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불씨 - 순례라는 피정을 마치며
집필을 시작할 때만 해도 3,4개월 안에 끝내리라 자신했다. 처음엔 37일 간의 순례에 묵시아 하루 여행을 더해 도합 38편으로 기획했다. 일주일에 두 편씩 부지런 떨면 4개월 내로 마무리하겠거니 했다. 그러나 내게 창작은 지난한 길이었다. 어려움이 없던 순례에 감히 비할 바가 아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던 첫날의 첫 글자를 타이핑한 지 8개월이 훌쩍 넘어 간신히 마감에 이르렀다. 8개월!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루트를 7번 이상 걷거나 은의 길, 북부길, 프리미티보길, 포르투갈길에 이어 비아 프란치제나를 완주하고 남을 시간이다. 이베리아 반도를 훑은 다음 영국 캔터베리로 건너가 이탈리아 로마까지 유럽을 사선으로 종단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서문과 후기 포함 총 40회의 허접한 소일담과 맞바꿨다.
어찌 보면 대단히 비생산적인 작업에 공을 들인 셈이다. 묵시아 여행을 떠올리며 순례의 만감을 정리하고 에필로그를 긁적이자니 어느새 순례 초반부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기록은 남았으되 당시 머리를 싸매게 한 창작의 스트레스가 내 머릿속에서 휘발되었다. 허망하기 짝이 없다. 허술한 기억력과 퇴화된 어휘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글을 쓸 용기를 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기억의 파편을 꿰맞춰준 몇몇 조력자들이 있었다.
매일 메모한 일기가 제일 한 몫을 했다. 걸으면서 핸드폰 메모장에 타이핑하거나 녹음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했다. 그때 행적과 심경이 충분히 기록되었다. 둘째는 사진이다. 일자별로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슬라이드가 영사되듯 당시 일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사진에 저장된 구글타임라인과 GPS 정보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구글지도에서 촬영한 일시와 장소가 확인되어 이야기 구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셋째는 누나 블로그다. 내가 캐치하지 못한 상황과 누나 시선에서 순례의 단편을 엿볼 수 있어 기행을 정리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롤링 스톤 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팝송 명곡들이다. 이야기의 주된 소재인 팝송을 들으며 떠올린 심상은 시간이 흘러도 사진에 찍힌 피사체 마냥 뚜렷이 기억났다.
거창히 말해 내게 까미노는 차안과 피안의 시공간을 잇는 뫼비우스의 띠이자 속세를 떠나 세출간하는 바라밀다의 다리였다. 이 길을 걷는 와중에 심마가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여정 말미로 갈수록 누나에게 택도 없는 심보를 부린 것 말고는. 누나에게는 죄송했지만 말이다. 비신자이지만 내게 익숙한 가톨릭에 근거해 표현하면 까미노는 나를 위로한 성당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난생처음 피정을 경험했다. 수십 년 동안 지인들이 그토록 세례 받아라, 미사 나와라, 피정 가자 해도 못 들은 척 요지부동이었건만.
까미노에 서면 몸은 고달퍼도 마음은 세상없이 편해진다. 평온한 세상에 흠뻑 취했다가 순례를 마치면 타임슬립하듯 일상으로 돌아온다. 감히 장담컨대 까미노에 선 순간 누구 하나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지 못할 이가 없을 거라 자신한다. 삶이 지치고 힘들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까미노에 오르길 적극 추천한다. 걸어보면 그간 체험하지 못한 감동적인 순간들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까미노를 걸으며 내가 보거나 듣고 심중에 떠올린 것들은 다음과 같다. 비, 구름, 햇살, 길냥이, 그림자, 성당, 조각상, 평화, 안식, 위안, 사랑, 행복, 해방, 자유, 천사, 죽음, 엔트로피, 카이로스, 크로노스, 도와 선, 일체유심조, 오욕칠정, 불교, 탐진치, 5비 잉간*, 차안과 피안, 무덤과 납골당, 까미노, 밀밭, 초원길, 메세타, 평원, 야고보, 가톨릭, 개신교, 예수님과 하느님, 끝으로 순례길의 앙꼬인 순례자. 인간이 자연과 동화되는 까미노에서 순례자를 빼놓을 순 없다.
*5비 잉간 : 비겁, 비굴, 비열, 비정 그리고 비루한 인간 - 출처 현각스님 저, '산티아고, 나에게로 가는 길'
어느덧 산티아고 순례에 나선 지로 해가 두 번 바뀌었다. 가히 일촌광음이 따로 없다. 보통 이쯤 되면 까미노 블루를 겪는다던데 내 경우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언제고 다시 산티아고로 떠날 생각이라 까미노 블루가 엄습하지 않는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서운한 감정이 든다. 지나치게 상업화된 지 오래, 오버투어리즘까지 거론된다. 까미노에 인접한 마을 주민들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어 순례객들을 곱지 않게 본다고 한다. 이렇게 드세진 필그림 포비아에도 다시 이곳을 찾을 게 분명하다. 단지 그 순간이 언제 다가올지를 특정하지 못할 뿐.
