 생각했는데 힘이 들어갔나?
이후 일정은 급식을 먹고, 돌봄교실로 가는 것이라 안정적이다. 그렇게 무사히 학교에 입학을 했다. 같은 학교였기에 나의 아이도 우리 학교 입학생들도 모두 지킬 수 있었다. 교사와 부모 사이에 살고 있지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