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 오피스 판타지

- ‘라떼(나 때)’를 외치는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

by BYC

영화 ‘인턴(The Intern)’은 2015년에 개봉된 영화이다. 우리 정서와 맞았는지, 미국(매출 약 7천6백만 달러)에 이어 글로벌 흥행 순위 2위(매출 약 2천4백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감독인 낸시 마이어스는 특별히 한국 흥행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우리 관객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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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벤(로버트 드 니로)은 은퇴 후 삶이 뭔가 허전하다고 느낀다. 그러다 우연히 시니어 인턴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에 지원한다. 70살의 나이에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들어간 벤, 그는 점차 CEO인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을 비롯한 다양한 구성원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멘토로 자리 잡는다. 영화를 보면서 지혜롭게 늙어갈 수 있다면 나이를 먹는 것이 꼭 나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찾아 한다


인턴으로 채용된 벤은 CEO인 오스틴 산하로 배치된다.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오스틴은 시킬 일이 있으면 이메일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짧은 면담을 마친다. 하지만 기다려도 메일은 오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나이 많은 사람을 불러와서 어떻게 이런 대우를 할 수 있느냐고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조용히 수행한다.


젊은 동료들에게 새로운 문물을 물어 배우고, 짐을 옮기는 동료를 기꺼이 돕는다. CEO 비서를 통해 처음 맡은 업무가 소스가 묻은 옷을 세탁해 오라는 일견 하찮은 일이었지만 벤은 군소리 없이 바로 처리한다. 특히, 벤은 잡동사니로 가득 찬 책상을 아침 일찍 출근해 깨끗이 청소해 버림으로써, 쌓여 가는 쓰레기를 보며 한숨만 늘어가던 줄스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점차 벤에게는 비즈니스 데이터 분석 등 중요한 업무들이 맡겨진다. 아마도 벤은 일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해결해 나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뢰가 쌓이고 중요한 일들이 맡겨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으리라 생각된다.


적절한 사회 정서적 소통을 통한 실질적 도움


구글의 전 CEO인 에릭 슈미트는 매주 월요일 1시에 임원 회의를 열었다. 에릭은 회의 시작 전 참석자들에게 주말에 무얼 했는지,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여행은 어땠는지, 가족과의 일상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러한 사회정서적 의사소통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개인 생활을 공유함으로써 구성원 간 서로를 알아가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둘째, 단순히 직책에 따른 의무감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모든 사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회의를 시작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에릭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 동지애를 단단히 하고 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이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벤 역시 사회정서적 의사소통을 잘했다. 그는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잘 들어 이해하고, 그들이 느끼는 어려움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부모 집에서 나올 수밖에 없어 멀리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동료에게는 자신의 집에서 출퇴근하도록 해주었다. 또한 CEO인 줄스와는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면서 좋아하는 음악, 아내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으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간다. 그리고 줄스 가족과의 관계도 돈독히 하면서 필요한 지원과 도움을 기꺼이 주었다.


과거 ‘우리가 남이가’ 식의 과도한 사생활 간섭과 침해는 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서로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완화하고 신뢰와 협력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진심 어린 관계에 바탕을 둔 벤의 도움에 구성원들은 믿음과 유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답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생의 선배인 벤에게 연애, 업무 등 여러 상담을 한다. 벤은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펼치기보다는 언제나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람들에게 맥락을 알려준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예컨대, 벤은 줄스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지만 섣불리 끼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줄스가 고민을 나누자 벤은 비판이나 감정적 반응 없이 조용하고 현명하게 조언한다. 직장 내 연애 문제를 상담하는 동료에게도 요령보다는 상대를 배려하고 작은 배려를 잊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정답을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는 벤의 존재는 조직에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었다.


예전에 TV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한 한 초등학생이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지만, 충고는 더 기분 나쁘다”라는 말을 해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지시와 충고는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경험에서 우러난 고언이라는 핑계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주입하려 한다. 또한 관리자들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주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사고의 힘을 키우고 그들을 역량을 성장시키는 데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좋은 멘토링이란 선택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고민해서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을 벤은 잘 보여준다.


필요할 땐 확실한 행동과 조언


벤은 필요하다면 확실하게 행동하고 조언도 명확하게 해 준다. 예컨대 줄스의 운전기사가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고 운전하려는 것을 보고, 바로 운전을 막고 대신 운전을 한다. 같이 일해 보면서 유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인재에 대해서는 줄스에게 그의 업무 기여도를 이야기하면서 좀 더 역할을 부여할 것을 조언한다. 특히 벤은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돌리고 가정을 다시 정상 궤도로 돌리기 위해 새로운 CEO 채용을 고민하고 있는 줄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남편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자신답게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다른 누군가 당신이 좋아하고 이룩한 일을 빼앗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줄스는 새로운 CEO를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벤은 평소에는 신중하지만 필요할 때 단호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필요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벤의 즉각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과 피드백은 불확실성을 줄이고 문제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화 인턴의 내용은 한국 기업 현실에서는 쉽게 발생할 수 없는 오피스 판타지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벤과 같은 리더/멘토를 원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구성원들의 의견을 잘 듣고, 상대가 원할 때만 조언을 건네고 강요하지 않지만, 필요할 때 확실히 행동하고 조용히 힘이 되어주는 벤의 모습은 우리 기업 관리자들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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