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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Feb 05. 2021

[기업 소개] DL - 간과한 대체원가

내가 왜 쟤네들보다 못해!

  2020 년 12월 28일. 대림산업이란 사명으로 거래된 마지막 날에  주가가 -6.1% 폭락하였다. 며칠 전 9만 원 중반까지 오르던 주가가 4 거래일 만에 12% 하락이다. 대림산업이 DL과 DL이앤씨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나뉘어 재상장될 예정이었다. DL이 지주회사 겸 화학사업을 영위하고 DL이앤씨는 건설사업이 주가 된다. 시가 총액이 2.9조 원 정도인 회사가 44% : 56%로 분할되어 시총이 더 작아지다 보니 외국인 투자자들이 참고하는 MSCI 벤치마크 지수에서 제외된 영향 탓이었다.  


  대림산업 분할 계획의 요지는 이렇다.


  1) DL : 대림산업 자체 사업부를 100% 자회사, DL 케미칼로 신설하여 분리시킨다. 합작 화학법인의 지분은 DL케미칼이 보유한다. 호텔, 발전/에너지, 캘리플렉스 등의 지분은 DL이 직접 보유한다.

  2) DL이앤씨 : 대림산업 건설, 엔지니어링 사업부를 별도로 떼어 DL이앤씨로 신설한다. 건설과 관련된 자회사들은 DL이앤씨 밑에 둔다.


  쉽게 요약하자면 건설, 화학을 주 사업으로 한 대림산업을 쪼개서 건설, 화학 전업 회사를 만들고 최대주주는 지주회사 겸 화학부문인 DL을 직접 지배하는 그림이다.


  대림산업이 건설과 화학을 같이 다룬 탓에 주가 움직임이 동종의 비교회사 주가와 결을 달리 할 때가 많았다. 화학 업황이 뜨거울 때 부진한 건설로 인해 경쟁 화학회사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고, 건설업이 날아갈 때는 화학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여 발목잡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 마디로 비교 대상인 퓨어한 화학, 건설회사에 비해 늘 찬밥 신세, 계륵이었다. 당연히 밸류에이션도 경쟁 회사들에 비해 더 낮게 평가되기 일쑤였다.


   DL, DL이앤씨가 21 년 1 월 25 일 재상장되었다. 상장 첫날 DL은 -10% 하락하고 DL이앤씨가 근 50% 가까이 상승하였다. 분할 전에 투자했다면 대략 +22% 이익이 난 셈이다. 흔히 한 회사가 지주 회사와 사업 회사로 분할되면 시장은 대체로 지주사 하락, 사업 회사 상승으로 반응한다. 최대 주주가 분할된 사업 회사 주식을 팔아 지주 회사 지분을 늘리는 지분 스왑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대 주주의 이해를 반영하려면 사업 회사를 비싸게 팔고 가능한 한 지주 회사를 싸게 살 것이라고 예상한 결과이다. 게임스탑 스캔들에 중국발 긴축 우려까지 겹쳐 DL은 누구나 예상하듯 6만 원까지 하락하였다.


  [DL 주가와 PBR(주가/주당 자기 자본)]

  주식을 평가하는 여러 지표 중에 PBR은 주가와 주당 자기 자본 가치의 비율을 말한다. 회사의 순자산에 대해 시장이 어떻게 평가하고 프리미엄 혹은 디스카운트를 주는 일종의 배수이다. 2008 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림산업 PBR은 0.5배 정도였다. 시장은 자산가치의 절반만을 인정한 것이다. DL의 20 년 주당 자기 자본 가치는 대략 18만 원. 6만 원 주가는 PBR 0.33을 뜻한다. 2005 년 이후로 가장 낮은 PBR이다. 향후 최대 주주의 지분 스왑을 우려한 물량, 벤치마크 지수에서 제외되어 출회된 무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결과였다.


  시장 가격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집단 지성의 위력을 일깨워 준다. 이유 없이 주가가 변하는 듯해도 지나 놓고 보면 주가가 움직인 필연적인 원인이 있는 편이다. 단지 내가 이를 몰랐거나 간과했을 뿐이다. 그러나 시장 가격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 주가는 사거나 파는 사람들이 균형을 이룬 가격인데 매수자, 매도자들의 투자 심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가치에 비해 너무 심하게 오르거나 과도하게 하락하면 가치로 되돌아가려는 반작용이 언젠가는 나오기 마련이다.


