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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n 11. 2023

역사 속 정치의 민낯

책임지는 정치를 꿈꾸며 역사 속 한편을 바라본다.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늘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을 생각할 때마다 역사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역사를 통해 무엇을 알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 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는 과거의 인물과 만나는 인문학이다. 아슐리안 주먹도끼보다 더 오래된 전곡리의 주먹도끼의 발견으로 동아시아의 미개한 국가로 인식된 이 땅은 유수한 고대 문명을 가졌던 땅으로 밝혀지게 되고, 청동기 문화의 핵심적인 유물인 지석묘(고인돌, dolmen)는 전 세계에 대부분 한반도에서 발견되었다. 지석묘가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당시 계급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지석묘를 세울 정도로 중요한 사람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김해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릉에도 지석묘 2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지석묘가 세워진 땅은 예로부터 중요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집 근처에도 지석묘가 있는 유물전시관이 있어서 이 지역이 예로부터 높은 신분의 지배층이 살았던 땅으로, 살기 좋은 곳임을 느낄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큰 지석묘인 김해 구산동 지석묘 복원 현장에 대한 논란으로 바람직한 복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역사적 유물이 지금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놓치고 있는 아쉬운 현실 속에서 과거의 사람이 말해주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을 그분들이 남겨 놓으신 유물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추론할 뿐이다. 불행하게도 수많은 외침과 한국전쟁, 부분별 한 도굴로 인해 자신의 자리에 있지 않은 유물들과 우리나라 대부분의 토양은 산성토로 땅속에 묻힌 유물들이 온전히 발굴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고대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백제의 찬란한 문화와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백제금동대향로는 논바닥에서 발견돼 우연이 필연이 된 기적을 보여주었다.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당시 모습, 출처 나무위키 경향신문

 주차장 공사를 한 이곳은 백제 시대에는 왕실의 사찰이었으며, 예상치 못한 침입에 귀한 물건을 급히 옮기다 습지에 빠뜨려서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고대 중앙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한 불교라는 신흥 종교가 강성하던 시절, 도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유물을 통해 불교가 아닌 타 종교도 왕실에 영향을 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귀한 유물인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과거의 사람과 만나는 인문학이지만, 이미 죽어버린 그들은 아무 말이 없고 그들이 남긴 유물로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을 추측할 뿐이다. 이렇기 때문에 유물과 역사적 사료가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관리하는 공개된 23만 점의 우리 문화재는 이국 땅 어딘가에 있으며, 개인이 소장한 것까지 감안하면 미공개된 문화재는 약 100만 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실적으로 즉시적인 반환이 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문화재는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이국에 있더라도 잘 보존, 관리되는 방법과 훗날 반환하거나 기증받을 수 있도록 우리 문화재의 소유를 지속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 정치는 단 한 번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법령을 제정하고 종교를 통해 민심을 끌어들이려고 했으며 현실보다는 통치의 이념을 실현하려고 한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천년의 나라 신라도 골품제로 인해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당나라로 이주하는 경우와 당시 해상세력의 일인자였던 장보고도 왕실의 견제 속에 큰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아쉬운 사건을 쉽게 볼 수 있다. 어지러운 후삼국 상황 속에서 각 지방의 호족의 딸과 결혼하며 고려를 세운 왕건의 후예들도 문벌귀족의 폐쇄성과 문신 위주의 정치적 성향이 무신 반란과 거란과 몽골의 침입에도 강화도 천도라는 방법 이외에는 적극적인 항쟁도 하지 못한 나약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보여주었다. 역성혁명으로 신진사대부와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성계도 ‘패가입진’이라는 대의명분도 소용없게 만들고, 관료의 나라를 꿈꾼 정도전의 청사진과는 달리 왕실의 권위를 세운 그들의 정치는 성리학이란 이상향을 꿈꾸며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 행보로 인해 왜란과 호란,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500년의 역사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천 년의 시간 동안 나라를 유지한 경우는 극히 드믄데, 한반도의 동쪽 끝 경주를 기점으로 세워진 신라는 고려왕조 475년, 조선왕조 518년을 합친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한 나라를 유지해 왔다. 물론 상대적으로 발전이 되지 않은 고대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의 통치체제는 중세시대와 근세시대에 존재한 고려와 조선보다 더 뒤떨어졌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하나하나의 사건이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다는 생각으로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했던 화백회의부터, 국가에 충성하고 수양하고자 한 화랑들의 헌신, 왕실의 종교가 아닌 민중 속의 불교로 화쟁사상을 주장한 원효대사의 꿈이 모두 합쳐져 황룡사의 9층 목탑을 보며 하나 된 국가를 꿈꾸게 만든 신라인의 하나 된 정치가 천 년이란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역사 속의 정치를 보며 앞으로 우리 민족이 가져야 할 정치관과 세계관을 생각해 본다. 역사적으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충돌했던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의 정치가 올바르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일부 권력층만의 정치가 아닌 민중을 위한 정치가 되어야 함은 변함이 없다. 여기에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을 지킬 수 있는 국방력과 세계사의 흐름을 읽고 빠르게 대응하는 외교적인 시야와 처세술이 바탕이 된 정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새로운 세계사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진정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 고민으로 인해 우리 민족의 미래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책임지는 정치와 위정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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