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리뷰] 설민석의 삼국지 1

나의 노스탤지어이자 로망

by 여운설

1.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으로 기억된다. 서재에 꽂혀 있던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를 처음 집어 든 그날 이후, 삼국지는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다섯 권짜리 월탄 삼국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두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하나는 ‘둘 중 한 명만 있어도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던 복룡(제갈량)과 봉추(방통)를 모두 얻고, 또한 극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오호대장(관우, 장비, 마초, 조운, 황충)을 거느리고도, 왜 유비는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을까라는 물음이었다.
또 하나는, 만약 관우와 장비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더라면, 혹은 공명이 오장원에서 덧없이 생을 마치지 않았다면, 과연 촉이 삼국을 평정할 수 있었을까라는 희망 섞인 질문이었다. 이런 공상에 빠질 때면 언제나 가슴이 저릿했다.

그래서일까. KOEI 삼국지 게임 1편부터 12편까지 플레이할 때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평원의 유비를 시나리오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소설 속 유비의 행로를 따라 본거지를 옮기다가 신야성에 정착해 영토를 확장하고, 마지막엔 늘 조조를 사로잡으며 통일 전쟁의 대미를 장식했다.
내게 삼국지는, 영문명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처럼, 노스탤지어가 깃든 로망이었다.


2. 한국 성인의 독서량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령별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연간 67권으로 가장 많이 읽지만, 중고등학생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줄어 성인은 매년 평균 8권 정도만 읽는다. 그나마 성인 40%는 연간 1권도 읽지 않고, 25%는 독서를 아예 하지 않는다.

출판시장도 가요계처럼 청소년층이 최대 고객이다. 스마트폰과 전자책 보급으로 종이책 독서량 감소는 피할 수 없다 해도, 디지털 시대의 독서 환경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네이버 같은 포털 지식검색의 시대에서 유튜브 영상 검색 시대로 넘어간 지도 꽤 오래다. 요즘 청소년에게 글이란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상이다.

여기에 입시 위주 교육 현실이 난독증을 확산시키고 있다. 조기교육과 두뇌계발 욕심에 초등학생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책을 읽히다 보니, 어린이들이 책이라면 진저리를 치게 된다.
수시와 정시를 함께 준비해야 하는 살인적인 입시 부담 속에서, 학생들은 이해 없이 외우기에 급급해 글을 읽어도 문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6년 국제학력비교평가 읽기 영역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던 한국은 최근 9위권으로 내려앉았고, 문해력 수준은 OECD 평균 이하로 전락했다.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1/3이나 되는 현실에서, 어떤 교육 방법인들 성공하겠는가.

독서시장의 주 타깃인 청소년들의 읽기 수준이 이 정도라면, 출판사들이 선택할 전략은 자명하다. 가볍고 쉽게 읽히는 책이 해법이다. 자극적인 제목, 간결하다 못해 다소 촌스러운 디자인, 삽화와 그림, 구어체로 편집된 입문 해설서 스타일. 오프라인 서점에 들어서면 쉽게 마주치는 책들이다.
동양의 고전,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삼국지』라 해도 출판계의 이런 ‘쉬운 책 콘셉트’를 비껴가기란 쉽지 않다.


3. 설민석이 누구인가. 입담 좋고 대중 인지도가 높은 스타 강사이자 방송계를 넘나드는 한국사 평론가이다. 청소년과 인문학에 관심 있는 성인층 모두에게 한국사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수능 등 입시와 자격증 시험 대비 강의, 교재 저술뿐 아니라 학습용 역사 만화, 한국사 특강, 『조선왕조실록』 등 다양한 역사서를 집필한 화제의 인물이다. 역사 입문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한다는 긍정적 평가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단편적 해석과 전문성 부족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그러나 출판사 입장에서는 시장성 높은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런 그가 『설민석의 삼국지 1, 2』를 들고 나왔다. 작가는 서문과 부록에서 집필 취지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첫째, 『설민석의 삼국지』는 삼국지연의를 원전으로 한 소설이다. 원전을 그대로 번역하거나 평역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상상을 더해 줄거리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원전에 없는 내용을 창작하거나 일부 다르게 묘사했다고 했다.
둘째, 삼국지를 어렵게 느끼는 독자들을 배려해 큰 줄거리 위주로 전개했고, 원전의 흐름 이해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으며, 무수한 등장인물도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한두 명으로 압축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셋째, 장르상 소설이지만 원전과 본서를 함께 이해하도록 다양한 장치를 더했다. 옛 지명을 표기한 지도, 등장인물의 세력 분포와 전장의 위치·경로를 그린 삽화, 매 장 말미의 Q&A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집필 취지는 독자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것이다.


