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의로 피아노를 배운 남자아이
지난 주말, 아이가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여 가족들과 나들이 겸 아이의 콩쿠르 대회장에 갔었다. 아이가 한 달 전부터 나의 동행을 강요했기에 자연스럽게 아이와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자신의 콩쿠르 연주곡을 소개하며 강제적으로 청중이 되어 들어야 하는 축복을 누리기도 했던 시간 동안 아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준비했을 것이다.
부산의 한 대학교에서 진행된 콩쿠르는 내가 어릴 적 배웠던 <바이엘>이라는 피아노 교재의 출판사가 주최하는 행사였는데 출판사의 이름을 본 순간 반갑기도 했고 아직도 있다는 생각에 놀랍기도 했다. 내가 7살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는데 그전부터 있었던 교재였으니 기본적으로 약 40년이 넘는 출판사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나를 가르치시던 선생님도 바이엘 교재로 배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세광 출판사는 1953년에 설립되었는데 약 80여 년 된 명문 출판사라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홈페이지를 들어가니 요즘 트렌트에 맞게 온라인 쇼핑몰도 있고 e-book은 물론 음원까지 취급하고 있어 내가 기억하는 세광 출판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거의 40년이란 시간이 지났기에 10년에 한 번씩 바뀐다는 강산이 네 번은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으니 내 기억은 오래된 과거이자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나한테 물려받은 바이엘 교재로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던 것 같다. 학원을 가는 것이 어려워지자 어머니께서 개인 교습까지 시켜주시면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중요한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는 피아노를 치지 못한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혼자만 있을 때 가끔 피아노를 손을 더듬어가며 친다. 30년이 넘도록 피아노와 담을 쌓고 살았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 번은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오랜만에 피아노를 쳤는데 아이가 우연히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놀란 눈으로 "아빠 피아노 칠 줄 알았어??"라는 아이의 물음에 수줍게 답하면서도 더듬거리는 수준이지만 아직도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마치 자전거 타는 법을 몸이 기억하듯이 내 손가락은 피아노 연주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콩쿠르 대회장에서 아이의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지원자의 연주를 듣고 있는데 어릴 적 나와 비슷한 남자아이를 보면서 피아노에 대한 회상을 했다. 만약 처음 피아노를 배웠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피아노를 쳤더라면, 한국이 낳은 천재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취미 생활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나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주시기 위해 엄청난 금액과 시간을 투자하셨는데 지금의 나는 피아노 연주는커녕 피아노 근처에도 갈 일이 없어서 죄송하기도 하면서 그동안 무엇 때문에 피아노를 멀리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는 피아노 연습일 수 있겠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기에 마음껏 피아노를 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주택에 살기에 늦은 저녁 시간만 아니라면 아이는 자유롭게 피아노를 칠 수 있다. 강제적인 청중이 되어 아이의 옆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과거의 태권도를 배우기 전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계를 익혔던 과거의 나와 마주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시 피아노를 치면서 우아하고 고상한 취미 생활을 하고 싶다.
#피아노
#회상
#콩쿠르
#의지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