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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Feb 04. 2021

[유끼의 추억] 기관과 개인의 차이

기관이 기관다우려면, 개인이 기관을 이기려면

  '유끼 코리아'라는 투자 컨설팅 회사가 2000 년부터 근 2 년에 걸쳐 무료 세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대상은 국내 유수의 자산운용사 임직원들이었습니다. 당시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신 대장님*의 배려 덕분에 대리 진급하며 운용을 시작한 지 채 1 년도 되지 않은 초짜 매니저인 저도 유끼 씨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98 년에서야 EV/EBITDA, FCF와 같은 개념들이 소개될 정도로 국내 운용산업이 해외에 비해 열악하고 상당히 뒤떨어졌던 시대였습니다. 주가를 조작하는 작전이 난무했던 어지러운 시기. 이런 판국에 무슨 이득을 얻겠다고 롯데호텔 연회장을 자비로 빌리면서 까지 펀드 매니저 교육을 시켜주는 게 무척 의아했습니다. 유끼 씨는 15 년내로 장차 한국 금융자산이 2천조 원** 이상 늘어날 텐데 자산운용사(당시는 투자신탁사)와 같은 기관 투자자에게 투자 자문을 하기 위한 워밍업 차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 오래전에 무릎을 쳤던 것들 중에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2020 년대, 아니 투자를 한다면 언제나 기억해야 할 금과옥조도 상당합니다. 기관 투자자가 아닌 개인 투자자라면 더욱 이해해야 할 교훈이기도 할 겁니다. 유끼 세미나를 통해 넓힌 지평을 브런치 회원들과 공유하고자 몇 차례로 나눠서 간략히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 당시 몸담았던 운용본부에서는 신임 사장님을 대장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격의 없되 대쪽 같은 선비 스타일이셨습니다. 마치 구한말 의병대장 같다는 의미에서 붙인 별명입니다.
** 2015 년말 한국의 가계금융자산은 3,182조 원. bull case로 봤던 2,500조 원을 가볍게 상회했습니다.


  유끼 씨(이하 유끼로 호칭)는 80~90년 대 미국 피델리티 본사에서 보기 드물었던 아시아계 펀드 매니저였습니다. 유끼는 은퇴 후에 일본을 거점으로 동북아에서 투자 자문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일환으로 피델리티에게 백만 달러를 지불하고 밸류에이션 엔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당시 유끼는 현대투자신탁회사(현 한화자산운용이 합병)에서 운용자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첫 세미나를 시작하자마자 유끼가 던진 화두가 너무나도 강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까지 업계 지인, 후배들에게 이 문장을 자주 인용합니다.


  "In terms of the act of investing itself,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an individual investor and an institutional investor. However, the best performer year after year has been an individual investor. It is difficult for an institutional to be an institutional investor."
                                                                                                     - 피델리티 CEO, 에드워드 존슨 3세 -


  피델리티를 창업한 아버지 존슨 2세를 이어받은 에드워드 존슨 3세는 마젤란 펀드의 피델리티 조차도 개인투자자의 수익률을 이기기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습니다. 주식을 사고파는 매매 그 자체의 행위는 사실 기관과 같은 프로나 아마추어 개인에게 똑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관 투자자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탓에 수익률 1등 종목도 있고 꼴등 종목도 있을 수 있어 수익률이 평균화됩니다. 개인은 확신만 있다면 1 종목에 올인할 수 있으니 해마다 매년 베스트 수익률은 개인이 달성할 게 자명하죠. 테슬라로 조기 은퇴한 드볼트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1년 반동안 +2,000% 수익률 달성! 한마디로 기관이 개인 투자자에게 수익률 게임을 해서 이길 수 없습니다. 여기에 투자 기간을 1 년으로 제한면 기관과 개인의 차이 구분이 더 힘들어져요. 최소한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거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변화시켜 그 성과가 증명되는 데 2~3년 이상 걸릴 테니까요. 기관 투자자가 모래밭에서 보석을 발굴하듯 투자 유망한 종목으로 개인과 차별되려면 최소한 3 년 이상의 수익률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해외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매니저를 평가하는데 3 년, 5 년, 좀 더 길다면 10 년 성과를 보는 이유겠습니다.