4.『설민석 삼국지』를 서평하기에 앞서 이렇게 장황한 사족을 단 이유가 있다. 집필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책을 읽어나가면, 삼국지 마니아로서 곤혹스러운 지점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여 이런 점이 편견과 부정적 선입견으로 작용할까 우려스러웠다.
리뷰는 독자 개인의 주관적 감상이 앞서는 영역이다. 그러나 서평이라면, 주관에만 머물지 않고 책을 읽은 개인의 감상과 평가를 대중에게 근거와 논리를 갖춰 전달해야 한다. 예컨대, 『설민석 삼국지』가 촉한 정통론 입장에서 조조를 재평가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면, 이는 리뷰어의 주관일 뿐이다. 삼국지를 촉한 정통론으로 볼지, 조조 등 다른 군웅 중심으로 재평가할지는 시대 흐름과 사회적 요구까지 아우르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어릴 적 유비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이 저미던 내 감상도 결국은 촉한 정통론에 입각한 개인적 감정이었다. 그러나 서른을 넘기며 내 시야는 달라졌다. 이제 유비 삼형제는 정과 구습에 얽매인 보수 세력으로 보이고, 오히려 조조야말로 후한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민중의 변혁 요구에 부응한 정치가로 재해석된다.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설민석 삼국지』를 평가하기 위해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첫째, 저자가 밝힌 집필 의도가 충분하고 효과적으로 반영되었는가? 원전의 10권 남짓한 분량을 단 2권으로 압축해 줄거리와 인물을 무리 없이 구성했는지가 관건이다.

둘째, 문학적 관점에서 경쟁작들에 비해 얼마나 양질로 서술되었는가? 저자가 이 책을 소설이라 규정한 이상, 소설의 3대 요소인 주제, 구성, 문체를 중심으로 평론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셋째, 신간으로서 차별적 존재 가치가 있는가? 매일 쏟아지는 신간 속에서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새로운 지식과 교양을 줄 수 있으려면, 기존 삼국지 책들이 전하지 못한 차별화된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과연 『설민석 삼국지』만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서평을 쓰기에 내 역량이 부족할지라도, 이 기준으로 리뷰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서평에 인용될 부분을 발췌한 사진 - 고민거리가 꽤 되어서 마크가 많다.>


5-1. 집필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었는가?

저자는 삼국지를 소설 장르의 범주 내에서, 원전의 줄거리와 큰 흐름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2권으로 압축해 저술하였다. 삼국지 읽기가 버거운 독자층을 위해 집필했다고 서문에서 밝힌 대로, 책 말미의 부록에는 원작에 없는 내용을 새롭게 창작했거나 원작과 다르게 묘사한 부분을 따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두었다. 또한 등장인물이 1,200명에 달하는 방대한 원전과 달리, 이 책에서는 작품 전개에 필수적인 주요 인물들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정성껏 준비했다는 저자의 의도에 대부분의 독자들이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각 장마다 주요 인물들을 일러스트와 함께 간단히 소개하고, 요즘 청소년들에게 익숙한 구어체로 서술해 부담 없이 읽히도록 했다. 덕분에 문장은 매끄럽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삼국지 만화에 익숙한 시기를 지난 청소년들이나, 가볍게 읽을 콘텐츠를 선호하는 20~30대 독자들에게 입문서로 적합하다.

