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과 주인 사이

Patrick H. Jones 개인전 _ Crowded Emotions

by 게으른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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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전철에서 스친 사람들, 회사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 길을 걷다 마주친 이름 모를 사람들까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얼굴을 마주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누군가의 얼굴(표정)은 거의 없다.

타인에게 나는 어떤 얼굴을 가진 사람일까.


두아르트 스퀘이라 갤러리에서 D를 만나기로 한 날, 횡단보도를 건넌 직후에 일이었다.

누군가를 지나쳐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G!

우리는 같은 방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왔음에도 나는 D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뿐 곁을 지나는 이의 얼굴도 표정도 궁금하지 않았다.






익명성은 무관심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나와 별개의 사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에 반응하지 않는건 현시대에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패트릭 H.존스 전시

<Crowded Emotions>은 내가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얼굴을 닮았다. 목적지만을 향해 걷고, 주변과 상호작용 대신 핸드폰 안에서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sns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개인으로 존재하기보다 군중이 되길 선호한다. 나의 생각보다 타인의 언어에 기대어 좋아요를 누르고, sns 속 만들어진 나의 이미지를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냉소적으로 타인을 대함과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냉소적인 시대가 아닌가.


패트릭 H.존스의 작품에는 진초록과 진빨강, 보색관계의 두 컬러가 많이 등장한다.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인물 이외에도 빨간 배경 안에 숨겨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타인일수도, 내가 숨겨놓은 나의 그림자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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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작품 속 얼굴은 약간 기괴하다. 눈에 부릅 뜬 듯한 동그란 눈동자가 눈에 띈다. 바라보는 곳은 모두 다르지만 따뜻하거나 맑지 않다. 피부를 한겹 벗겨낸 듯 근육처럼 표현된 얼굴 속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상호작용 없이 맹목적으로 바라는 무언가를 쫓는 표정들처럼 읽힌다. 타인의 표정이기도 하지만 오늘 누군가에겐 내가 하고 있던 표정일지도 모른 생각에 약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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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무감각함과는 별개로, 타인에 의해 불안한 내가 존재한다.

나를 비집고 들어오는 타인의 생각, 독립적이지만 타인과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다보면 나의 일부는 타인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개성이라는 단어도 결국엔 타인과 구별됨을 의미하기에 우리는 타인과 단절될 수 없다.

내가 마주하는 수많은 얼굴들이 나의 초상(肖像)이거나

자주 쓰는 나의 가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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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본 이후로 아침이 되면 거울 속 나를 마주보고 얼굴 근육 가득 당겨 미소를 짓곤 한다.

표정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무감각하게 거리를 배회하지 않기 위해

삶의 목적을 떠올리고 깊게 숨을 들이키며 생기를 불어 넣는다.


향기 없는 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듯

무감각한 인간 사회에 따스함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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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일을 하거나 걸을 때 의식적으로 나의 표정을 떠올려보자.

군중 역할에 몰입하느라 굳어진 얼굴을 살포시 풀어보는 일은

지금 이 순간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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