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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Jan 04. 2020

[서평, 리뷰] 설민석의 삼국지 1

나의 노스탤지어이자 로망

  1.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으로 기억된다. 서재에 꽂혀 있던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를 뽑아 든 이래로 삼국지는 내 인생의 동반자였다. 월탄 삼국지 5권 마지막 페이지를 처음 덮을 때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둘 중 한 명만 있어도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던 복룡(제갈량), 봉추(방통)를 다 얻고서, 또한 극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오호 대장(관우,  장비, 마초, 조운, 황충)을 거느리고도 유비가 천하를 통일하지 못한 이유'이다. 다른 하나는 관우와 장비가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거나 오장원에서 공명이 덧없이 생을 마치지 않았다면 과연 삼국을 평정할 수 있었을까라는 희망 섞인 질문이다. 이런 공상에 이르자면 언제나 아쉬움에 가슴이 저미었다. 그래서일까? KOEI 삼국지 게임 1 편 ~ 12 편까지 플레이할 때마다 언제나 주저없이 평원의 유비를 시나리오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소설상 유비의 행로대로 본거지를 옮기다가 신야성에 정착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매번 조조를 사로잡는 연출로 통일 전쟁의 대미를 장식했다. 내게 삼국지란 삼국지 영문명, 'Romance of the three kindoms'처럼 노스탤지어를 간직한 로망이다.

   

  2. 한국 성인의 독서량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령별로 비교하면 초등학생이 연간 67권으로 가장 많이 읽는다. 중고등생으로 올라갈수록 점차 줄어들어 성인은 매년 평균 8권 정도를 읽는다. 그나마 성인의 40 %가량은 연간 도서 1권을 채 읽지 않고, 25 %는 독서를 아예 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가요계처럼 출판시장 역시 청소년층이 최대 시장이다. 스마트폰과 전자책이 보급되면서 인쇄물의 독서량 감소를 피할 수 없다해도 디지털 시대의 독서환경 또한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지식검색을 하던 시대에서 유튜브 동영상 검색 시대로 접어든 지 꽤 오래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글이란 읽지 않고 보는 대상이다. 여기에 입시위주 교육 현실이 난독증을 확산시키고 있다. 조기교육과 두뇌계발이란 욕심에 초등학생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독서를 시키는 탓에 어린이들이 책이라면 학을 뗀다. 수시와 정시를 함께 준비해야 하는 살인적인 입시 부담에 이해없이 외우기 급급한 나머지 글을 읽어도 문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6년 국제 학력 비교평가 읽기 영역에서 세계 1위를 했던 한국이 최근 9위권으로 쳐졌고 문해력 수준은 OECD 평균 이하로 전락했다.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1/3인 상태에서 어떤 교육방법인들 성공할 수 있겠는가? 독서시장의 주 타깃으로 설정해야 할 청소년들의 읽기 수준이 이 정도라면 출판사가 선택할 전략이란 명약관화하다. 가볍고 쉽게 읽힐 책이 해법이다. 자극적인 제목과 다소 촌스러울 정도의 간결한 디자인, 삽화와 그림, 구어체 스타일로 편집된 입문 해설서 스타일. 오프라인 서점에 들어서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책들이다. 동양의 고전,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삼국지'인들 출판계에 만연하는 쉬운 책 콘셉트를 피하기 쉽지 않다.


  3. 설민석이 누구인가? 입담 좋고 대중 인지도가 높은 스타 강사이자 방송계를 넘나드는 한국사 평론가이다. 청소년들과 역사, 인문학에 흥미를 느끼는 성인층에게 한국사 열풍을 이끌어낸  대표적 주인공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수능 등 입시와 자격증 시험을 대비한 강의, 교재 저술뿐 아니라 학습용 역사 만화, 한국사 특강, 조선왕조실록 등 다양한 역사서를 저술한 화제의 인물이다. 그는 역사 입문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한다는 긍정적 평가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단편적 해석과 간혹 전문성이 떨어지는 해설을 한다는 비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 그러나 출판사 입장에서는 시장성 높은 작가이다. 이런 그가 [설민석의 삼국지 1, 2]을 대중 앞에 들고 나왔다.


