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설 Mar 23. 2021

[서평, 리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신 영복 선생이 소천한 지 3년이 지났다. 실천하는 삶과 인간애를 중시한 그에게서 미움과 증오가 있었을지 궁금하다. 시대의 양심으로 존경받은 선생 또한 인간이었기에 어찌 한 조각 미움이 없었으랴마는 진정한 휴머니스트이던 그가 누군가를 미워했다는 상상을 하기 어렵다.

 * 나치에 저항하다 생애를 마감한 한스 숄, 죠피 숄과 백장미단의 저항정신을 그린 동명의 책. 주인공들의 맏누이인 잉게 숄이 지었다. 신영복 선생을 기리고자 동명의 책 제목을 인용한다.


  지성(知性), 지혜로운 성품을 뜻한다. 그를 빗대어 ‘실천하는 지성’ 혹은 ‘시대의 양심’이라 칭해도 결코 과찬이 아니다. 적어도 그가 걸어왔던 일생, 특히 20 년에 걸친 옥중 생활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말이다. 그는 1968 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 징역형을 받았다. 그리곤 1988 년 특별사면을 받기까지 20 년간 옥고를 치렀다. 무기징역의 결정적 이유가 통일혁명당 산하 민족해방전선의 핵심 조직원이라는 공안검찰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문과 강압수사에 의한 조작이었다고 재평가받고 있다. 국가 권력이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운 한국판 드레퓌스로 비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죽어서야 징역을 끝낼 기약 없는 옥살이를 앞둔 27 살의 전도유망하던 대학교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가 사형 선고를 받았거나 무기 징역형에 처해져 기나긴 수감 생활을 목전에 두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억울함과 좌절 끝에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으리라. 저자가 느꼈을 감정선이 어땠는지 본문에 명확히 그려지지 않았다. 단지 교도소란 낯선 환경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차분히 이겨 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감옥으로부터의 깊은 사색이 닻을 올렸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선생이 가족들에게 쓴 옥중 서간문이다. 미결수로 기거한 남한산성 육군 교도소와 형이 확정된 후 수감된 안양, 대전, 전주 교도소에서 겪었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제목이 주는 엄숙함 내지 진중함에 휘둘리지 말자. 독자들은 이내 육체가 구속된 한 인간의 부자유 속에서 자기 발전의 의지를 잃지 않으려는 서도(書道) 정진과 구도하는 실천적 성찰을 발견할 수 있다. 본문의 옥중서신들은 재소 기간 순으로 소개된다. 편지를 읽어 나가는 동안 자연스레 선생의 수감 생활과 감정이 다가선다. 한 해가 저물고 또 다른 한 해가 다가오는 세월의 흐름을 저절로 공감한다. 그리하여 감옥에서의 성찰로 얻는 삶의 지혜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체감한다.


  선생의 생각이 담긴 옥중 서한들을 세 가지 범주로써 분류해 보았다. 1) 실천의지이다. 실천하지 않는 지성은 쓸모없다. 실천하는 지성,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한다. 2) 비워서 채우는 지식의 변화 발전과 자기 성찰 의지이다. 옥고가 길어짐에 따라 지성과 서도 역시 깊어진다. 3) 일상에 대한 사랑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사소한 것, 소외된 슬픔조차 사랑하려는 휴머니즘이 충만하다. 선생은 20 년간의 옥고와 신체가 구속된 환경 속에서 욕망과 지식을 비움으로써 새로움을 채워 나갔다. 독서를 통해 축적된 지성이 실천으로 행해지지 못할 때 야기될 불완전함을 염려했다. 그래서 수인들이 생생하게 겪었던 삶의 체험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다. 아울러 강퍅한 옥중 환경에서 인간과 삶에 실망하는 나약함을 보이기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가족과 동료 나아가 사회를 쓸어안는 사랑을 실천하였다.


  먼저 선생의 실천의지를 살펴보자. ‘세상이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인내는 비겁한 자의 자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pp.26)’ 그야말로 수감 초기 20대의 결기가 느껴진다. 실천의지가 세월이 흐를수록 바래지지 않고 깊어만 간다. 음풍영월을 노래한 한국 명인 시집에 대해 ‘자연과 인간, 인간사회를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역사적 노력을 경시한다(pp.84)’고 비판한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한가함에 앞서 자연이 주는 환경의 굴레를 극복하거나 농촌 사회의 질곡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라 일갈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견해도 매한가지다. ‘의병일기’를 번역할 때 ‘추상적 의병에 대한 관념성을 제거하고 현장성을 획득하였다.(pp.120)’ 고 진단한다. 역사 현상을 관념으로 받아들일 경우 역사가 박제같이 외형만 남게 되니 시간이 흘러 그 역사성마저 왜곡될 가능성을 경계하였다. 시대가 지나도 당시의 생생함을 공감할 수 있어야 역사성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하였다. 해방 이후 친일청산을 제대로 완결하지 못한 결과 오늘날 극우 세력이 식민시대야말로 한국을 현대화시킨 원동력이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세태에 커다란 일침을 준다. ‘대개의 책은 실천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너무나 흰 손에 의하여 집필된 경험의 간접 기록이다. 책에서 얻은 지식이 흔히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그림자이기 쉽다. 지식은 실천에서 나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한다.(pp. 163)’ 거듭 강조하는 실천의 중요성에서 본심과 달리 내게 정작 현실에 맞설 삶의 용기가 부족했다는 반성을 하였다.