 매년 투자성과가 최고 수익을 얻는 개인에 비해 모자란 기관이 무슨 근거로 고객들에게 투자 자금을 맡겨 달라고 해야 하나요? 수익률 게임이 상대조차 안된다면 기관이 낯 부끄럽지 않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비장의 무기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존슨 3세는 기관이라면 성과의 지속성이 달라야 함을 강조합니다. 앞서 얘기했던 6 개월, 1 년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3 년 이상의 중장기 성과로 평가받기 위해서 꾸준한 성과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러나 다음의 중요한 이유가 제겐 무척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바로 주식 투자를 해야 할 시기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주식을 반드시 투자해야 할 시기에 투자를 안 하면 기회 손실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주식투자를 피해야 하는 시기에 투자를 하게 되면 금전적으로 상당한 대미지를 받을 게 자명하죠. 여기서 말하는 시기란 주가가 오르거나 빠지는 짧은 사이클이 아니라 주식 투자에 알맞은 경제 환경과 장기 추세를 뜻합니다. 보통 한 나라에서 주식 투자에 적합한 시기가 형성되면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20여 년 추세가 유지된다는 것이죠. 이 시기가 끝나면 다시 호시절이 올 때까지 바지 저고리 잡듯 안 되는 시장을 쓸데없이 붙잡지 말고 다른 나라로 투자처를 옮기라는 조언입니다. 언제? 자국 기업의 이익 성장이 기조적으로 해외 기업에 뒤쳐질 때입니다.


  IMF로 온 나라가 암울했던 98~99 년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친듯이 한국 주식을 매수하였습니다. 재계 3위 대우 그룹이 부도에 몰리고 한국 경제가 망한다던 그 때 말입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왜 지난 2 년간 한국 주식을 쓸어 담았을까요? 한국이 불쌍하니 도와주고 싶어서? 절대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18세기 이래로 온 지구를 구석구석 떠돌면서 투자 수익에 혈안이 된 이들이 자선 사업하려고 한국에 들어온 게 아닙니다." 유끼는 IMF 이후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해외 자본이 가진 글로벌 투자 스탠다드를 설명해주었습니다.

  " 97 년 한국의 가계금융자산이 400조 원이 안됩니다. 피델리티는 한국의 가계금융자산을 낙관적 시나리오로 2005 년 1,000조 원, 2015 년 2,500조 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어요. 비관적으로도 2005 년 700조 원, 2015 년 2,000조 원에 달할 걸로 예측합니다. 금융자산이 커진만큼 주가가 오를테니 안 살 이유가 없죠. 누가 먼저 찜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죠."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를 식민지로 삼아 경제 이권을 꼼꼼하게 챙긴 구미 투자자들이 한국이 예뻐 투자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 그렇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들의 예측대로 한국 가계금융자산은 05 년에 1천 조원을 돌파했고 15 년에는 3천조 원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에 투자해서 과실을 챙겼고 우리는 그 덕분에 경제 주권을 유지해서 이만한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좋게 해석하면 서로 윈윈한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언제까지 주식 투자를 하기 좋은 시기일까요? 저출산, 저성장이 고착되어 미래가 암울한데 과연 주식투자를 해도 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다음 기회에 정리하겠습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기관이 기관답기 위한 마지막 조건입니다. 바로 시스템의 유무가 양자의 차이를 가른다고 합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시스템이란 하드웨어 같은 물리적 장치나 소프트웨어가 아닙니다. 자신의 독특한 운용 문화와 자기주장을 뜻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것만은 잘한다. 혹은 우리는 이 것만 한다라는 차별성입니다. 피델리티는 고객을 대형, 중소형, 가치, 성장 4개 카테고리로 나눠 각 카테고리를 전담하는 운용조직을 전문화시킵니다. 템플턴은 하락장에 강하다고 인정받습니다. 블랙락은 패시브와 ETF만 집중하고요. 한국의 자산운용사처럼 이 것 저 것 다하겠다는 백화점식 상품을 거는 운용사가 해외에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요즘 해외에서 특정 스타일을 전문으로 하는 운용사들을 여러 개 인수하여 다양한 구색을 갖춘 운용 홀딩스가 생겨나고 있습니다만 각 자회사는 여전히 오직 하나의 스타일 내지 방법에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암튼 제게는 운용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고 언제나 회사가 기관 투자자다우려면 어떻게 조직을 꾸려야 하는 가 되돌아보게 해 준 이슈였습니다.

 