   작가 설민석은 서문과 부록에서 삼국지 집필 취지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① [설민석의 삼국지 1, 2(이하 설민석 삼국지]는 삼국지연의를 원전으로 한 소설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원전을 그대로 번역하거나 평역 하지 않았다. 그의 상상을 더하여 줄거리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원전에 없는 내용을 새롭게 창작하거나 일부 다르게 묘사하였다. ② 삼국지 읽기를 버거워하는 독자들을 배려하여 가급적 큰 줄거리 위주로 전개했다. 원전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그리 중요치 않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무수한 등장인물도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한 두 명으로 압축하여 쉽게 읽을 수 있다. ③ 장르상 소설이지만 원전과 설민석 삼국지를 이해하기 쉽도록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였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옛 지명을 표기한 지도, 등장인물의 세력 분포와 주요 전장의 위치와 경로를 그린 삽화, 매 장의 말미마다 본문 내용에 대한 Q&A 등을 배치하였다. 상기한 세 가지 집필 취지는 이 책을 접한 이들의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평가될 것이다.


  4. [설민석 삼국지]를 서평, 리뷰하기에 앞서 장황스럽게 사족을 단 이유가 있다. 집필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지 않고 이 책을 주욱 읽어나갈 경우 삼국지 마니아로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편견과 부정적 선입견이 될까 걱정되었다. 리뷰는 책을 읽은 독자 개인의 주관적 감상이 앞서는 영역이다. 그러나 서평이라면 주관적 견해나 감상에 머물지 않고 책을 읽은 한 개인이 느끼고 평가한 것을 대중들에게 근거와 주장을 가지고 큰 틀에서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설민석 삼국지가 원전을 근거로 한 까닭에 촉한 정통론(유비의 촉한이 한나라를 계승하는  정통이라는 관점, 따라서 조조는 간웅에 지나지 않는다)입장에서 조조를 재평가하지 않았다고 비평한다면 이는 리뷰어의 주관적 의견이지 서평이라 할 수 없다. 삼국지를 촉한 정통론에 입각해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조조 등 다른 군웅들 위주로 재평가할 것이냐는 시대 흐름과 요구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서평을 시작할 때 예로 든 유비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아쉬움을 진하게 느꼈던 소싯적 감상은 촉한 정통론에 입각한 오래된 내 사적 감정에 불과하다. 오히려 서른 이후로 내게 유비 삼 형제는 정과 구습에 얽매인 보수파를 대변하는 세력로 비춰졌다. 반면 조조야말로 후한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민중들의 변혁 요구에 부응하려는 권력의지에 충만한 정치가라고 해석되었다. 어릴 때와 다르게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내 시야가 변화한 결과이다.


  이런 맥락에서 설민석 삼국지를 평가하기 위해 나름대로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저자가 밝힌 명확한 집필 의도가 충분하고 효과적으로 반영되었는가? : 원전의 10권 남짓 분량을 단 2권으로 압축해서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무리 없이 그려내도록 적절하게 편집이 되었는지를 평가한다.


  둘째, 문학적 관점에서 경쟁 작품들에 비해 얼마만큼 양질로 서술되었는가? : 저자가 [설민석 삼국지]를 소설로 명확히 규정한 이상 문학작품이란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소설 3대 요소인 주제, 구성, 문체를 기준으로 평론해도 재미있으리라 기대된다.


  셋째. 신간 서적으로서 차별적인 존재 가치가 있는가? : 독자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신간 서적의 출판 홍수에서 산다. 무수한 책들 중에서 한 권이 더해진들 얼마나 새로운 지식과 교양을 제공하겠냐마는 기왕에 책을 쓴다면 기존의 책에서 전하지 못한 차별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존의 삼국지에 비해 설민석 삼국지가 갖는 존재가치는 무엇일까?


  서평을 하기에 내가 지닌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더라도 이 기준하에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서평에 인용될 부분을 발췌한 사진 - 고민거리가 꽤 되어서 마크가 많다.>


  5-1. 집필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었는가?


  저자는 소설 장르의 범주 내에서 삼국지 읽기가 버거운 독자층을 위해 원전의 줄거리와 큰 흐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2권으로 저술하였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책 말미 부록에서 원작에 없던 내용을 창작했거나 원작과 다르게 묘사된 부분은 따로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아울러 등장인물이 1,2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원전과 달리 작품 전개에 부족하지 않는 선에서 주요 인물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손쉽게 읽을 수 있게끔 정성껏 준비했다는 저자의 의도에 아마도 대다수 독자들이 동의하리라 본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일러스트와 함께 간단히 소개하고 요즘 청소년에게 익숙한 구어체로 묘사하였다. 쉽게 쓰인 만큼 문장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 삼국지 입문서로서 만화에 익숙할 나이가 지난 청소년들이나 부담 없이 읽을만한 콘텐츠를 선호할 20~30대에게 제 격이다. 삼국지연의를 번역하거나 평역한 다른 삼국지와 차별화된 점이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과 전투 장면을 지도로 묘사하여 이벤트가 발생한 상황이나 전투가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또한 세력 간의 원근 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당 장에 등장한 주요 인물 간의 관계도를 그려 넣어 줄거리 파악을 용이하게 해 준다.

