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ke A Rolling Stone - 범아일여를 찾아서
게오르그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1920년)’을 아래의 유명한 시적 문장으로 시작한다.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그 시대에는 모든 것이 새롭지만 친숙하고, 온갖 모험을 걸 대상이지만 성취 가능하다. 세계는 넓으나 마치 자기 집과 같은데,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에서는 삶의 방향성과 의미가 명확하다. 그러니 사람들은 인생의 길을 잃고 방황할 걱정을 하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이 분명한 만큼 광활한 세계가 낯설거나 두렵지 않다. 인간은 세계를 겉돌지 않고 본질적으로 신의 섭리, 세계의 질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루카치는 고대 그리스 시대를 신과 인간이 함께 존재하는 세계로 간주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을 세계의 일부라 여김으로써 신탁받아 정해진 길대로 가야 한다고 믿었다. 내면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으니 삶의 혼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 이후로 조화는 무너졌고 신은 죽았다. 별빛이 사라지자 현대인들은 영혼의 불꽃마저 꺼뜨려 길을 잃었다. 종국에는 부조리가 판 치는 혼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떠도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루카치에게 소설이란 신에게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이자, 근대의 문제적 인간이 겪게 될 부조리와 불확실성을 극복하고자 길을 찾아 나서는 탐색의 여정이다. ‘길이 끝나자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그의 명언은 단순히 그리스 시대를 회상하거나 무릉도원을 꿈꾸라는 게 아니다. 이상적인 희랍 세계관이 무너진 근대 사회의 불확실성과 소외로부터 자기 자신과 세계의 의미를 찾으러 떠나라는 말이다.
37일간 산티아고로 향하는 한 줄기 길을 걸었다. 중간에 우회길이 나타날 경우엔 주저치 않고 그론세 닷컴이 추천하는 경로를 택했다. 별이 지도가 되고 별빛이 길을 밝혀준 것처럼 화살표 따라 고민 없이 서쪽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까미노의 종착지, 오브라도이로 광장 길은 다시 사방팔방, 방사형으로 수없이 발산되어 끝 모르게 퍼져 나갔다. 길이 끝나 다시 여행할 인생도 그러하다. 인생 철학과 일상의 삶이 분열하고 충돌해 혼란에 빠진 루카치의 근대인처럼 나는 미래를 향한 불확실한 길 중 무얼 선택해야 하나?
당장 오늘이 그랬다. 순례가 끝나는 종막의 여운을 어디서 달랠지 고민했다. ‘피니스테레Finisterre’는 땅 끝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실제 유럽 최서단은 포르투갈의 ‘카보 다 호카Cabo da Roca’지만. 예수님의 명을 받은 야고보가 이 곳에서 선교를 시작했다는 전설과 함께 영적 순례의 종착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번잡한 관광지 분위기가 마음에 걸렸다. 차분하게 순례를 마무리하기에 뭔가 부족했다. 묵시아도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전승이 전해진다. 선교에 진척이 없어 낙담한 야고보에게 돌배를 타고 와 위로한 이후, 다시 나타나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라 했다는 전설이다. 한참 고민하다 묵시아를 택했다. 호젓한 것이 영적 순례의 종착지로 적당해 보였다. 근대인이 직면한 불확실한 카드 중에 한 장을 뽑아 든 것이다.
앞으로도 내게 수많은 선택지와 대안들이 놓일 것이다. 허나 문제의 답과 결과를 미리 알 길이 없어 최후까지 차일피일 선택을 미루는 장고를 거듭할 게 뻔하다. 경도 결정 장애자이라서 선택을 두고 몹시 괴로워할 공산이 크다. 어느 걸 선택하든 분명히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오직 나만이 질문에 답해야 하며 그로 인한 결과는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순례길에서 10kg이 넘는 버거운 무게를 감당했던 것처럼 내 인생의 짐을 오롯이 껴안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하고 나서야 순례의 대미에 이르고도 아직까지 엉켜 있는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에 현혹되고 싶지 않다. 열심히 노력해 성공의 열매를 맺는다면 얼마나 좋으랴 마는 그러지 못해도 그만이지 싶다. 성심을 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실이 좋지 않을 경우 아쉽겠으나 누구를, 무엇을 탓하랴! 대개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자신을 탓하거나 결정적인 카이로스의 순간에 내린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할 거다. 불만족스러운 현재(미래)를 초래한 과거(현재)의 나와 자신의 오판을 맹비난하겠지. 앞으로 더 현명하고 신중히 결정하여 초라한 현실을 바꾸리라 재차 다짐하면서.
