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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일차] 이 또한 지나가리라

Imagine - 일화가 만발한 오브라도이로 광장

by 여운설

2023년 6월 16일 라바코야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9.9km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이 길을 나설 때만도 언제 올까 싶던 순간이. 프랑스 남녘 국경 마을에서 흐르기 시작한 크로노스를 마침내 멈출 시기가 임박했다. 순례길로는 엎어지면 코 닿을, 10km에서 100m 모자란 거리만 남았다. 나를 버리고 간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 병난다던가. 방심했다간 두 발에 발 병이 나 꼼짝 못 할지 모른다. 그러 적어도 서너 시간 동안은 아무에게도 원망받지 말아야 한다.


하늘에 새털구름이 무성하다. 며칠 겪은 갈리시아 일기로 보아 대개 이런 날은 쾌청하다. 오전 늦게 대성당의 오브라도이로 광장를 가득 메운 청양한 햇살이 우릴 반기리라 기대된다. 광장 한가운데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다른 순례자들처럼 감격 어린 눈물을 흘릴지 아니면 무덤덤할지. 내 성정을 봐서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한 달 이상 신세 진 포근한 흙길을 마다하고 바로 옆 차가 거의다니지 않는 아스팔트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다. 그러는 이유를 모르거니와 구태여 답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 찻길은 방금 지나간 버스로 보아 시내에서 산티아고 공항을 잇는 도로일 것이다. 외진 오솔길에 비해 운치가 확연히 떨어지는 숲 길이지만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를 들으며 걸어간다. 꽤 정들었는데 놈들과의 이별이 그다지 쓸쓸하지 않아 다행이다.


누나의 뒤를 따라 걷다가 때론 앞서다 하며 산티아고를 향한다.


호젓한 주택가에 들어선다. 순례자가 사뿐히 내딛는 발자국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관통하는데 왠지 모르게 부산스럽다. 마을의 적막한 분위기를 깨는 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집집마다 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요란하게 걸려 있다. 구호는 ‘PLAN XERAL NON’. 산티아고 시가 입안한 일반도시계획을 반대하는 슬로건이다. 상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토지 분류에 따라 지역을 나눠 총 37, 188 채의 주택을 새로 짓는 개발 계획이란다. 반대가 심한 걸로 봐서는 마을 주민들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은 듯싶다.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휘갈긴 철거 반대 구호가 떠올랐다. 형편이 부족한 원주민들이 대책 없이 보금자리에서 쫓겨나는 우리네 재개발 실상이 겹쳐져 씁쓸하다. 대체로 젠트리피케이션은 취약계층을 배려하지 않거나 소외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R&B 선구자 샘 쿡은 1963년 10월경 홀리데이인 호텔에 예약을 했다.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호텔 측은 샘 일행이 도착하자 투숙을 거부했다. 샘의 거친 항의에도 호텔은 흑백 분리를 강제하는 짐 크로 법을 들먹이며 요지부동이었다. 도리없이 다른 모텔로 간 샘 일행을 맞은 건 경찰이었다. 죄목은 소란죄. 가뜩이나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에 자극받은 샘 쿡이 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 계기였다.


정적을 깨는 개발 반대 슬로건. 순례길 마지막 숲길을 빠져나와 도심을 향한다. 어느새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걷는 걸 보면 환속할 채비가 다 되었나보다.


밝고 경쾌한 노래만 고집하던 그가 작정하고 만든 노래가 ‘A change is gonna come(12위)’다. '강가 오두막에서 태어나 강물처럼 흘러왔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변화가 오리란 걸 알아. 아주 힘들게 살아왔지만 죽기는 두려워. 하늘 저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까.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끝내 변화가 오리란 걸 알아.' 샘은 이 노래를 발표한 그해 12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모텔 주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의문사였다.


당시 흑인 가수들에 가해진 사회적 차별은 극심했다. 흑인 가수 작품을 백인이 대놓고 표절하는 것은 귀여운 수준이요 흑백분리정책은 양반이었다. KKK단은 공공연히 이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으며 여러 흑인 가수들이 의문사를 당했다. 샘의 희생은 개중의 하나였다. WASP 정치인과 검사, 경찰, 기독교 원리주의자들 중 일부가 혼연일체로 이들을 탄압했다. R&B와 록앤롤 같은 흑인들의 싸구려 저질 음악이 아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백인 부모들의 원성을 핑계로. 감동 깊게 본 ‘그린북(2019년)’이 생각났다. 미국 남부를 순회공연하는 흑인 돈 셜리 박사와 운전수 겸 보디가드인 이탈리아계 백인 토니 발레롱가의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을 그린 로드무비다. 그린북은 당시 흑인들이 출입가능한 숙박시설과 음식점을 지역별로 모아놓은 책을 가리킨다. 재개발이야말로 경제적 취약층에게는 아직도 폐기되지 않은 그린북이 아닐는지.


