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릴 수 있을 때를 안다는 것은
매년 김난도 교수님의 <트렌드코리아>라는 책을 읽는 것으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한다. 12 간지 동물과 색으로 명명되는 한 해의 키워드는 직장인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트렌드코리아를 읽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근 10년 정도 이 책을 읽으면서 올 해의 키워드 하나라도 알아서 거창하게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그 흐름을 찾고 어떻게 변하고 작용하는지를 알려고 노력한다.
트렌드에 민감하게 작용하는 직군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트렌드를 알고 업무를 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유리하다. 업무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분야도 트렌드의 영향을 받기에 트렌드를 안다는 것은 색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도와 주워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을사년 푸른 뱀의 해인 2025년의 트렌드코리아 키워드는 'SNAKE SENSE'로 탁월한 사냥꾼인 뱀의 특성을 잘 반영한다. 발이 없지만 어디든 갈 수 있는 뱀은 예로부터 풍요와 다산, 지혜, 재생 등을 상징한다.
미끌거리는 피부 때문에 징그럽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뱀을 꺼려하지만 뱀은 겉으로 보는 모습과 달리 상당히 감각적인 동물이다. 혀를 반복적으로 날름거리며 주변의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만 보고 뱀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이유는 주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이다. 혀를 날름거리며 냄새를 맡고, 주변 온도와 공기의 진동을 감지하여 주변에 있는 사냥감의 위치와 크기를 확인한다. 뱀의 혀는 두 갈래로 갈라져 있어 공기 중에 있는 냄새 미립자를 수집한다.
사냥감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군침을 삼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뱀은 혀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뇌로 전달하여 어떤 방법으로 사냥할지 고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뱀의 감각적인 모습을 보며 'SNAKE SENSE'라는 키워드가 나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키워드의 핵심은 뱀의 사냥하는 모습처럼 항상 기회를 찾고, 기회를 포착하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기회를 꽉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냥감을 물어 독을 주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통으로 감아 조여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특히 보아뱀처럼 독이 없는 뱀이 사냥하는 방법은 사냥감을 몸으로 감아 조여 질식시키는데 간혹 해외토픽에서 뱀이 인간을 죽였다는 뉴스를 볼 때면 뱀의 독보다 더 무서운 것이 뱀이 감아 조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복무 중 수색이나 매복을 나갈 때면 가끔 독이 없는 꽃뱀과 조우하곤 했는데 꽃뱀의 머리를 잡아 들어 올렸을 때 내 팔을 감았던 기억이 떠올라, 무식하면 얼마나 용감한지를 스스로 증명했던 과거의 모습을 생각하며 한참 웃었던 때도 있었다.
이렇게 뱀의 사냥법을 생각하며 포착한 기회를 어떻게 하면 놓치지 않을지 고민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기회를 포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나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 내 주변에서 그것을 찾는 모든 행위가 바로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요즘 나의 니즈는 달리기이다. 어떻게 하면 달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는지를 분석한다. 추운 겨울에도 달리고 싶어 점심시간 달리기도 하며 달리기를 할 기회를 늘 포착하는 모습이 흡사 혀를 날름거리는 뱀의 모습과 같다. 주 3회 달리기를 지키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달리지 않는 날에도 내일의 달리기를 준비하며 달릴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려고 노력한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달리기의 한 부분이기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달리기이다.
평일 10km 달리기 훈련을 하면서 점심시간 달리기보다는 퇴근 달리기를 주로 했는데 이날은 점심을 먹기 전 겨울 날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날씨가 좋아 달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즉흥적으로 달리기를 했지만 운 좋게 오후 일정에 여유가 있어 10km 달리기 훈련을 해도 시간이 충분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지만 봄의 기운을 느끼기 충분한 정오의 햇살을 만끽하며 달리기를 했고, 강바람이 조금 세게 불었지만 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지난 1월부터 일요일마다 10km 달리기 훈련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평일에 두 번 10km 달리기 훈련을 하고 일요일에는 15km 달리기 훈련을 한다. 본격적으로 하프 마라톤 훈련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욕심내거나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거리를 늘리려고 한다. 10km 달리기에 적응하면 10km 마라톤 대회에는 부담 없이 참가하여 훈련하는 대로 달릴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첫 마라톤 대회의 아쉬움을 꼭 풀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오의 햇살과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어느새 10km 달리기를 완주할 수 있었고 쿨다운을 하며 오늘의 달리기를 분석했다. 낮은 수치를 보이는 케이던스를 보며 무엇이 문제인지 염려가 되긴 하지만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케이던스에 대한 문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케이던스가 낮다고 해도 달리지 않는다면 케이던스를 분석할 수도 개선할 수도 없기에 일단 달려야 한다. 달리는 사람만이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올해 나의 SNAKE SENSE이다. 항상 달릴 준비를 한 상태에서 달릴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여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다. 누가 보면 전문 러너도 아닌 사람이 주제넘은 행동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달리기에 그 누구보다 진심이다. 이 진심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달리는 것뿐이라 달림으로 나의 진심을 표출하고 성장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욕망 덩어리라는 사냥감을 물고 절대 놓지 않도록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면 나도 진정한 러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달리기
#러너
#트렌드코리아
#SNAKESENSE
#기회
#준비된자
#몹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