혹시 거창하지 않은, 실현 가능한 목표 정도는 계획대로 실천하고 마음먹은 대로 이룰 여지가 있을까? 뉴튼은 힘이 질량과 가속도의 곱에 비례한다는 운동법칙을 발견했다. 그가 주창한 고전역학의 세계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알기만 하면 과거의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게 가능하다. 이 세계에서는 목표를 실현할 조건을 정확히 규정하여 이를 투입함으로써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 세계는 어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양자 역학의 세상이다. 전자와 광자 같은 미세한 양자들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파동은 여러 개의 상태를 확률적으로 동시에 중첩시킨다. 양자 세상에서 시간도 여러 상태가 확률적으로 중첩된다. 우주가 양자적이라면 우주의 일부인 시간 또한 파동이며 빛으로 이뤄진 양자시계가 파동이므로 시계가 측정하는 시간 역시 파동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시간을 쟁취하려 하지만 그 미래는 확률로 정의될 뿐 확정되지 않는다. 확률적인 미래를 실현하여 확정하는데 필요한 각종 변수들을 정교히 통제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
미리 정해진 상태란 존재하지 않고 관측되는 순간 결과가 정해지는 양자 역학의 법칙에 따르면 미래를 예측하여 목표를 실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 카오스 법칙까지 고려하려니 점입가경이다. 카오스의 복잡계에서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비견되는, 초기의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발휘한다는 초기 조건의 민감성이 작용한다. 기상학자 로렌츠는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한 두 개의 기상 현상을 컴퓨터로 재현해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유사성이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백만분의 일 이하의 확률로 발생한 미미한 차이가 원인이었다. ‘나비효과’라는 어원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복잡계를 살고 있는 우리는 눈앞에서 수십, 수백 개 이상 갈라진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운 좋게 목표에 부합되는 초기 조건을 알았다 쳐도 인생길 앞에 놓일 무수한 변수를 예측해야 한다. 그러나 로렌츠의 날개가 지배하는 카오스 세상에서 확률이 중첩된 시간하에 수많은 변수를 매번 정확히 고르는 일은 신의 영역이다. 변수가 투입되는 시간과 이를 선택하는 공간이 각기 확률인 만큼, 이를 곱해 의사결정할 시공간은 실로 무량에 가까운 상태들로 중첩될 텐데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미래를 100% 예견해 목표를 이루겠는가!
무정부주의가 무정부한 혼란을 지향하지 않듯, 카오스 이론은 무질서가 아닌 질서와 패턴을 찾는 학문이다. 너무 복잡한 나머지 필연적인 질서가 보이지 않는, 고도로 복잡한 결정론일 따름이다. 유한한 우리가 완전무결한 신이 아니어서 예측하지 못할 뿐. 내가 걸었던 까미노가 평면을 잇는 선이듯 인생은 요람에서 무덤으로 이어진 시간 위에 새겨진 선이다. 생명이 태어나 살아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파동으로 중첩된 시공간에서 무질서도까지 늘어나니 내 미래는 무량한 상태들 중 어느 하나에 불과하다.