내 글은 내가 봐도 무척 재미없다. 내가 재미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유머와 위트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다. 똑같은 말을 해도 남들은 주위를 배꼽 잡게 하는데 내가 꺼내면 갑분싸로 평정하는 용한 재주가 있다. 이렇게 지극히 따분한 장문의 글을 마다치 않고 읽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글을 읽으면 작가에 대해 알게 된다. 작가가 선택한 단어에서 그의 지성과 사고의 지평을 엿볼 수 있다. 독서와 학습으로 단련된 어휘가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글에 후광을 더한다. 그가 써 내려간 문장은 작가가 키워온 세계관의 향내가 배어있다. 아무리 다르게 포장해 그 향기를 가리려 해도 은연중에 자신의 향신과 아로마를 감추기 어렵다. 문장의 리듬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전개하는 사고와 행동의 습성들이 문장 내에서 독특한 운율로 버무려진다. 글로써 나를 드러내는 일이 무척 부끄러웠지만 다만 스스로 위안하고 싶은 게 있다. 비록 협소한 어휘에 범부의 필력일망정 나의 체취가, 살아온 이력이, 배우고 익혔던 잡다한 지식과 사상이, 내가 본받고 싶은 성품을 가능한 한 진솔하게 드러내려 애썼다. 그것이 조족지혈에 불과한 성취였다 해도 말이다.
먼발치에 보이는 익숙한 뒤태만으로 그가 누군지 알아차리듯 문체만으로도 누가 글을 썼는지 쉽사리 유추할 수 있다. 지문과 홍채와 마찬가지로 글의 향기, 문향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내가 끄적인 문장은 육화된 나 자신이다. 젊은 시절 내 글은 재미없을뿐더러 염세에 찌들고, 꽤 현학적이며, 나르시스 한 기운이 물씬했다. 강산이 서너 번 바뀐 지난한 세월에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여 참으로 송구스럽다.
유머러스하지 못한 천성은 내 글을 읽는 이들에게서 미소를 강탈했다. 10대 시절 이문열을 탐닉한 탓에 은근슬쩍 잘난 체하는 어투는 어쩔 도리 없이 몸에 배었다. 잘 벼린 역심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유약한 세계관은 세상을 삐딱히 보는 편협한 자기애를 마구 돌출시켰을 것이다. 이리도 부족한 글이 본의 아니게 불편을 끼친 게 있었다면 너그러이 혜량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소싯적에 막걸리를 마시다 울면 하얀 눈물이 영글거라며 눈이 시뻘게지도록 울었던 적이 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내뿜은 연기가 흩어지는 걸 보며 내가 숨 쉬고 있음을, 그리하여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 애꿎은 담배를 줄창 뻐금거린 때도 있었다. 젊음의 치기가 가득 찼을 그 시절, 내 세상은 늘 글루미하다 여겼는데 까미노를 걸으면서 세상이 꼭 그로테스크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생 살아볼 만 하다고.
루카치가 자아를 찾아가는 여로라 일컬었던 소설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내게 글을 쓰는 행위란 침잠해 있던 자신을 건져내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이런 시답지 않은 방황과 생뚱맞은 궁금증에 답하는 나를 잡아채려는 적요한 출조 여행이었다. 까미노에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와 더불어 팔개월간 이어진 고통스러운 창작의 체험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소중한 거름이 되리라 여긴다. 미천한 내겐 너무나 고맙고 복된 일이다.
하나 밝혀둘 사실이 있다. 40편 에피소드의 표지 삽화는 순례에 동행한 친누나의 작품이다. 일일히 그림 그리는 노고를 마다치 않은 누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볼수록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누님의 삽화 덕분에 그나마 졸고의 민낯을 가릴 수 있었다.
누나 외에도 이 글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준 사이트들이 있다. 팝송에 문외한이라서 어쩔 수 없이 명곡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후일담에 대한 사전 지식이 빈약했다. 국내외 대중음악을 개략적이나마 흥미롭게 소개한 블로그, ‘시간의 틈 사이로 우리는 영원 같은 한 순간을 스치고’(https://hyunjiwoon.tistory.com)와 AI 사이트, 나무위키가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챗 지피티와 퍼플렉시티에 신세를 많이 졌다. 검색하고 싶은 명곡이나 다양한 주제를 네이버, 구글 검색보다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었다.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AI의 효능을 제대로 체험하였다.
예를 들어 아래의 시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네 곡 - Desperado, Redemption song, Blowin' in the wind, Imagine - 의 가사를 따와 AI에 작시를 부탁한 결과물이다. 일부 단어와 시구를 직접 교정하긴 했지만. 이런 점에서는 AI 작곡사이트인 SUNO에도 찬조를 받았다. ‘겁쟁이 사자’와 ‘바람과 불꽃’를 작곡해 주었으니 말이다. 전자는 내 20대 방황을, 후자는 산티아고 순례를 마무리한 심경을 그린 노래들이다.
유치한 시와 노래를 끝으로 순례 대장정의 기행을 마친다.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마지 않으며.
바람과 불꽃, 그리고 길
길의 끝에서 멈춘 방랑자여,
닫힌 문 너머의 세상을 보라.
고독은 방패였으나, 이제는 족쇄.
그대의 가슴속 불씨를 꺼내라,
바람 속에서 길을 찾을 때가 왔다.
얼마나 많은 질문이,
얼마나 많은 눈물이,
우리를 자유로 이끌 수 있을까?
답은 바람에 흩날리지만,
그 바람은 여전히 우리를 어루만진다.
상상하라, 벽이 없는 세상을.
전쟁도, 증오도, 경계도 없는 곳.
꿈꾸는 자들이여, 두려워 말라.
그대의 마음속 열정이
세상의 어둠을 밝힐 것이니.
불을 붙여라, 그대의 영혼에.
타오르는 희망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찾는다.
위험은 피할 수 없으나,
이상은 늘 찬란하니.
노래하라, 해방의 노래를.
억압받은 자들의 속삭임이
거대한 외침이 되는 날까지.
사슬을 끊고, 자유를 품으라.
그대의 목소리는 역사가 될 것이다.
길은 끝나지 않았다.
바람은 불고, 잉걸불은 되살아나며,
그대는 다시 걷는다.
사랑과 자유, 희망과 용기를 품고,
끝없이 나아간다, 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