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 내에 정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Mission Impossible: Final Reckoning)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8번째 영화이며 최종을 장식하는 영화다. 전작인 7편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디지털상의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왜곡할 수 있는 괴물인 ‘엔티티(The Entity)’라는 전대미문의 적과 맞서 싸우는 에단 헌트(톰 크루즈)와 그의 동료들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3편을 보면서 뭔가 중요한 것 같은데 정체를 알려주지 않아 '맥거핀 효과(줄거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관객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집중시켜 혼란이나 공포 등을 느끼도록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던 ‘토끼발’에 대한 정체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추운 바닷속과 고공 회전하는 비행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신을 보여주는 톰 크루즈에게 경외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
엔티티의 등장과 극심해지는 불안감
엔티티는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인공지능으로, 전 세계의 모든 디지털 시스템을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경제를 붕괴시키고, 국제 분쟁을 유발하며, 심지어 핵무기 시스템까지 장악하려 한다. 이러한 엔티티를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원본 소스 코드이다. 그리고 이 소스 코드는 바다 밑 깊은 곳에 있는 침몰한 잠수함 속에 묻혀 있다. 이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단 헌트와 그의 친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에단 헌트가 엔티티를 파괴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고 있지만, 미국 수뇌부들은 엔티티가 핵보유국의 핵무기 관리 통제권을 하나하나씩 장악해 나가자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진다. 만약 헌트가 작전에 실패하면 엔티티는 핵무기를 발사하고 전 세계는 큰 재앙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미국 수뇌부는 엔티티가 핵 능력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국가의 핵 지휘센터에 선제공격을 가하는 방안을 거론한다.
사람들은 이제 엔티티가 만들어 놓은 현실 속에 어쩔 수 없이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한 각료는 ‘70억 명을 살리기 위해 1억 명의 목숨을 희생할 선택’이라며, 이제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면서 핵 공격 버튼을 누루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엔티티의 현실 속에서 사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며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만약 내가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수백만 명이 죽고, 내가 누르면 또 다른 수백만 명이 죽게 되겠죠.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누가 살고 죽을지를 결정하는 겁니까?”
여기서 등장하는 질문이 바로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것이 정의인지? 아니면 불가능한 임무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죽고 사는 문제는 운명에 맡기는 것이 정의인지? 쉽지 않은 질문이다. 과연 ‘나’라면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마이클 샌델이 저술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나라에 정의 열풍을 몰고 온 베스트셀러 화제작이다. 이 책에 나온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철로를 이탈한 전차’이다. 첫 번째 상황, 당신이 시속 100킬로미터로 질주하고 있는 전차의 기관사이다. 저 앞에 다섯 명이 철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그런데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에 작업자 한 명이 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한 사람이 죽지만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이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두 번째 상황,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언덕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기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있는 다섯 명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당신의 옆에 덩치가 매우 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밀면 그 남자는 죽겠지만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겠는가?
마이클 샌델은 ‘철로 앞에 공사를 하던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리기 위해 비상 철로로 방향을 틀어 한 명의 인부를 죽이는 행위’는 정당한 행위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덕 위에서 그 상황을 보고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는 사람을 떠밀어 전차를 세우는 것은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끔찍한 일이라고 본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옆에 있는 사람은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았고 그런 사람을 밀어 운명을 바꾸는 것이 더 잔인하고 또한 그럴 권리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 같다. 떨어져 죽은 사람의 가족은 민 사람을 반드시 고소할 것이고, 그럴 경우 다섯 명의 목숨을 구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의 대통령도 언덕 위의 구경꾼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버튼을 누르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죽는다. 게다가 사태가 수습된 후 공격을 당한 국가는 분명 미국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료들은 “외교적으로 더 현명한 방안은, 오히려 국내 도시 하나를 희생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후보 도시를 정리하여 제시한다. 대통령은 다행스럽게도 에단 헌트라는 숨겨진 한 수가 있었고, 결국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생각하는 정의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컨대, 비상 철로에서 일하는 사람이 만약 기관사의 가족이었다면 대부분의 기관사는 철로를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비판하더라도 그는 그의 정의가 지켜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에단 헌트도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있다. 그는 비정한 스파이 세계에서 굉장히 인간적이다. 자기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도구로 바라보지 않고 자기가 반드시 지켜내야 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자기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료를 위하여 수백만명의 목숨을 걸고 어찌 보면 무모한 도박을 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이런 결정을 한 다음에는 온몸이 부서지도록 뛰면서 자기 선택의 뒷수습을 해내고 그리고 세상을 구한다. 이것이 바로 에단이 생각하는 정의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불가능한 임무가 실패하고 그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우리에게 발생했다면, 우리는 결코 그의 정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공동선을 만들어가기
샌델 역시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샌델은 하나의 원칙이나 절차가 있어서, 그에 따라 소득, 권력, 기회를 정당하게 분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공동체에 함께 살이기는 사람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다. 즉,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과 관심만을 생각하는 사회가 아닌 서로 존중하고 미덕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결국 정의란 전통의 가치를 지키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관점은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많은 고민거리를 가져다준다. 일반적으로 기업 운영의 중요 철학은 바로 ‘기회균등의 원칙’과 ‘능력과 성과에 따른 배분’이다.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 상태에서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그 능력을 발휘해서 성과를 발휘할 때 그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러한 원칙이 100% 적용되기는 쉽지 않다. 어떠한 경우에는 나타난 성과가 주어진 환경과 운에 의해서 달성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 운영에 대해 언제나 불평과 불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운영의 정의 실현 역시 조직 내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움직이도록 지속적으로 대화하면서 공통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