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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n 14. 2023

어제 만난 나의 친구

나의 20대를 알고 있는 사람

 아내는 가끔 나를 왕따라고 놀린다. 아내는 친구들의 이름을 외우기 힘들 정도로 친구가 많고, 자주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교류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친구 같은 후배까지 포함해서 아내가 알고 있는 내 친구는 한 손이면 충분하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을 자주 안 해서 미안한 마음에 친구라고 말하지 않을 뿐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나는 아내에게 왕따인 사람이 되었다.


 어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내온 친구로, 나의 20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의 철없고 혈기 왕성한 20대를 직접 본 사람이기에 그 앞에서 나를 포장하려고 하거나 가식적인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런 행동을 하는 것 자체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앞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편하고 좋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대학생활도 졸업을 하면서 서로 각자의 길로 갔지만 서로에 대한 끈은 놓지 않았다. 겉으로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표본이지만 그 속마음만은 비단결 같은 사람이기에 계속 만나고 내 옆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이 있다. 나의 샐러던트 생활을 시작하게 해 준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이 친구 덕분에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관련 법이 바뀌기 전이라 평생교육 시설 외 그에 준하는 관련 시설에서도 실습이 가능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반적인 실습을 하는 것이 어려워서 실습 과정을 포기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이 친구한테 전화를 했고, 기관장님의 허락을 받아 한 달간의 실습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면서 자격증 취득을 할 수 있었고 이 자격증을 시작으로 8년 간의 샐러던트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이 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격증은커녕 학위도 취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고맙다.


 이 친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엄청난 매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축구, 테니스 등 온갖 운동을 잘하는 구릿빛 피부의 열혈남이었데 특히 자전거를 좋아해서 라이딩을 다니곤 했다. 취업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자전거 타기를 했고 어렵게 입사한 직장을 정확히 10년 다니고는 퇴사를 하여 자전거로 유럽 여행을 한 정말 멋진 남자이다. 이 친구의 유럽 여행기를 듣고 나도 유럽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으며 여행의 끝판왕이라고 했던 스위스를 제일 마지막에 가라고 한 충고를 뒤로 하고 스위스를 제일 먼저 다녀오면서 다른 곳은 성에 안 차는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결혼하고 육아를 하면서 우리의 20대를 서로만이 기억해주고 있지만, 내 주변에 나의 20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물론 꼬꼬마 시절부터 나를 보았던 사람들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 본격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때 만난 친구는 참 귀한 존재이다. 꿈 많던 20대의 청년이 이제는 누구의 남편이자 누구의 아빠가 되어 꿈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크지만, 같이 자전거 여행을 하자고 했던 우리가 꿈꾸었던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훗날 같이 자전거를 타며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너무 좋다.


 내가 엄청난 밀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 친구는 어제 선물로 맥가이버 칼로 잘 알려진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주었다. 신혼여행 중에 나를 생각하고 샀는데, 너무 늦게 줘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를 기억해 준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 이미 감동이자, 축복이었다. 특히 그 제품은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한정판이었기에 더더욱 고마울 뿐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특히 나의 20대를 알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두 번의 20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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