또 하나의 차별점은, 삼국지연의를 단순히 번역하거나 평역한 다른 삼국지들과 달리 주요 사건과 전투 장면을 지도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각 이벤트가 어떤 지리적 배경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세력 간의 원근 관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당 장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간 관계도도 함께 실어, 줄거리 이해를 돕는다.

<설민석 삼국지의 주요 지도와 설명 체계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삼국지 옛 지명의 위치를 안내하는 지도, 2) 주요 사건에서 등장인물의 배경과 이동경로 소개 그림, 3) 주요 전투별 전황과 부대 배치와 행군로 소개 삽화, 4) 각 장마다 상호 대립, 친분/동맹관계를 도해한 관계도>


여러 등장인물을 한 명으로 축약해 사건을 전개시킨 점은 이 책만의 독특한 접근법이다. 덕분에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한계도 분명하다. 특히 조조와 원소의 운명을 가른 관도대전 전후의 묘사에서 두드러진다.

삼국지의 3대 대전은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이다. 이 중 적벽대전은 정사에서 생각만큼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이릉대전 역시 과장된 면이 적지 않다. 결국 중국 통일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전쟁은 관도대전이었다. 관도대전 전후로 원소 진영 내 참모들 사이에는 치열한 경쟁과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저수와 전풍, 봉기와 심배, 그리고 곽도와 신평의 세 그룹 간 대립 관계는 원전에서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천자를 모시고 한나라를 부흥시킨다는 명분, 통일에 대한 갈망, 원소의 후계 자리를 둘러싼 세 아들 간의 경쟁과 책사들의 분열 양상은 삼국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물론 읽는 이들에게는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러한 긴장과 갈등 구조가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묘사되었다.

5-2 소설적 가치가 충분한가?


그저 쉽게 쓰여 읽기 편하다고 해서 소설적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가 ‘소설’이라 규정했으니 소설적 완성도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책은 저자의 100% 창작물은 아니다. 집필 의도에서 이미 원작의 흐름을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전제했으므로, 촉한 정통론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책을 여타 삼국지 소설처럼 주제 변주나 독창적 해석의 관점에서 평가하기는 적절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거리 전개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초선의 등장 시점이다. 초선이 여포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저자의 설정 자체를 비평하는 것은 아니다. 극 초반부라 삼국지에 익숙한 독자라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고,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저자 의도처럼 초선의 등장 순서대로 스토리를 전개해도 큰 어색함은 없다. 다만, 원작에서는 여포가 반동탁 연합군에 밀려 장안으로 옮겨간 후에야 초선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낙양 시점에서 이미 초선을 등장시켜 동탁과 여포의 갈등을 그린다. 이런 전개는 반동탁 연합군과의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다소 어색하다. 배신의 아이콘인 여포라면, 연합군의 공적이 되기 전에 동탁을 배신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문체 또한 아쉽다. 상황 설명, 장면 묘사, 등장인물 간 대화는 소설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이 책은 청소년과 20~30대 독자층을 겨냥해 요즘 흔히 쓰는 대화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물론 젊은 독자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감동을 주거나 아름답다고 느낄 문장은 거의 없다. 특히 여포, 동탁, 초선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솔직히 말해 이 장면들은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심하게는 독자를 지나치게 가볍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는 비단 이들 간의 대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등장인물의 대사와 상황 설명이 현대 어투에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문학적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현대적 감각으로도 얼마든지 간결하면서도 깊이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벤처기업의 일상을 다룬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좋은 사례가 된다. 물론 설민석 저자가 전문 소설가는 아니므로 지나친 기대는 무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로서의 성의가 조금은 더 느껴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3 설민석 삼국지의 존재가치란 무엇인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차별성은 삼국지의 주요 에피소드에 한국사를 연결해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있다. 예를 들어, 서서가 이끌었던 첫 번째 신야성 전투에서 조인의 팔문금쇄진법을 설명할 때, 저자는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을 언급한다. 두 진법의 차이와 장점을 간단히 비교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또한 제갈량이 이끈 두 번째 신야성 전투에서는 조조 군을 상대로 수공을 가하는 장면에서 고려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을 끌어와 설명한다. 삼국지를 한국사와 연계해 해설하는 이런 방식은 여타 삼국지 해설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장점이다.