                                                                         

 <설민석 삼국지의 주요 지도와 설명 체계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삼국지 옛 지명의  위치를 안내하는 지도, 2) 주요 사건에서 등장인물의 배경과 이동경로 소개 그림, 3) 주요 전투별 전황과 부대 배치와 행군로 소개 삽화, 4) 각 장마다 상호 대립, 친분/동맹관계를 도해한 관계도>


  여러 등장인물을 한 명으로 축약하여 사건을 전개시킨 점은 이 책만의 독특한 접근이고 독자의 이해도를 높인다는 장점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한계도 명확하다. 특히 조조-원소의 명운을 가린 관도대전 전후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삼국지의 3대 대전은 관도, 적벽, 이릉대전이다. 나머지 전쟁에서는 단일 전투에 동원된 전력 규모가 이에 비견될만한 게 거의 없다. 그러나 적벽대전은 정사에서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릉대전도 과장된 면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관도대전이야말로 중국 통일에서 가장 커다란 단초를 제공한 전쟁이다. 관도대전 전후 과정에서 원소 진영 내 참모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과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원전에서 그려진 저수와 전풍, 봉기와 심배 그리고  곽도와 신평의 세 그룹 간의 경쟁과 대립관계는 상당히 입체적이었다. 천자를 모시고 한나라를 부흥한다는 명분과 통일에 대한 갈망이라는 점에서나 원소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세 아들들끼리의 경쟁에 책사들이 사오 분열하여 대립하는 과정을 읽어 내려가는 것은 몰입과 이해의 측면에서는 부담이겠지만 삼국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너무 단선적으로 묘사되었다.


   5-2 소설적 가치가 충분한가?


  그저 쉽게 쓰여 읽기 편하다고 소설적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가 소설이라 단언하였으니 소설적 완성도를 따져야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은 저자의 100% 창작물이 아니다. 소설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집필 의도에서 이미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겠다고 전제했으므로 촉한 정통론에서 벗어난 해석을 할 여지가 애당초 없다. 결국 [설민석 삼국지]의 주제가 여타 소설책들과 다르게 주제를 적절히 변주했느냐로 평가하기엔 부적절하다.


  소설적 관점에서 줄거리 전개상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 다름 아닌 초선의 등장 시점이다. 초선이 여포에 한눈에 반했다는 저자의 설정을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극 초반부여서 삼국지에 익숙한 독자라도 깊게 생각하지 않거나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저자 의도처럼 초선이 등장한 순서에 따라 스토리를 전개해도 맥락을 이해하는 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여포가 반동탁 연합군 세력에 밀려 장안으로 옮겨 가고 나서야 초선이 등장하는 데에 반해 이 책에서는 낙양에서 이미 초선으로 인해 동탁과 여포의 갈등을 그린다. 두 사람의 갈등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반동탁 연합군과의 전투는 왠지 어색하다. 배반의 끝판왕 캐릭터 여포라면 반동탁 연합군의 공적이 되기 전에 동탁을 배신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문체, 즉 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장면의 묘사, 등장인물 간의 대화는 소설을 전개하는 문장의 핵심이다. 이 책이 청소년이나 20~30대에 초점을 맞춘 탓인지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체가 빈번하게 나온다. 젊은 층에게 익숙할지언정 아름답거나 감동을 줄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특히 여포, 동탁과 초선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단언컨대 이 장면에서는 왠지 아쉬움을 넘어 손이 오글거린다. 심하게는 독자들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비단 이들 간의 대화뿐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상황 설명 등은 현대 어투로 독자들에게 익숙하게 써 내려갔는지 모르지만 문학적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벤처기업의 일상을 다룬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대적 감각으로도 얼마든지 간결하고 쉽게 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설민석 저자가 전문 소설가가 아닌 이상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할 이유가 없겠지만 최소한 소설을 쓴다는 작가적 성의가 못내 아쉽다.