양자역학과 카오스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작금의 현실이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과 선택에서 비롯됐다고 여길 필요가 없다. 결과에 대해 불만족하거나 아쉬워할 까닭도 없다. 과거에 달리 행동하거나 다르게 선택했어도 그 결말이 어떨지 결코 알 수 없다. 알지 못할 결말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리오. 바라는 꿈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는 미몽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되 그것을 이루기 위해 포기한 욕망을 잊지 못하는 미망에 빠져서도 안된다. 삿된 감정에서 허우적거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러니 구태여 미래가 불확실하거나 불확정이라 하여 초조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자. 단지 내가 매 순간마다 행한 일과 결정들이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확률을 시시각각으로 바꿀 뿐이라 여기자. 확정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내가 각고의 노력을 한들 결코 승리의 여신이 성공을 100% 보증하진 않는다. 내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는 나도, 남도 아닌 오직 절대자이다. 우리는 절대적 존재를 신이라 부른다. 믿든 안 믿든,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나의 까미노에서 이어진 오브라도이로 광장이 다시 수백 갈래 길로 갈라지고 각각의 길은 또다시 그 이상으로 나뉘듯 인생길도 그러하다. 우리는 양자 중첩된 인생길에서 불가능한 예측에 힘쓰지 말고 불확실한 확률을 인정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지난 운명과 처한 환경을 탓하지 말자. 미래를 예측하고 인생에 답하려 애쓰지도 말자. 오직 내가 선택할 행동과 대안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만족하자. 지향한 목표에 다가서려 흘린 땀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결과는 나오고서야 확정되는 영역이니 연연하지 말자. 하나 덧붙이자면 그런 열정이 이왕이면 가족, 지인, 사회, 국가, 만천하로 이어지는 내가 속한 더 큰 공동체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조하기를 바랄 뿐이다.
힌두교는 우주의 본질, 브라흐만과 개인의 자아, 아트만이 본래 하나임을 깨닫는 걸 중시한다. 깊은 명상과 깨달음으로 범아일여梵我一如의 해탈을 강조한다. 범아일여는 루카치의 고대 그리스 정신과 궤를 같이 한다. 우주와 내가 조화를 이루는, 통일된 세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과 힌두교 신자들은 루카치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고대 영웅처럼 별빛이 밝혀주는 길을 걸었을 거다. 우리는 루카치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불확실한 인생 여정을 살아간다. 그러나 신에게서 멀어졌다 하여 별이 빛나는 길을 부러워하진 말자. 혼란하고 소외된 인간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자. 까미노에서 묵묵히 한 걸음씩 떼어 우보만리 하던 것처럼.
내게 까미노는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회귀길이었다. 태평양 연어는 회귀 본능에 따라 단 한 번의 번식을 위해 태어난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780 km 순례길은 철들어 잊고 지내던 피안의 평온을 맛보게 했으되 그 끝에서 인생의 여로를 다시 시작한다. 천로역정의 삶이 힘들어 지치거나 무료해질 때는 언제든 피안의 귀향길로 되돌아가 향수를 맡을 수 있다. 그러니 인생길에 흔하디 흔한 과거를 자책하거나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자. 무엇을 택하던 매사에 충실하면 그만이니.
순례를 하며 내 인생에서 도외시했던 두 가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첫째는 시간의 소중함이다. 매일 반복되는 순례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일분일초는 더디게 흘러갔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뻥뻥 써대며 낭비했던가! 지난날에 헛되이 뿌린 시간을 아꼈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상당히 많은 걸 시도할 수 있었을 거란 후회가 몰려온다. 다른 하나는 완보의 뚝심이다. 한 걸음씩 느린 걸음으로 산티아고까지 걸어왔다. 이동 수단의 도움 없이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780km의 장정을 마쳤다. 인생도 천천히 걸어야 한다. 눈앞의 소리小利에 현혹되지 말고 길게 보며 급하게 걷지 말자 다짐한다.
묵시아에 도착해 광활히 펼쳐진 대서양을 바라봤다. 난생처음 접한 대서양과 성모 마리아의 전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0 미터 표지석에서 길이 끝났음을 확인했다. 이제 표지석을 뒤로 하니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대자연에 순응한 여행자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과 시원한 바람, 바다 절경을 차분히 즐겼다. 산티아고로 돌아와 대성당 지붕투어를 끝으로 기나긴 순례 일정을 마감했다. 내일이 오면 내일의 태양 아래서 인생길로 되돌아와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언젠가 내 여행이 끝나는 날, 과연 별빛 가득한 루카치의 그 길이 다시 시작될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고전역학, 양자역학, 카오스 이론과 로렌츠의 나비효과로 연결되는 아이디어는 유선경 작가의 '나를 위한 신화력(2021년)' 중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내 현실이 달라졌을까'에서 따왔음을 밝혀둔다.