이 외에도 재담꾼 설민석의 장기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원전에서는 유비를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지고, 입술은 연지를 바른 듯 붉으며, 얼굴은 옥처럼 깨끗했다. 팔은 무릎까지 닿고 키는 일곱 자 다섯 치였다’고 묘사한다. 저자는 이 구절을 단순한 외모 묘사가 아닌, 백성의 말을 잘 들어주고 민초들의 손을 잡아 이끄는 모습,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심성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한다. 설민석 특유의 입심과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배신자 여포를 받아준 유비가 단순히 인정 많은 사람이 아닌, 백성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 방편으로 판단했다고 풀이한 것도 그의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유비가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는 장면에서는 중국의 ‘꽌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꽌시는 일종의 의리로, 중국인 특유의 사회적 관계망을 뜻한다.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가 한국에서는 ‘정’을 강조하지만, 중국에서는 ‘의리’와 윗사람에 대한 ‘도리’에 소구한다는 설명은 독자들에게 무릎을 치게 한다.


그러나 설민석식 해석에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그의 해설을 두고 흔히 제기되는 비평 중 하나가 단편적 해석의 나열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유비가 유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첫 번째 황건적과의 전투에서 가볍게 승리한 뒤 청주로 원군을 파견하는 장면에서, 저자는 유비를 ‘병법과 지략의 대가’라고 평한다. 하지만 원작을 보면 유비는 제갈량을 만나기 전까지 연전연패하며 도망치기 바빴던 패장에 불과하다. 이런 평가가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 의문이다.

또한 후한 말기 당시 중국의 중심지를 베이징으로 설명한 부분도 잘못된 해석이다. 당시 중국의 중심은 황화강과 양자강 사이, 즉 오늘날 허난성과 허베이, 산시성 남부, 산둥성 서부를 포함한 중원 지방이었다. 베이징은 중원에서 한참 북쪽 변경에 위치해 있었다. 이 밖에도 유비의 사형으로 등장하는 공손찬의 이름을 ‘손찬’으로 오기하고, 성을 ‘공손’이 아닌 ‘공’으로 표기한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비록 저자의 전공이 한국사라 하더라도, 삼국지를 다룬 이상 이런 오류는 피해야 한다. 이는 중국사에 대한 무지, 혹은 고증과 준비 부족을 드러내는 사례다.

또 다른 의문점은 삼국지 최강의 무장을 여포와 조운으로 평가한 듯한 설명이다. 필자는 코에이 삼국지 게임에 익숙해, 무력 순위를 여포 > 장비 > 관우 > 조운 > 허저 > 전위 > 황충 > 문추=태사자 순으로 본다. 중국인들 역시 ‘일여이마삼전위, 사관오조육장비, 칠허팔황구강유’라 하여, 여포 > 마초 > 전위 > 관우 > 조운 > 장비 > 허저 > 황충 > 강유 순으로 평가한다. 마오쩌둥조차 ‘일여이조삼전위, 사관오마육장비…’라 하며, 여포 > 조운 > 전위 > 관우 > 마초 > 장비 순으로 꼽았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무력 평가 기준은 다소 모호하다.

