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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l 19. 2023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작가의 시선

 내가 유년기를 보낸 외가의 마당에는 오래된 대추나무가 있다. 언제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머니가 어릴 적에도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외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에 심어진 것 같다. 대추나무는 해마다 붉은 대추를 선물해 주었고, 추석 때 맛있는 햇대추를 맛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귀향길 속에서도 많은 시간이 걸리고 사람으로 붐볐지만 햇대추를 먹는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었고, 매년 추석 때 맛보는 붉은 대추는 일 년 중 가장 고대하고 기다리는 시간 중 하나였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이었다. 대추를 보고 이런 시상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으며 동시에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이과생의 문학적 표현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궁극의 표현으로 사물의 외부를 보고 내부의 사연을 알려주는 것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나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당시는 문학보다는 국영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당연했기에 문학적 기법을 배우는 것은 그 자체가 사치였다.


 시를 자주 읽지는 않지만 시 속의 함축적 의미에 항상 매료된다. 특히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 때에는 겉으로는 절대 드러날 수 없는 의미를 시 속에 숨겨두고 그 정서를 아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의미를 숨겨두기도 했다. 시는 정서와 의미의 전달 체계로 사람과 사람에게 이어지는 음률이자, 노래이다. 김소월 시인의 ’ 진달래꽃‘이 시이지만 노래로 불리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 들 일 수 있겠지만 시는 노래로 불러지며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시의 함축적 의미를 볼 때마다 일상 속 사물의 특별함이 나타난다. 이는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보는 작가의 시선과 대상에게 특별함을 선사하는 능력으로 인해 그 대상은 고유함과 동시에 특별함을 가지게 된다. 대추 한 알 속 담긴 태풍과 번개, 벼락으로 붉어지고 땡볕과 초승달을 보며 다듬어짐으로 인해 내가 맛있게 먹던 붉은 대추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지난겨울의 추위와 봄의 태동, 여름의 무더위를 견뎌낸 대추나무를 지켜봐야만 알 수 있는 관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 번 본다고 절대 다 알 수는 없다. 자세히 보고 여러 번 봐야 알 수 있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대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을 글감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의미 발견자’로 살기 위해 장석주 시인의 시선을 본받고 싶다. 아니 나도 그와 같은 시선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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