  DL의 주당 자기 자본, 순자산 가치가 18만 원이라고 했다. 이 말인 즉, 회사 자산에서 부채를 뺀 주주가 가져갈 몫이 주당 18만 원이라는 뜻이다. 당장 회사가 청산한다면 18만 원에서 얼마의 청산비용을 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주가는 6만 원이다. 너무 싸다고 할 투자자도 있겠고, 그만큼 뭔가 문제 있는 기업이지 않느냐며 싼 게 비지떡이라고 여기는 투자자도 있을 것이다. 누구의 말이 꼭 맞다, 틀리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지나치게 주가가 자산 가치를 덜 반영한다는 게 적확한 표현이겠다.


  최근 화학업종 동향을 부연하자면 2020 년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어 경제 활동이 둔화되자 경기에 민감한 업종의 실적이 매우 부진했다. 화학 업종도 이 범주에 속한다. 정유 회사는 근래에 보기 드문 적자에 시달렸다. 석유 화학 회사는 그나마 원재료인 석유 제품 가격이 더 빠져서 반사 이익을 얻는 중이다. 코로나 19 백신이 접종되면서 컨택트 경제를 기대하며 화학 업종 주가가 오르는 추세다. 때마침 20 년 4 분기 실적이 무척 잘 나오고 있어 분위기도 좋다. 근 한 달 동안 분할 준비로 거래가 정지된 DL의 화학부문 가치도 오른 것과 진배없는데 정작 분할 상장 후 주가가 하락하니 뭔가 부자연스럽다.


  LG화학과 양강을 이루는 국내 최대의 화학 회사가 롯데케미칼이다. 기업가치는 대략 9.5조 원. 롯데케미칼은 연산 1,650만 톤의 화학 제품을 생산한다. 기업가치를 생산 규모로 나누면 시장에서는 톤당 57만 원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유화는 리틀 롯데케미칼이다. 대부분 겹치는 제품이다. 생산 능력만 적을 뿐이다. 대한유화 기업가치는 1.7조 원. 연간 294만 톤을 생산한다. 톤당 기업가치는 대략 57만 원. 롯데케미칼과 신기하게도 비슷하게 평가받는다.


  약간 다른 각도로 비교해 보자. 국내 석유 화학 회사들은 납사 크래커로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정유 회사가 원유를 정제하여 나온 석유 제품 중에 나프타라는 경질유가 있다. 국내 회사들은 이 나프타를 원재료로 에틸렌, 프로필렌과 BTX(벤젠, 톨루엔, 자일렌)이라는 1차 가공품을 생산한다. 1차 가공품에서 분화되는 여러 제품 중에서 회사 전략에 따라 특정 제품군에 집중할 수 있으니 제품별 시황과 마진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질 수 있다. 이를 고려하여 2차 제품의 feed stock인 1차 가공품의 생산 규모와 기업가치를 비교해도 의미가 있다. 롯데케미칼의 1차 가공품 생산 능력은 638만 톤, 톤당 148만 원의 시장 가치를 받는다. 대한유화는 131만 톤에 127만 원 가치이다. 롯데케미칼보다 피드 스톡의 가치가 낮은데 전체 제품군의 가치가 비슷하다는 얘기는 현재 화학 시황에서 대한유화의 형편이 롯데케미칼보다 낫다고 바꿔 말해도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DL은 어떨까?

  

  DL의 화학 자회사 여천NCC와 폴리미래는 50:50의 합작회사이다. 두 회사 생산 규모에서 DL 지분 50% 만큼만 인정하고 다른 제품 생산 능력을 합산하면 화학 제품 총 생산능력은 363만 톤, 1차 가공품 생산능력은 153만 톤. 대한유화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그런데 시가총액은 1조 원 이하. 전체 제품 기준 톤당 27만 원, 1차 피드 스톡 기준 톤당 64만 원에 불과하다.


  만일 당장 DL 규모의 회사를 새로 짓기 위해 얼마가 소요될까? 투자론에서는 이를 대체원가라고 말한다. 롯데케미칼은 16 년에 3조 원을 들여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100만 톤 규모의 에탄크래커와 70만 톤 규모의 EG 공장을 지었다. 여수에는 2500억 원을 투자하여 나프타 크래커를 20만 톤 증설했다. 한화토탈은 9,000억 원에 에틸렌 31만 톤, 프로필렌 13만 톤, 폴리에틸렌 40만 톤의 설비를 짓고 있다. DL  정도의 캐파를 국내에서 지으려면 최소한 3조 원 이상의 재원이 소요될 것이다.  