지면의 한계로 소개하지 못한 명곡들
Bob Dylan - Like a rolling stone(1위)
1965년 밥 딜런은 뉴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놀랍게도 그가 들고 나온 건 일렉트릭 기타. 대중들은 어쿠스틱을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와 풀 밴드 사운드로 무장한 밥을 맹비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포크에 담긴 Protest Song을 버리지 않은 그의 진정성을 높이 재평가했다.
Nirvana - Smells like teen spirit(9위)
시애틀 기반의 그런지 음악을 얼터너티브 록의 주류로 끌어올린 곡. 이 곡의 성공을 계기로 1980년대 헤비메탈과 테크노팝을 이어 얼터너티티브 록의 시대가 개화됐다. 십 대 정신은 X 세대의 반항과 자유로운 청춘문화를 상징한다.
Otis Redding -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28위)
가스펠 분위기를 쫘악 빼려는 오티스의 변신이 제대로 드러난 곡. 가수가 사망한 뒤에 빌보드 싱글 1위에 오른 최초의 노래이기도 하다. 항구의 부두에서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멍 때리기가 산티아고 입성 전야의 고즈넉한 오후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Ray Charles - Georgia on my mind(44위)
원작자인 호아기 카마이클이 더 이상 자기 노래가 아니라 했다는 후일담이 유명하다. 내 마음속의 조지아를 떠올리는 음률이 까미노 블루를 불러일으킨다. 산티아고를 그리게 할 진한 블루스가 일품!
Prince - When doves cry(52위)
프린스가 혼자서 만들었다.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모든 악기 연주와 프로듀싱에 뮤직비디오까지. 베이스가 없어도 묘한 흥분이 인다. 기타 솔로 인트로와 드럼머신의 비트감 있는 리듬이 인상적인 곡. 비둘기가 흥분을 참지 못해 내는 소리를 우는 걸로 묘사했다. 울지 말라했으니 싸우지 말라는 뜻?
Donna Summer - Hot stuff(103위)
디스코 음악의 절정이 지나는 시기에 디스코에 하드 록을 결합했다. 신시사이저 리프가 돋보이는 곡. 도나 섬머를 그래미 최초의 여성 록 보컬 퍼포먼스 수상자로 이끌었다.
The Rolling Stones - Honky tonk women(116위)
전설적인 록 밴드 롤링 스톤스가 처음 시도한 R&B 리듬의 블루스 곡. 행크 윌리암스의 Honky Tonk Blues를 재미 삼아 연주하다 작곡하게 되었다. 지미 로저스의 컨트리도 이 곡에 영향을 줬다.
The Everly Brothers - All I have to do is dream(141위)
마음껏 사랑하고픈 상대는 꿈에서만 만날 수 있다.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힘들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녕 유토피아는, 이상 사회는 현실이 아닌 꿈에서만 가능한 걸까?
Bill Haley and His Comets - (We’re gonna) Rock around the clock(158위)
최초의 록은 아니지만 록의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미국 10대 청소년들이 애청한 송가. 기존의 흑인 음악이 주는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컨트리와 스윙 요소를 채택한 것이 인기의 비결이었다. 백인들이 듣기에 전혀 부담 없는 신나는 초창기 록앤롤의 향연이 펼쳐진다.
Johnny Cash - Folsom prison blues(164위)
인생은 교도소다. 일생동안 내가 저지른 범죄는 탐진치란 신구의 삼업. 노래의 화자는 형기를 마쳐 출옥하면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고 싶어 한다. 나는 형 집행을 받아 잠시 피정을 하러 길을 떠난다. 피안에 이르는 다리 언저리에 이르면 나를 돌아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