이런저런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의 심경을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그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곡이 있다. 익히 들어봤을 법한 노래인데 순례길에서 처음 들었다. 첫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내 머릿속에 종소리가 크게 울렸다. '당신이 그를 사람으로 부르기 전 그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을까? 자유를 얻기 전까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견뎌야 했을까? 사람은 얼마나 여러 번 고개를 돌려 보이지 않는 척 외면할 수 있을까? 그가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어간 걸 깨달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을까?' Bob Dylan은 ‘Blowin’ in the wind(14위)’에서 답은 바람에 흩날린다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다. 스스로 답을 찾아 행동하라는 취지라서 여운이 깊다. 이 곡을 필두로 포크음악은 사회이슈를 다루는 장르로 거듭났다.


14. Bob Dylan - Blowin’ in The Wind(1963년, 14위)


순례를 마무리하는 상상을 할 때마다 늘 그리던 장면이 있다. 산티아고 외곽, 순례자 동상에서 먼발치의 대성당 첨탑과 종탑을 말없이 바라보는 광경. 그 실루엣이 눈에 담기면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기릴까? 몬테 도 고소에 도착한다. 서둘러 순례자 동상이 서 있을,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의 상징이 보이는 기쁨의 언덕을 찾는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조형물이 있을 만한 곳을 지나치지 않았는데. 엎친 데 덥친 격으로 갈리시아 페스티벌 기간이라 주위에 텐트가 가득 차 있어 몹시 부산스럽다. 하릴없이 순례자 동상 곁에 서 있을 나를 상상하며 시가지로 접어든다.


구불구불한 좁은 인도 건너편 건물 위로 대성당 첨탑이 보인다. 이미 몬테 도 고소Monte do Gozo에서 봤던 터라 큰 감흥이 없다. 무덤덤하다. 모퉁이를 돌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다. 지체 없이 오브라도이로 광장 한복판에 들어선다. 광장 중앙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과 시선을 맞춘다.


몬테 도 고소에서 기쁨의 언덕을 찾아 헤매다 하릴 없이 시내로 향한다. 좁다란 굽은 길을 따라가다 보니 오브라도이로 광장이 우리를 맞이한다. 779 km 완주증!


마침내 20년간 벼르던 카이로스의 순간을 영접한다. 37일을 견디게 해 준 내 영혼의 기백이 심연에 가라앉는다. 주위에 벅찬 감격에 넘쳐 눈물을 흘리는 이, 기쁨에 겨워 환호를 내지르는 순례자, 환희에 가득 찬 포즈를 취하는 길손들로 넘쳐난다. 그 가운데서 우두꺼니 서서 몽롱히 하늘만 쳐다본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 보이는 높다란 첨탑 뒤로 눈부신 꽃이 만개한다. 구름을 하얗게 물들인 태양 빛, 일화日華를 막연히 응시한다. 아침에 들었던 명곡의 가사가 파노라마처럼 뇌리에 영사된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우리 아래엔 지옥도 없고 위에는 그저 하늘만 있을 뿐.

나라들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죽이거나 죽을 이유도 없고 종교도 없어요.

소유물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탐욕이나 굶주림도 없고 인류의 형제애만 있는 세상.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죠.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요. 그리고 세상은 하나로 살아갈 거예요.’


아내 오노 요코가 쓴 시에 영감을 받은 John Lennon이 작곡한 ‘Imagine(3위)’이다. 모든 인류가 서로를 계층과 계급으로 구분해 차별하지 않는, 오늘을 위해 평화롭게 하나가 되어 사는 세상. 현세에 실현되겠냐마는 공상하는 것만으로 축복받은 기분이다. 부드러운 발라드가 절규하듯 열창하는 헤비 록보다 세상을 더 크게 울려 팔등 위로 솜털을 돋우고 전율을 자아낸다.


John Lennon - Imagine(1971년, 3위)


이제야 끝났다는 공허함이 몰려든다. 먹먹한 기분에 갑자기 코 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살짝 시큰해진다. 옆에서 누나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그렁히 맺힌 물방울이 떨어졌을지 모른다. 감동의 적막에서 깨어나 여기에 임했다는 증거를 몇 장 남긴다.


대장정을 하느라 수고한 누나와 나, 우리를 챙기느라 고생한 길벗, 배낭과 신발, 스틱이 고즈넉하게 광장의 정오를 즐긴다.