한편,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종 지도와 인물 관계도를 활용한 점은 돋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 방식은 저자가 처음 고안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도로 읽는 삼국지 100년 도감』에서도 이미 지도를 활용해 전투 상황과 사건 배경을 설명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저자가 활용한 참고자료들이 기존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기존 자료를 무단 도용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차용해 새롭게 구성했기에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삼국지 100년 도감] 발췌 - 그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삼국지 배경의 지명지도, 2) 주요 연대별 세력 분포와 사건 연도, 3) 주요 전투 해설도, 4) 주요 연대별 세력 간 동맹-대립 관계도>


5-4. [설민석 삼국지] 총평


결론적으로 『설민석 삼국지』는 저자가 의도한 대로 독자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기준에서 본다면 부족한 점도 적지 않다. 다른 삼국지 해설서나 신간 서적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사와 연결해 해석하는 그의 창의력과 재담은 분명 돋보인다. 그러나 중국사에 대한 준비 부족과 단선적 해석에 머무는 한계 또한 동시에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부록 삼국지 자세히 들여다보기’였다. 소설 형식을 차용하면서 생겨난 창작 부분을 다시 구체적으로 되짚고, 원전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부언해주는 구성은 훌륭했다. 또한 원작과 다르게 서술되어 독자들이 오해할 만한 장면들을 원전 기술에 근거해 꼼꼼히 요약한 점은, 소설 형식과 2권 요약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노력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삼국지 마니아라 자처하는 독자라면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책은 시간이 부족하거나, 10권 분량의 삼국지 완역본을 읽기에 부담을 느끼는 입문자들에게 적합하다. 오늘날 디지털과 영상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에게는 ‘양손잡이 읽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디지털은 빠르게, 인쇄물은 깊게 읽는 방식이다. 인쇄물을 깊이 읽을 때 비로소 책이 전하려는 가치와 저자의 문제의식, 논거, 타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 또한 동일 주제의 책을 두 권 이상 섭렵해야만 종합적 독서력이 배양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삼국지 입문자들에게 디지털 콘텐츠 같은 성격이다. 빠르게 읽어나가도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말고 보다 완전한 삼국지 원전을 통독함으로써, 동양 고전이 전하는 삶의 통찰과 감동을 깊이 맛보길 권한다.


6. 마무리하며


간결한 편집 의도 탓에 이 책에서는 삼국지에 자주 등장하는 한시들이 거의 빠져 있다. 요즘 독서 시류를 감안하면 한시는 독서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주요 장면마다 이어지는 처연하고도 비장한 한시들은 독자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오늘날까지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제갈량의 ‘출사표’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독자들이 이 글을 통해, 백전백승의 전략가가 아닌 유능하고 자상한 정치가로서의 제갈량의 진면목을 느껴보길 바란다.


"선제 께옵서는 창업하신 뜻의 반도 이루지 못하신 채 중도에 붕어하시고, 이제 천하는 셋으로 정립되어 익주가 매우 피폐하오니, 참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급한 때이옵니다. 하오나 폐하를 모시는 대소 신료들이 안에서 나태하지 아니하고 충성스러운 무사들이 밖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음은 선제께옵서 특별히 대우해주시던 황은을 잊지 않고 오로지 폐하께 보답코자 하는 마음 때문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그들의 충언에 귀를 크게 여시어 선제의 유덕을 빛내시오며, 충의 지사들의 의기를 드넓게 일으켜 주시옵소서. 스스로 덕이 박하고 재주가 부족하다 여기셔서 그릇된 비유를 들어 대의를 잃으셔서는 아니 되오며, 충성스레 간하는 길을 막지 마시옵소서.

~~~ 중략 ~~~


원컨대 폐하 께옵서는 신에게 흉악무도한 역적을 토벌하고 한실을 부흥시킬 일을 명하시고, 만일 이루지 못하거든 신의 죄를 엄히 다스리시어 선제의 영전에 고하시옵소서. 또한 만약 덕을 흥하게 하는 말이 없으면 곽유지, 비의, 동윤의 허물을 책망하시어 그 태만함을 온 천하에 드러내시옵소서. 폐하 께옵서도 마땅히 스스로 헤아리시어 옳고 바른 방도를 취하시고, 신하들의 바른말을 잘 살펴 들으시어 선제께옵서 남기신 뜻을 좇으시옵소서. 신이 받은 은혜에 감격을 이기지 못하옵나이다! 이제 멀리 떠나는 자리에서 표문을 올림에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씀을 아뢰어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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