  5-3 설민석 삼국지의 존재가치란 무엇인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차별성은 삼국지의 주요 에피소드에 한국사를 연결하는 해석과 설명에 있다. 서서가 이끌었던 첫 번째 신야성 전투에서 조인의 팔문금쇄진법이라는 진법을 설명할 때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을 언급한다. 양 진법의 차이와 장점뿐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업적까지 간단히 소개한다. 또한 제갈량이 이끈 두 번째 신야성 전투에서는 조조 군에 수공을 가하는 장면에서 고려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을 이끌어 낸다. 한국사와 연계하여 해설하는 이런 방식은 여타 삼국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점이다. 이 외에도 재담꾼 설민석의 장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원전은 유비를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섰고,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 붉고 얼굴은 옥처럼 깨끗했다. 팔은 어찌나 긴지 무릎에 닿고 키는 일곱 자 다섯 치 정도였다'라고 묘사한다. 유비를 소개하는 이 구절에 대해 저자는 백성의 말을 잘 들어주고 민초들의 손을 잡아 이끄는 모습과 때 묻지 않은 심성을 표현했다고 해석한다. 설민석의 입심과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배신자 여포를 받아 준 유비가 막연히 인정 깊은 이가 아닌 백성을 편히 지키기 위한 방편이라 봤던 것도 그의 재담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유비가 유표에 의탁하는 장면에서는 중국의 꽌시를 예로 설명한다. 꽌시란 일종의 의리라는 중국인 특유의 정서이다.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를 한국에서는 '정'에 소구 하지만 중국에서는 '의리'와 윗사람에 대한 '도리'에 소구 한다는 설명에 이르자면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설민석적 해석에 아쉬움도 많다. 특유의 입담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에게 따라다니는 비평 중 하나는 단편적 해석의 나열이란 점이다. 유비가 유주에서 의병을 기병하여 첫 번째 황건적과의 일전을 가볍게 승리한 다음 청주에 원군으로 출병하여 전투를 하는 장면에서 저자는 유비를 일컬어 병법과 지략의 대가라고 평한다. 기실 유비는 원작에서 제갈량을 만나기 전까지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는 끝없이 도망치는 패장에 불과했음에도 어떤 근거로 병법과 지략의 대가라고 평했는지 의아스럽다. 한편 저자는 후한 말기 당시 베이징을 중국의 중심지로 설명하는데 잘못된 해석이다. 당시에는 황화강과 양자강 사이의 중원이 중국의 중심이었다. 중원지방은 오늘날 허난성 대부분, 허베이, 산시성, 허베이성의 남부, 산둥성의 서부지역을 일컫는다. 베이징은 중원에서 한창 떨어진 변경의 영역이다. 유비의 사형으로, 원소에 패한 공손찬의 성을 '공손'이 아닌 '공'으로, 이름을 '손찬' 오기한 점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전공이 한국사라고 해서 회피될 성질이 아니다. 중국 역사와 삼국지에 꽤 문외 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고증과 준비가 부족했다는 반증이다. 저자가 삼국지 최강의 무장을 여포와 조운으로 평가하는 듯한 설명도 의아한 부분이다. 유명한 PC게임인 코에이 삼국지에 익숙한 탓에 필자는 삼국지 최강의 무력 순위를 다음처럼 평가한다. 여포>장비>관우>조운>허저>전위>황충>문추=태사자 순이다. 참고로 중국인들은 삼국지 무장들의 무력 순위를 '일여이마삼전위, 사관오조육장비, 칠허팔황구강유'로 평한다. 즉  여포>마초>전위>관우>조운>장비>허저>황충>강유 순으로 꼽는다. 마오쩌둥은 스스로 '일여이조삼전위, 사관오마육장비,  황허손태양하후, 이장서방감주위, 문안타말여등강'이라 일컬었다. 여포>조운>전위>관우>마초>장비>황충>허저>손책>태사자>하후돈>하후연>장료>장합>서황>방덕>감녕>주태>위연>문추>안량>등애>강유'순이라는 것이다.


  이해를 손쉽게 하기 위해 저자는 기존 삼국지와 차별되도록 각종 지도와 관계도를 적절히 활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저자가 독창적으로 구현한 방법이 아니다. [지도로 읽는 삼국지 100년 도감]에서 이미 다룬 방법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이 책에서 제시했던 참고자료들이 저자의 발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서적을 그대로 도용하지 않고 단지 아이디어를 따와 다른 형식으로 작성되었기에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평하고 싶다.