성당 맞은편 건물 아케이드 그늘에 앉아 아치 너머로 하염없이 성당을 응시한다. 나를 이끄는 수고를 마다치 않은 길벗 사진을 찍는다. 장갑은 배낭 위에 올려놓고 스틱은 배낭 등판에 기대 세우고 신발을 곱게 벗어 가지런히 정렬한 채. 까미노에서 켜켜이 쌓은 감정들을 남김없이 토한 뒤에야 발걸음을 옮긴다. 아주 덤덤한 심정으로 뒤돌아서서. 세미나리오 마노르 알베르게에서 공허한 마음을 쓰다듬는다. 무언가 다시 채울 준비를 마치고선 4시 즈음 대성당에 재우쳐 간다. 여정을 마친 순례자 모드를 끄고 들뜬 여행자로 분해서.


아케이드에서 대성당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일화를 즐긴다. 알베르게에서 순례자 모드 해제 단추를 누른다. 창문 밖으로 순례자 동상을 찾아 헤맨 몬테 도 고소의 전경이 보인다.


영광의 문을 관람한 다음 대성당 신랑으로 들어간다. 제대 주변이 온통 황금색 물결로 일렁인다. 하지만 부르고스와 레온 대성당에 비해 조촐한 편이다. 순례객을 맞이할 전례에 치중하는 성당 본연의 기운이 충만하다.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듯 포근하다. 제대 중앙에 위치한 야고보 입상을 둘러본 후 무덤으로 이어진 좁은 통로를 내려간다. 야고보를 모신 무덤 앞에 선다. 성인은 휘영청 밝은 은관에 잠들어 있다. 어머니와 처부모님, 지인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근 2,000년 전에 세상을 등진 성인이 내게 노래를 불러주는 착각이 인다.


‘고통을 느낄 때마다 참아, 세상의 모든 짐을 네 어깨에 올려놓지 마. 자신의 세상을 냉정히 대해 쿨하게 보이려는 바보들을 잘 알잖아. 그러니 보낼 건 보내고 받아들인 건 받아들여 시작해. 함께 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잖아.’


오노 요코에 빠진 존 레넌은 아내 신시아와 이별을 택했다. 어린 나이에 친모 신시아와 헤어지게줄리안. 존 못지않게 이들과 친했던 폴 매카트니는 줄리안에게 달려가 위로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그녀를 받아들여. 그녀를 네 안에 들이는 순간 더 좋아지기 시작할 거야라며. The Beatles의 ‘Hey Jude(8위)’는 폴이 줄리안을 위해 만든 곡인데 정작 이 사달을 일으킨 존 레넌은 한동안 오노 요코를 택한 자신을 지지하는 노래라 착각했다고 알려진다. 존의 아전인수가 어이없다. 7분 11초의 서정적인 이 명곡은 비틀스의 최대 히트곡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싱글 중 하나로 꼽힌다.


The Beatles - Hey Jude(1968년, 8위)


‘보낼 건 보내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라는 구절은 말없이 그저 웃는 소이부답의 해학海壑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고난과 행복 모두 언젠가 지나가게 된다는 지혜를 담은 경구다. 무엇이 일어나든 흘려보내 마음을 자유롭게 두라는 노장 사상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Bob Dylan은 특권 계층에 속했다가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자유를 찾으라며 ‘Like a rolling stone(1위)’을 흥얼거렸다. 나를 제약하는 사회적 관습, 그것을 대하는 자신의 위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는 삶을 지향하라면서.


수십일 간에 걸친 고행을 갈무리하는 명곡들의 가사에서 내가 까미노를 걸으며 그리도 찾으려 했던 순례의 의미를 깨닫는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렛 3장 1절)


모든 일이 그 나름의 때와 목적이 있으니 변화와 흐름이 삶의 본질임을 이르는 말씀이다. 내게 주어진 환경과 숙명이 무엇이든 회피하지 말고 맞닥트려 견뎌내라. 그리고 그 것을 즐겨라. 그러면 이 또한 지나가리니. 까미노는 내게 이리 말하는 것 같다.


7시 반 미사를 드렸다. 아쉽게 향로 의식 봉헌은 없었다. 가뜩이나 익숙지 않은 의식에 스페인어로 진행한 강론일망정 순례의 끝을 미사로 마무리하여 순례 중 저지른 죄를 사해 받은 기분이다. 수원 김 교장 선생님 부자를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순례 중 처음으로 밤 10시 반에 숙소로 돌아갔다.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제대 중앙에 세워진 야고보 입상.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형상한 스테인드글라스. 야고보 유해를 모신 은관과 보타푸메이로, 향로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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