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싶었다.
때는 바야흐로 20년 전이다. 시골 마을의 작은 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아무도 맡지 않았던 6학년의 담임이 되었다. 우리 반은 10명, 벌써 서른셋이 되었겠다. 그들은 잘 지낼까? 오직 열정과 사랑 하나로 살아낸 1년이었다.
연륜, 노하우는 전혀 없었다. 업무는 과학이었는데 3월부터 과학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과학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 교장선생님 덕분에 과학실 정비도 했다. 오랫동안 손이 닿지 않아 쾌쾌했던 과학실 전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매일 긍정 회로를 돌렸다. 앞으로 얼마나 훌륭한 교사가 되려고 첫 해부터 녹록지 않은가? 그러던 5월, 학부모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우리 반 A가 어제 놀러 왔는데 돈이 없어졌다고 했다. 우리 반에서는 지금까지 돈이 없어진 적이 없었다. 도벽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을 텐데 말이다.
"A가 정말 그랬을까요?"
"A가 오고 간 이후에 돈이 없어졌으니까요."
"저는 A를 믿습니다."
우리 반 학생이 돈을 훔쳐도, 학교 유리창을 깨도 다 내 책임 같았다. 담임이 지도를 잘 못해서 라는 죄책감, 20년이 흐르며 이런 감정은 지나치다 생각했다. 1년이란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담임교사인 내가 우리 아이들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내려놓으려 했다.
"A는 엄마 없이 할머니와 사는데, 선생님이 아이가 없어서 잘 모르시겠지만."
학부모님께서 더 많은 부연 설명을 하셨는데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모. 르. 시. 겠. 지. 만'에 꽂혀 버린 거다. 모른다. 고로 전문성이 없다. 이렇게 들린 것이다.
당장 아이를 낳고 싶었다. 엄마가 되면 뭘 그리 알게 된다고. 슬프게도 당시 나는 애인도 없었다. 이후 나는 아이를 갖는데 10년이나 걸렸다. 5년 후 결혼을 했고, 5년 동안 아이를 기다고 기다려 겨우 낳았다. 지금 아이가 10세이다. 매년 아이와의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고, 13세 6학년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엄마가 되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은 맞다. 공기와 물의 존재에 의식조차 없었는데 어느새 공기와 물의 질을 따지게 되었다. 공기가 정말 안 좋았던 코로나 이전에는 이민까지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눈물이 더 많아져서 아이들의 사고 소식에는 어김없이 오열하게 된다.
"아이가 없어서 잘 모르시겠지만."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 해본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본다. 엄마라고 유세 떠는 게 절대 아니다. 조금 더 삶에 절절해졌다고 할까? 따라서 당시 학부모님의 말씀을 이렇게 재해석해볼 수 있다.
"선생님, 엄마가 되니까 힘들어요. 아이가 제 맘 같지가 않아요. 내 아이 이쁜 만큼 다른 아이들도 이뻐요. 그래서 마음이 매우 복잡해요. 이렇게 선생님 뵙고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정말 유감이에요."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한결 같이 공평한 교사였노라. 우리 반 한 명, 한 명 정말 사랑했노라 말하고 싶다. 요즘은 우리 반의 이쁜 아이들만 보다가 말 안 듣는 우리 집 아이를 보면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반의 개구쟁이도 사랑스럽게 보아줄 여유가 생긴다.
17개월에 겨우 두 발로 걸은 우리 집 아이, 8세가 되어서야 한글을 떼었다. 발달의 속도가 다름을 이론이 아닌 삶으로 배웠다. 같은 기준에서 아이들을 보고 모두 높은 기준에 도달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각자의 다름,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교사가 된다는 말이냐? 아니다. 나는 아이가 없던 지난 10년 동안 더 열정적이었다. 심지어 아이가 내 삶에 없을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매년 만나는 아이들을 내 아이로 생각하고 내 모든 열정을 쏟겠다 했었다.
엄마들도 다 안다. 연령에 따른 선생님들의 일장일단을.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 아이는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선생님을 만날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경험 속에서 성장해 갈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간이, 모든 선생님들을 만나는 경험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말이다.
"선생님께서 아이가 없어 잘 모르시겠지만."라는 말에 "어머니, 많이 힘드시죠. 어머니들은 다 위대하신 것 같아요."라고 되레 위로할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그 말이 교사의 전문성을 위협하는 말이 아님을 알기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말, 마음에만 담기를.
그나저나 A 학생은 어떻게 됐냐고?
"A야, 너 혹시 놀러가서 돈을 가져왔니?"
"아니오."
"그래, 선생님은 너를 믿는다."
학부모님은 내게 전화를 주셨다. 집에 돈이 있더란다.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