  선생의 실천의지의 대상도 점차 구체적으로 확대된다. 첫출발은 추론적 지식과 직관적 예지가 사물을 이해하는 밑거름일지라도 직접 행하는 경험만이 주체적 실천의 원동력임을 강조한다. 새가 좌우 날개로만 날 수 있듯 지식과 예지도 실천과 겸비되어야 한다. 이어 ‘아프리카 민요 2제(pp.304)’에서 우리가 야만이라 여기는 아사, 쿠데타, 전쟁 등과 같은 부조리들은 아프리카인의 무지와 미개 때문이 아니요, 문명이 그 노폐물을 아프리카에 하치 해 놓은 결과일 뿐이라 단언한다. 제2 차 세계 대전 종전이 되자 유독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만이 다양한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좌우 위아래로 반듯반듯 일자로 그어졌다. 제국주의가 남긴 대표적 몰이해이자 폐해이다. 제국주의가 자행한 식민지 소외에 저항하는 실천의지를 드러낸다. 마침내 실천하는 민중에 주목한다. ‘민중은 당대의 가장 기본적인 모순을 계기로 하여 창조되는 응집되고 증폭된 사회적 역량이다.(pp. 354)’ 그는 민중을 불우한 존재로만 대하려는 감정주의적 오류와 민중 그 자체를 절대시 하려는 맹신을 동시에 배격했다. 그에게 민중이란 농민운동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고 백 준기 씨의 추모제가 대통령 탄핵을 이끈 촛불집회로 거듭나는 스스로 각성하고 발전하는 역사 주체이다.  


  두 번째로 지적 변화 발전과 자기 성찰 의지를 찾아본다. 선생은 '수형생활에서 새로이 지니게 된 습관이 있다면 동일한 문제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거듭 생각하는 버릇(pp. 72)'이라 말한다. 단순 회상이 아닌 새로운 판단을 위해서 곱씹는 것이다. ‘이방지대에도 봄이(pp.92)’에서는 동양고전과 한국 근대사상을 연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동양고전을 독해하며 사고가 깊어졌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우리는 보통 단어 순서대로 해석한다. 먼저 몸을 닦고 나서 가정을 다스린다. 그 후에야 나라를 통치하고 천하 평정을 도모한다는 순차적 관계성을 강조한다. 선생은 전후의 관계성에 주목했다. ‘제가 바깥의 수신은 소승의 목탁이거나 한낱 이기(利己)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고 치국에 앞선 제가란 부잣집 맹견과 높은 담장을 연상케 하며 평천하를 도외시한 치국에서는 일제와 같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횡포가 본보기(pp.110)’임을 강조한다. 동양고전에 주목한다고 해서 시대변화를 도외시하지 않았다. ‘문학서적은 고전을, 과학서적은 최신판을 읽자.(pp.239)’고 제안한다. 경이적으로 발전하는 과학을 담기에 기존 관념이 한계가 있다고 이해하여 사고와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편으로 당시 첨단 물리학 영역인 양자역학과 천체물리학까지 공부했다.


  옥고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시대 아픔을 일찍 깨닫게 해주는 지혜로운 곳에 사는 행복을 감사히 여겼다. 자신의 슬픔은 남들이 겪을 무수한 비참함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겸허히 여겼다. 교도소를 ‘수천의 청의 삭발승이 고행 수도하는 큰 절(pp.222)’로 비유하는 대목에서 자연스레 옅은 미소가 피어난다. 부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열다섯 해는 아무리 큰 상처라도 아물기에 충분한 세월입니다.  ~ 중략 ~ 세월은 다만 물처럼 애증을 묽게 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옛 동산의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 것 또한 세월의 소이(所以)입니다.(pp.259)’라며 부당한 판결과 억울한 중형으로 인한 옥살이의 원망마저 승화한다. 그야말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감정의 절제이다.


  아내는 평소 내 글이 현학적이라고 지적한다. 친한 선배는 글이 괜찮긴 한데 좀 어렵다고 불만이다. 문장을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려워 늘 고민이었다. 고맙게도 책에서 해답을 찾았다.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대비시키고자 하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와 상호 연관 속에서 동태적으로 규정하되 난삽한 논리와 경직된 표현이 아닌 서민적 언어로 일상 사례를 제시하라고 조언한다.(pp. 262)'  글과 주장이 유연하고 후덕해야 상대방이 스스로 자기의 오류를 깨달을 수 있다. 글에 모진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태양이 있어야 독자들이 자신의 외투를 벗는다. 그간의 글쓰기가 무척 부끄럽다.


