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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알고 있는 사람

시작은 어렵다 하지만 지속하면 조금 쉽다

by 조아

태어날 때부터 헐벗은 육신으로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연계에서 인간은 언제 소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근원적인 약함을 가지고 태어났다. 비난 아기일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날카로운 이빨과 밥톱, 크고 강한 근육을 가진 맹수에 비하면 추위를 피하거나 보호색 하나 없는 인간의 피부는 연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인간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만물의 영장이란 감투를 쓰고 생태계의 제일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이다.



나는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순간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생물학적으로 수정란이 착상을 한 때가 아니라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최초로 알았다는 뜻이다.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신혼여행지였던 뉴질랜드 남섬, 글레노키에서 퀸즈타운으로 가는 길에서 아내의 손을 잡았을 때 어제와 달리 올라간 아내의 체온을 느끼고 장난으로 아내의 배에 노크를 하며 'OO야, 왔니 만나서 반가워'라고 말했다. 아내는 장난치지 말라며 나를 말렸지만 본능적으로 아이가 찾아왔음을 느꼈다.


귀국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해 보니 아이가 찾아온 것이 맞았고, 아내는 선명한 두 줄을 보며 나의 감각에 대한 경이심을 표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공 수업 때 별 의미 없이 들었던 착상 후 여성의 신체 변화 중 하나인 체온 증가가 우연히 그 순간 떠올랐고, 본능적인 직감으로 아이의 방문을 감지했을 뿐이다. 약 280일 동안 아내는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며 아이와 교감했고 나보다 더 예민한 아내는 분만 예정일보다 2주 정도 빨랐던 어느 날, 제일 겉에 있는 태막이 찍어졌음을 느끼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자연 분만을 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아내가 분만 유도제를 투여했음에도 10시간이 넘도록 난산을 하자, 퇴근하시려는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막고 제왕절개술로 아이의 출생을 처음으로 지켜본 사람도 나이다. 마취가 덜 풀린 아내는 아이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지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탯줄을 자른 나는 그 순간이 마치 멈춰진 순간처럼 내 머릿속에 박제되어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한다. 사랑의 결실이기보다 한 생명이 세상으로 나온 순간, 아이의 시작을 기억하고 함께 한 존재라는 자부심이 있다.



부모의 자녀 사랑은 이런 순간을 경험했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특히 모성애로 표현되는 어머니의 사랑은 태중에서 아이와 함께 공유했던 모든 순간과 감정이 탯줄이 잘린 후에도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 여전히 연결되어 있기에 아빠보다 더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어 감히 넘볼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한다. 시작을 목도한 사람이 가지는 감정보다 시작은 물론 그 과정을 함께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처음 만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이는 벌써 훌쩍 자라,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하며 세상의 규칙과 학문을 배우는 중이다. 공부보다는 노는 것이 더 좋을 나이지만, 대견스럽게도 공부에 대한 자발적인 관심을 표시하고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하는지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내 욕심을 내려놓고서라도 아이를 지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아이에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안다는 것은 공부의 의미를 더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건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내가 과일 단식을 시작했다. 내가 과일 단식을 시작한 이유도 아내의 권유 덕분이었는데 이태근 선생님이 계신 녹색마을 자연학교에 신청하는 것은 물론 비용까지 지원했던 아내도 변화의 시작이란 문에 노크를 하고 문고리를 열려고 한다. 과일만 먹으면 되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지만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도전을 하는 아내를 보며 아이가 태어난 순간을 잊지 않고 있는 것처럼 그 시작을 기억하려고 한다.



달리기든 글쓰기든 과일단식이든 시작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안락함을 넘어서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현재의 안락함에 익숙해지면 그 소중함을 점점 잊을 수밖에 없기에,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안락함이라는 거대하고 잔잔한 호수에 지속적으로 조약돌을 던져 크고 작은 물결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물결일지라도 의미 없어 보이는 행위를 지속하면은 축적의 위대한 힘이 발휘된다. 단 하나의 행위는 미약하고 보잘것없지만 백번, 천 번 그리고 만 번 행위를 반복하면 엄청난 위력을 나타낸다.


시작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성경에서 말하는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라리"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누구나 위대한 결말을 꿈꾸지만 아무나 위대한 결말을 맞이하지 못하는 이유와 그 시작과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는지 그 의도를 표출하며 시작에서 결말에 이르는 과정까지 진심과 최선을 다했는지를 살펴보면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결말이 좋지 않을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과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결말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아내가 큰 결심을 하고 도전하는 과일단식이라는 시작을 알고 있는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내의 도전을 응원하며 도와주고 싶다. 먼저 과일단식으로 체중의 변화는 물론 건강을 되찾은 경험을 통해 아내가 보다 수월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볼 것이다. 나도 3주까지가 정말 큰 고비였기에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에게 3주까지만 참아보라고 말하며 아내의 도전을 응원한다. 무엇인가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매일 반복한다면 시작은 우리에게 익숙함을 선물할 것이다.


#시작

#도전

#과일단식

#몹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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