<[삼국지 100년 도감] 발췌 - 그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삼국지 배경의  지명지도, 2) 주요 연대별 세력 분포와 사건 연도, 3) 주요 전투 해설도, 4) 주요 연대별 세력 간 동맹-대립  관계도>


  5-4. [설민석 삼국지] 총평


  결론적으로 [설민석 삼국지]는 저자가 집필하고자 했던 의도대로 쉽게 독자에게 다가서게끔 작성되었다. 하지만 소설이란 문학 장르로 평가해 볼 때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여타의 삼국지 내지, 신간 서적으로서의 차별성이라는 기준에서는 특유의 재담과 해석, 한국사와 연결하는 창의성이 돋보임과 동시에 중국사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거나 여전히 단선적 해석에 그친다는 한계를 가진다고 평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부록 삼국지 자세히 들여다 보기'였다. 소설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원작에 없던 창작 내용을 구체적으로 되짚어주고, 원전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부언해준다. 또한 원작과 다르게 묘사되어 오해를 살 만한 장면들도 원작에서 기술된 내용을 개략적으로 꼼꼼히 요약해준다. 소설 형식과 2권 요약본이라는 한계를 넘고자 노력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삼국지 마니아로 자칭하는 독자에게는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부족하다거나 10권짜리 삼국지 완역본을 읽기에 부담을 느끼는 입문자들이 읽기에 적당하다. 디지털과 동영상에 익숙해진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는 양손잡이 읽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디지털은 빠르게, 인쇄물은 깊게 읽는 방법이다. 인쇄물은 깊게 읽어야만 책이 전달하려는 의미나 메시지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저자가 제기한 주제와 주제의  논거, 주장의 타당성 등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 아울러 동일 주제의 2종 이상의 책을 섭렵해야만 종합적 독서능력이 배댱될 수 있다. 삼국지 입문자들에게 이 책은 디지털 콘텐츠 성격이다. 주욱 읽어 나가도 이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지 말고 좀 더 완전한 삼국지를 통독함으로써 동양의 고전이라는 삼국지가 주는 삶의 교훈과 감동을 만끽해보라 권하고  싶다.


6. 마무리하며


  간결한 편집 의도상 삼국지에서 자주 나오는 한시들이 거의 빠져 있다. 요즘 독서 시류로 치자면 삼국지를  읽어나가는데 한시는 방해 요소일 것이다. 그래도 주요 장면에 이어 나오는, 처연하거나 비장한 한시는 독자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하지 않다. 오늘날까지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제갈량의 '출사표'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독자들이 이 글에서 백전백승의 전략가가 아닌 유능하고 자상한 정치가로서 제갈량의 진면모를 만끽하길 바란다.


  " 선제 께옵서는 창업하신 뜻의 반도 이루지 못하신 채 중도에 붕어하시고, 이제 천하는 셋으로 정립되어 익주가 매우 피폐하오니, 참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급한 때이옵니다. 하오나 폐하를 모시는 대소 신료들이 안에서 나태하지 아니하고 충성스러운 무사들이 밖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음은 선제께옵서 특별히 대우해주시던 황은을 잊지 않고 오로지 폐하께 보답코자 하는 마음 때문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그들의 충언에 귀를 크게 여시어 선제의 유덕을 빛내시오며, 충의 지사들의 의기를 드넓게 일으켜 주시옵소서. 스스로 덕이 박하고 재주가 부족하다 여기셔서 그릇된 비유를 들어 대의를 잃으셔서는 아니 되오며, 충성스레 간하는 길을 막지  마시옵소서.

~~~ 중략  ~~~


  원컨대 폐하 께옵서는 신에게 흉악무도한 역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부흥시킬 일을 명하시고, 만일 이루지 못하거든 신의 죄를 엄히 다스리시어 선제의 영전에 고하시옵소서. 또한 만약 덕을 흥하게 하는 말이 없으면 곽유지, 비의, 동윤의 허물을 책망하시어 그 태만함을 온 천하에 드러내시옵소서. 폐하 께옵서도 마땅히 스스로 헤아리시어 옳고 바른 방도를 취하시고, 신하들의 바른말을 잘 살펴 들으시어 선제께옵서 남기신 뜻을 좇으시옵소서. 신이 받은 은혜에 감격을 이기지 못하옵나이다! 이제 멀리 떠나는 자리에서 표문을 올림에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씀을 아뢰어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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