  이제 곧 가을이다. 선생은 가을이 되면 추수하듯 한 해 동안 키워온 생각들을 거둬 보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가을 사색이란 새로운 것을 획득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짐하고 챙기는 약속의 이행임을 깨달았다(pp273)'고 한다. 겨울 사색은 어떠랴. '만물이 겨울잠을 자러 땅속으로 들어가듯 우리들의 생각 또한 겨울에 키 크는 법이라 일깨워준다.(pp.276)'  여유를 가지고 생각을 숙성시켜야 한다. 역사는 우상향 하는 직선처럼 발전하지 않고 나선형으로 발전한다. 암울한 역사에서 희망찬 미래를 키우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얘기하고 싶다. 가깝게는 가족, 멀게는 동료 수인과 민중에 대한 사랑이 본문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한 겨울 찬 물로 빨래를 헹굴 때 미처 알지 못했던 모친의 수고가 손끝에 저며와 광목 한 통과 모친을 바꾸고자 했던 선생의 철없던 기억(pp.90)'을 덤덤히 고백한다. 세상과 동떨어진 죄수의 사랑 표현이다. 중 2 때였을까? 친구들이 찬 카시오 전자시계가 부러워 사달라고 어머니께 투정 부렸던 적이 있다. 흔쾌히 사준다는 말 한마디 못하시고 돌아서서 조용히 눈물 닦으시는 모습에 더 이상 칭얼대지 못하고 포기했다. 이틀이 지나고 아무 말씀 없이 밥상 밑에 뜯지 않는 카시오 시계를 내려놓으시곤 부엌으로 물러나시던 어머니. 어머니들은 어느 자식에게나 끝없이 베풀어 주신다. 비전향 양심수에서 전향하여 이송된 전주교도소 수감 시절을 읽어 내려갈 때 병환 중인 선생의 모친께서 부디 건강을 유지하시기를 마지막까지 가슴 졸였다. 아마도 모친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에 전향을 하여 특사를 받으려 했다고 추측해 본다.


  인자한 선생의 사랑이 때로는 몹시도 냉정하다. 부모, 가족 간의 사랑은 맹목이거나 무한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 이외의 대상 내지 사회 구성원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모든 이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심리는 감상적 이상주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진정한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분별 있어야 해서 맹목일 수 없고, 희생이기에 무한할 수 없다고 논한다.(pp.311)'


  책 말미에 이를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부모님, 형제 외에 형수님과 계수와도 상당한 서신왕래를 하였다. 나는 30년 동안 형수님께 생신 축하한다는 편지를 딱 한 번 보냈던 거 같다. 주고받은 횟수도 놀랍거니와 편한 형수, 계수와 시숙 관계 이상으로 인간적인 유대감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엿보이는 것에 존경스럽기조차 하다. 선생이 입소한 후 결혼한 탓에 생면부지의 시숙이었을 텐데도 정성스러운 옥바라지를 보면서 오랜 세월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고매한 인품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옥고 이전에 이미 선생은 예술적 소양을 지녔을 거라 추측한다. 미결수로 복역하던 때 보낸 엽서로 알 수 있다.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없으나 단아하고 깔끔한 필체에 펜으로 그린 소, 말 등의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타고난 교(巧)에 20년의 고(固)가 상호 화합, 발전하여 동양사상과 서예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사실에서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실천의지를 절감한다.


  79 년 10 월 26 일, 80 년 5 월 18 일, 87 년 6 월 당시 시절을 읽어 나가며 선생이 어떠한 메시지를 던졌을까 기대가 컸다. 의외로 시국을 희미하게라도 은유한 편지가 단 한 통도 없었다. 지독한 검열 앞에서 어쩔 수 없었으리라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나 7 월 6 일자 편지 말미에 적힌 ‘6, 7 월 뜨거운 열기와 수많은 동료들의 참담한 고뇌를 제쳐두고 한가로이 새소리를 듣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머슴새의 꾸짖음 소리, 갑오 녹두새의 채찍 같은 꾸짖음 소리 날아올 듯하다.(pp. 452)’는 구절이 눈에 밟힌다. 눈에 쌍심지를 켠 교정당국조차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려는 선생의 의지를 꺾지 못했음을 느꼈다.


  조국 전 민정수석 이슈가 뜨겁다. 보수는 근거가 있던 없던 온갖 의혹을 제기하고 진보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실체적 진실을 차치하더라도 그는 이미 반대세력에게 졌다. 도덕성을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외통수 궁지에 몰린 그에게 선생이 남긴 교훈을 전하고 싶다. 패배의 변증법이다. 지면서도 이기기 위해서 자신에게 어긋남이 없고 떳떳하라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되물어 용납이 안 된다면 물러서는 지혜를 찾았으면 한다. 신독 하기가 매우 어렵고 현실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수의 부패에서 상대적 우위를 설정했던 지난날 진보의 좌표를 이제는 새롭게 재설정해야 한다. 성장동력을 잃어가는 한국사회에 내포된 총체적 난국을 큰 줄기로 해결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정책대안이야말로 진보의 대안이다. 피안의 세계에 계신 선생 또한 조국 교수의 이슈를 계기로 진보 진영의 성찰과 학습, 그로부터의 분발을 촉구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리뷰] 한국과 일본, 2000년의 숙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