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직장인이나 학생이나 마찬가지로 주말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왠지 모를 이유로 기분이 울적해지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의 기대감보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압박감으로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전에는 그랬지만 올해 들어 시간이 정말 안 간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3월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도 3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느낌 같아서는 6월 정도 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아직도 3월이라는 현실 속에서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삶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배운다. 사실 인생에서 시간을 대하는 자세만큼 중요한 것도 없기에 어떤 삶의 자세를 견지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결과는 달라진다.
하나에 빠지면 그것만 파고드는 내 성향에 딱 맞는 이런 삶의 자세는 무늬만이라도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한 때는 글쓰기를 위해 책 읽기에 빠졌지만 요즘은 글쓰기를 위해 달리기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달리기에 푹 빠져 있다. 달리기가 일상의 중심이자 모든 것이 되어 달리지 않을 때도 어떻게 하면 잘 달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빨리 회복해서 내일의 달리기를 할 때는 어제의 달리기보다 더 좋은 기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만 한다고 변하지 않는 것이 달리기이지만, 사실 노력하지 않는다면 절대 성장할 수 없는 것도 달리기이다. 비단 달리기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마찬가지이지만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없을 수 없다는 것은 진리를 넘어 인생의 당연한 결과라고 표현할 수 있다. “no pain, no gain “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가급적이면 죽을 둥 살 둥 발버둥 치지 않고 무난하게 무엇인가를 얻기를 바랄 때가 많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자조감이 넘치는 푸념을 할 정도로 아등바등 살아도 의미 없다는 것을 느낄 때처럼 현실의 벽을 느끼는 때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허무함은 그동안의 노력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넘어 존재의 가치를 깔아먹는 느낌은 살아있음을 부정하기도 한다. 이 허무함으로 삶의 이유를 잃어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존재의 가치는 누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물주가 선물한 특별함은 자신이 인생을 통해서 찾아야 할 인생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존재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 인생에서 결코 특별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직장인으로 남편으로, 또한 아버지로 정신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 무렵 우연히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을 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느껴지다면 이처럼 허무함이 몰려오는 시간도 없다. 나름대로 한다고 노력했는데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내가 의도한 바도 모르고 내 마음을 몰라줄 때처럼 서운할 때도 없겠지만,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인생은 변함없이 늘 그랬다.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도 있지만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노력해도 되지 않을 것은 당연히 되지 않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노력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얻은 것도 있었다. 마치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하늘을 날 듯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찜찜함이 가슴 한편을 짓누르기도 했다.
이때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우연이 아닌 지금까지 치열하게 노력한 삶의 조각들이 연결되어 무언가를 만들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조각만 보았을 때 정말 의미 없는 것이라 느꼈지만 이런 조각이 하나둘씩 모여 연결되었을 때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형체가 되어 내 앞에 서있는 결과물은 진정 내가 한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기도 하지만, 말없이 삶의 단편에 충실했던 시간이 축적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그토록 원하고 원했던 모습의 단편들이 현실의 한계와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하고 진정 내가 바라고 바랬던 모습이 현실이 된 것이다. 원하지 않았다면 바라지 않았다면 절대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 무엇인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 무엇인가를 구성하는 단편을 만들어야 한다. 마치 문장은 수많은 단어들이 결합해 만들어진 산물인 것처럼 인생은 하루가 축적되어 만든 시간의 결과물이다. 지금 내 인생을 결론지을 수 없는 이유도 지금까지의 결과물은 형편없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 내가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지금까지의 결과물은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기에 지금 이 순간부터가 중요하다. 알아차렸다면 현실을 인지했다면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것은 행동이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하고 이 행동을 매일 반복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가 없다면 결코 지속할 수 없을 것이며, 유혹의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최악의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도 유혹의 순간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며 체중을 감량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고 힘든 것이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기에 매번 의지로 유혹의 손길을 이겨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을 견디는 힘은 인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 순간의 욕정 때문에 돌이키지 못하는 실수를 하는 사람도 찰나의 순간을 견디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유혹의 순간이 매우 긴 시간이 아닌 아주 짧은 순간, 눈 깜짝한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의 견디는 힘은 유혹을 이겨내고 어제의 나와 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한 뼘 더 자란 대나무의 마디처럼 성장한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한다.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억만금의 시간이라고 느끼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직장인에게 일요일은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이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가족을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고 평일 내내 야근하며 지쳐있지만 지금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쉬고 싶은 마음도 순간이다. 잠시 눈만 감았을 뿐이라고 느꼈는데 하루가 지나간 것처럼 찰나의 순간을 느낀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몸소 느낄 것이다.
사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나를 제외하고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의 명대사처럼 인생의 정답은 나라는 말은 내가 인생의 주인이자 결정권자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오직 내가 내린 선택만이 정답이며, 정답이 인생의 열쇠가 되어 내가 나가아는 길 앞에 굳게 닫힌 문을 열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찰나의 순간을 견디며 버틴다면 진정 내가 원하고 바라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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