 유끼가 재미있는 비담도 소개했습니다. 투자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월가의 전설적인 펀드매니저로 추앙받는 '피터 린치'가 마젤란 펀드를 키웠다고 알고 있습니다. 피터 린치 운용을 시작한 77 년 마젤란 펀드의 운용자산은 1,800만 달러였어요. 그가 일선에서 물러난 90 년에는 140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같은 기간 마젤란 펀드의 연평균 투자 수익률 무려 29.2%. 분명 엄청난 성과입니다. 그래서 '피터 린치의 마젤란 펀드'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유끼는 대담하게도 피델리티 내부에서는 반대로 회자된다고 하더군요. '마젤란 펀드의 피터 린치'라고 말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비록 분명 피터 린치가 마젤란을 이끄는 대표 매니저였지만 마젤란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종목 선택의 상당 부분은 피델리티가 구성한 시스템과 애널리스트의 결과물이라는 거죠. 피터 린치를 띄운 건 피델리티가 펼친 고도의 마케팅 전술에 불과하다는 거에요. 펀드 마케팅을  위해 의도적으로 피터 린치를 스타 매니저로 띄웠다는 얘기에요. 비록 피델리티 내부 평가가 100% 사실이 아니도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어요. 이 주장의 근거가 꽤 있기 때문입니다. 피터 린치가 은퇴한 다음에도 10 년 가까이 마젤란 펀드의 수익률이 피터 린치가 맡았을 당시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 않았던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어요.유끼의 영향 탓인지 저는 운용조직은 스타 매니저 한 명이 주가 되선 안되고 다수가 최선을 다하며 프로페셔널해져야 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기관이 기관 투자자다워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개인 투자자가 기관을 이기려면 무엇을 구비해야 할까요? 이미 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바로 성과의 지속성입니다. 그리고 투자를 할 시기를 구분하는 안목입니다. 꾸준한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번 10배, 100배짜리 주식만 찾아서는 안됩니다. 합리적인 목표 수익 하에 분산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것도 1 개월, 3 개월 6 개월이 아닌 최소한 1~2 년을 염두에 두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투자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여윳돈을 투자하고 생계는 자신의 직업에서 해결한다면 그나마 편하게 투자할 수 있을 겁니다.


  제 주변을 살펴보자면 여의도에서 근무하다가 회사를 자발적으로 그만두고 전업투자로 돌아선 지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누구는 대박의 꿈을 꾸고 혹자는 연금처럼 매년 일정한 안정적인 수익을 걷기를 희망하면서요. 실제 인생이 바뀔 정도로 성과를 내어 부를 이룬 지인들이 꽤 있습니다만 여의치가 않아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려는 이들이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 당장 내 주식이 안 움직이거나 손실을 보고 있다면 빨리 정리해서 다른 주식을 사서 생활비라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머리로는 이해될 지라도 가슴에서는 공감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투자에 있어 조급함만큼 멀리해야 할 친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매년 우수한 성과를 내기 어려울지라도 3년, 5년 누적 성과가 양호하려면 어쨌든 대박이 연속되기를 기대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게임스탑, AMC 등 언제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업들이 공매도 전쟁의 대리인이 되었습니다. 레딧으로 몰려든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에 참여한 헤지펀드에 성전을 시작했습니다. 주가가 로켓처럼 순식간에 치솟다가 고점에서 75% 하락하는 롤러코스터가 비일비재, 하루가 지날 때마다 희비가 엇갈립니다. 파산에 몰린 헤지펀드가 나왔고 로빗 후드와 서학 개미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기도 합니다. 어제 90$까지 하락한 주가가 오늘 밤은 어떻게 될까요?  글을 쓰는 지금 8 $ 오른 98 $에서 움직이고 있군요.


 게임스탑처럼 상상을 초월한 공매도 전쟁으로 인해 글로벌 증시가 폭탄을 떠 앉았습니다. 헤지 펀드가 줄줄이 파산하게 되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거고요.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져도 마찬가지로 유동성이 훼손당한 꼴이고 투자심리가 악화될 테니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실익 없는 계륵 같은 전쟁이라면 양자가 적당히 타협하면서 포지션을 줄여나가 마무리되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합니다.


  주식투자를 해야 하는 10 년, 20 년 기간을 구분하는 안목도 중요하지만 투자한 주식을 잘못 판단했을 때, 즉 특정 종목에 투자해서는 안될 특정 기간이 도래했는지 판단하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합니다. 당장의 손실을 눈앞에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전에서 더욱 극명하게 체감하게 됩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에 부정적인 인식이 크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기지 못할 싸움이라면 냉정해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공매도 전쟁 와중에 스카이 로켓처럼 치솟다가 땅이 꺼지듯 가라앉은 게임스탑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심정이 아마도 아래의 그림과 유사할 거라 여겨집니다. 붐 앤 버스트에서 살아남으려면 해리 던트의 조언이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시장은 투자자의 친구가 아니다. “나는 시장을 믿는다. 또한 나 자신도 믿는다.” 이러한 신념 때문에 끊임없이 정점에서 매입하고 최저점에서 매도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러한 전략은 장기 수익률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장기 리스크 또한 증가시킨다. 현명한 투자자는 시스템에 따라 낮은 가격에 사고 높은 가격에 판다. 또한 정해진 기간 내에서 중장기 예측을 한 후 수익이 예상되는 분야들에 대한 분산투자에 집중한다.
                                                                                             - 해리 S. 던트,  “버블 붐” 중에서 –


  기관보다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여 훨씬 많이 알고 있는 블로거, 유튜버들이 투자 세계에서 인플루언서로 유명세를 띠고 있습니다. 이들의 장기적 투자 성과는 기관 투자자를 뛰어 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구체적 사례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또한 유끼가 얘기하는 밸류에이션 엔진은 도대체 어떤 걸까요? 과연 20 년 이전에 백만 불을 주고 살 가치가 있었던 걸까요? 다음 회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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