  또 하나 더해야 할 사항이 있다. 호텔, 에너지/발전, 20 년에 인수한 고무장갑을 만드는 Cariflex 등 다른 업종의 자회사들이다. 이들 자회사 가치를 30% 할인해도 7천억 원의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화학의 대체 원가 3조 원에 기타 자산 가치 7천억 원을 더한 3.7조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회사를 시장이 1조 원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창고 대방출! 염가 봉사다.


  대체 원가로 분석할 경우 현 주가에 비해 과도하게 저평가된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DL이 싸다면 다른 회사들도 각자 제 목소리를 낼 거다. '뭐야~. DL만 주식이야! 나도 싸다고' 이렇게 손들고 난리 칠 기업이 엄청나게 많다.


  내가 참으로 싫어하는 비유이지만 시장은 주식을 미인 경연 대회에 비유한다. 제 눈의 안경이 아닌 다수가 예쁘다고 해줘야 미인의 범주에 속한다. 최소한 심사 위원들이라도 미인이라 손을 들어줘야 한다. 여기서 심사 위원이란 수급에 영향을 줄만한 투자자를 말한다. 요즘이라면 개인 투자자일 것이다. 개인 투자자의 투자 심리를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화학업체 주가가 주목받고 있는 요즘 다른 화학 회사보다 실제 가치에 비해 엄청나게 디스카운트받고 있다? 누군가가 싸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주목을 받을 만한 환경에 2일 전에 그 누군가가 나타났다. 정교한 분석도 아니고 그저 화학부문의 가치를 염두에 두자는 코멘트가 주된 보고서이다. 그런데 주가가 근 50% 올랐다. 6만 원에서 이제 9만 원이 목전이다. 시총으로 따지면 1.38조 원이다.


  지주 회사는 멀쩡한 회사를 둘로 쪼개서 지주 회사도 상장시키고 자회사도 상장시키는 더블 카운팅이라는 논리가 일반적으로 인정받는다. 나는 이러한 논리가 비합리적이라 주장한다. 지주회사 더블 카운팅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상세한 얘기를 하겠다. 아무튼 지주 회사니까 DL은 저평가받아야 한다고 치부했던 투자자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일이다. 또한 최대 주주가 DL이앤씨를 팔아서 DL로 옮겨야 하니 오르더라도 시간이 꽤 남았다고 여겼을 이들도 매 한 가지일 것이다. 주가가 언제 오를지는 신만이 알 영역이지만 때로는 당장 오르지 않더라도 자기의 소신을 믿고 시간을 낚시할 강태공식 투자도 필요할 때가 있다. DL은 이 경우라 할 만하다.


  DL은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9만 원이라 쳤을 때 대략 35% 더 오를 여력이 있다.

 

  DL이 6만 원을 찍던 날 계산한 테이블이다. 산술적으로는 시가총액 1.75조 원까지 기대할 만하다. 지주 회사가 평균적으로 40%가량 자신의 가치보다 할인받는데 이를 감안한 목표 시총이다.


  4일 동안 주가가 급등해서 조만간 조정이 올 것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오르다 멈추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오랫동안 주가가 횡보하거나 다시 하락할 수도 있다. 투자자 심리가 변하면 다시 7만 원대로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을 유일한 하나가 있다. 세계적으로 불황이 와서 모든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오지 않는 한 대체 원가는 오를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 기대어 DL이 석유 화학 사업을 무리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 이룰, 최대 주주가 원하는 궁극적인 DL 가치의 상승을 내가 셰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대 주주와 파트너가 되어 DL 주식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꿈과 성장을 기대하는 주식도 투자해야겠지만 한 편으로는 더디지만 최대 주주의 이해를 공유할 수 있는 이런 스타일의 기업도 투자의 바구니에 꼭 필요하다.



  내가 DL에 대해 걱정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도루묵이다.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난길에 맛있게 먹었던 생선을 '은어'라 이름 지었다. 한양에 환도하여 그 때 추억으로 다시 먹었는데 그 맛이 예전 맛이 아니더란다. 도로 '묵어'라 명했다하여 도루묵이다.


  DL의 최대 주주는 일정 기간 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DL이앤씨를 DL로 넘기고 그 대가로 DL 지분을 받을 예정이다. 분할 전후로 경제적 실질이 동일해지는 꼴이다. DL 밑에 건설 회사, 화학 회사, 기타 회사들이 있다. 대림산업이 영위하던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자체 사업이 독립법인으로 바뀌었을 뿐. 이를 두고 투자자들이 화학을 염려하거나 건설에 불안해 할 때 DL 자산가치에 대해 과거처럼 할인할 지도 모른다. 다만 그러기에 지금의 가치는 예전 대림산업에 대해 할인했던 수준보다 더 낮으니 큰 위험 요소는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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