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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Jan 01. 2020

첼로의 거장: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자클린 뒤 프레

전설의 첼리스트


  10 월 말에 서평단 신청했던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을 지난 주에야 리뷰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듯 11 월부터 며칠씩 리뷰 마감기한을 넘기더니 [영화관에 간 클래식]과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은 수령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서평을 올리는 불성실의 극치에 이르렀다. 클래식 서적이라는 호기심에 이끌려 짧은 기간에 7 권을 신청한 과욕 탓이다.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에는 반가운 대가들이 꽤 있다. 카랴얀, 번스타인, 호로비츠, 하이패츠,  카잘스, 분덜리히, 칼라스, 파바로티 등 애장클래식 LP를 리코딩한 거장들이다. 특히 로스트로포비치와 뒤 프레는 더욱 반가웠다. 평소 자주 듣는 음반의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오디오에 관심을 둔 지 20 년이 되어 간다. 클래식 작품을 하나둘씩 듣기 시작한  15 년 다. 난생 처음 구입한 클래식 시디는 헨델의 [메시아]였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소나타]를 구입했다. 선율이 너무 애절하고 아름다워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듣는다. 몇 해 전에는 첼로 소리에 빠져 엘가의 [첼로 협주곡] 엘피를 추가했다.
 
  클래식 입문이래 내겐 잘못 든 고쳐야 할 버릇이 있다. 클래식 작품을 작곡가와 작품명 위주로 기억는 것이다. 그간 누가 지휘했고 연주했는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도 중고 LP 쟈킷을 고를 때 연주자나 지휘자보다 작곡가와 작품에 눈이 먼저 간다. 음악가들이라면 누구나 작곡가가 남긴 악보를 재연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작곡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서 훌륭하게 퍼포먼스를 들려주진 않는다. 연주자와 지휘자에 따라 동일한 작품을 저마다 다른 수준으로 연주할 수밖에 없다. 노래 예로 들자. 김광석 노래 중 [서른 즈음에]가 있다. 누구나 즐겨 부른다. 그러나 부르는 사람에 따라 김광석 못지않게 부를 수도 있고 들어주기 어려울 정도의 음치도 다. 수년 전에예전에 구입했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한 첼리스트가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였고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한 이가 자클린 뒤 프레였음뒤늦게 알았다. 시디와 엘피 쟈킷에 쓰인 연주자 이름을 건성으로 무심 넘긴 탓이다. 작곡가가 훌륭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이토록 울려, 이 작품들을 자주 찾게 만든 이야말로 바로 로스트로포비치와 자클린 뒤 프레이다. 두 연주자가 아니었으면 지금껏 느꼈던 감동이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가 듣기에는 리코 마이나르디가 연주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도 감칠 맛 나지만 로스트로포비치 연주가 더 낫다.

  연초에 강남역 근방에서 저녁 모임이 있었다. 시간이 좀 남아서 가끔 들르는 중고 LP 가게에 갔다. 로스트로포비치와 하이패츠 연주반을 고르고 꽤 오래 고민한 끝에 결국 다른 음반을 골라 나왔다. 내가 예정한 가격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LP 모으는 욕심이 꽤 있어도 아직까지 중고 LP 한 장에 10만 원을 넘기진 않았다. 상태 양호한 오리지널 수입반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서 들었다 놨다를 몇 번이나 했다. 결국 포기하고 나오고나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올 여름에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내가 사려했던 수입반과 똑같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구했다고 알려 왔다. 선배는 이미 똑같은 일본반 한 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장을 더 구입했다. 오리지널 북클릿과 처음 구매한 사람이 기념으로 메모해 둔 종이 등 중고거래에서 드문 구성물들이 쟈킷 안에 고스란히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음반을 두 장 소장하게 되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일본반을 내게 저렴하게 양도해 주었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상태 좋은 중고 명반을 산 경험이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첼로와 피아노의 협주곡이다. 단 한 대의 첼로와 피아노에서 울리는 선율이 어느 교향곡보다 더 가슴 깊게 다가선다. 로스트로포비치가 긁어는 첼로 소리에 주렁주렁 맺혀 마구 쏟아질 법한 눈물을 연상하게 된다. 아르페지오네는 실전된 악기다. 기타와 비슷한 크기에 울림 구멍이 있고 첼로처럼 다리사이에 안아서 활로 켜는 고악기이다. 현은 6개고 비올라와 첼로 중간이라 보면 이해하기 쉽다. 아르페지오네가 실전된 이후는 주로 첼로로 연주다. 간혹 콘트라베이스나 바이올린, 금관악기로도 연주되곤 한다. 슈베르트가 이 곡을 작곡할 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였다고 한다. 피아노가 없는 허름한 방에서 머리에 떠오른 악상을 오선지에 그려 넣은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이다. 애잔하지 않을 수 없는 선율이 그려진 이유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oYd0yj4Vreg
로스트로포비치 연주 -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영상
 
  자클린 뒤 프레. 단 한 번의 연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여성 첼리스트. 전설처럼 등장하여 짧은 불꽃을 태우고 이내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녀의 전성기는 10 년이 채 되지 않는다. 행복했던 결혼생활도 찰나였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다니엘 바렌보임은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다. 다발성 경화증이란 신경과 근육이 굳어가는 무서운 병에 걸린 그녀를 혹독하게 대했으며 병세가 악화되자 스캔들을 일으킨 후 이혼을 하였다. 결혼을 할 당시에는 바렌보임에 대한 평은 비록 천재의 자질을 보이긴 하지만 자클린의 재능에 빛이 가린다는 게 중론이었다. 아내 덕에 손쉽고 더 빠르게 이름을 얻게 된 그가 매정하게 아내를 버린 듯하여 정이 가지 않는 인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_yxtaeFuEQ
자클린 뒤 프레 연주 -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영상,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엘가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근대 작곡가이다. 고전주의 위에 영국적 색채를 입 영국의 후기 낭만음악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영국인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기실 영국 외에서는 호평을 받지 못한다. 그의 작품 중 최고의 곡 중 하나가 [첼로 협주곡 E단조 op. 85]이다. 그가 남긴 단 하나의 첼로 협주곡이고 자클린 뒤 프레의 연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협주곡 치고는 4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1, 2 악장이 쉼 없이 이어서 연주되므로 사실상 전통적 형식인 3 악장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협주곡 양식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3 악장 아다지오가 아름답고 기품 있게 느껴지고 4 악장은 빨라 당당하게 들린다. 자클린 뒤 프레와 엘가를 유명하게 만든 이 곡은 존 바비롤리 경의 지휘로 EMI에서 리코딩되었다. 불꽃같은 찰나의 전성기를 보낸 그녀는 갔지만 그녀가 남긴 이 음반은 전설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로스트로포비치와 자클린 뒤 프레가 각각 연주했다. 전성기를 지나 황혼에 다다르는 연주자와 폭발적인 젊음의 그녀가 어떻게 해석하고 연주하는 가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생이란 이처럼 20세 약관의 빛나는 청춘도,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석양의 노익장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우리네 인생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갈구하는 열정 앞에서는 말이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자클린 뒤 프레의 [첼로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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