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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l 28. 2023

황금의 시대, 신라

자신이 금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경주 대릉원에 있는 황남대총은 보기 드문 쌍봉 고분으로 운 좋게 도굴이 없어 온전한 형태의 유물을 발굴할 수 있었다. 여기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진귀한 보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화려한 곡옥으로 장식된 금관을 비롯하여 온갖 금 장신구가 출토되어 아랍 상인들에게 ‘바실라’라고 알려진 고대 황금도시가 경주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또한 계림로 14호 분으로 불리는 작은 고분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은 멀리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된 보검과 쌍둥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경주와 상당히 멀리 떨어진 초원 세력과의 교역을 증명해 주지만 아직 밝혀진 것이 없는 비밀스러운 역사의 흔적이다.


신라의 천 년 고도, 경주는 지정학적으로 보면 한쪽에 치우쳐져 있어 중앙집권적 통치의 한계를 분명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삼국을 통일한 후 9주 5소경을 설치하여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암묵적인 지방 호족 세력의 발전은 견제하거나 막을 수 없었다. 이런 지정학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신라의 오랜 도읍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경주평야에서 시작한 사로국의 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삼한 중 진한의 12개의 나라 중 한 나라로 한반도 중앙이 아닌 변방에 위치한 작은 나라였지만 대륙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지정학적인 장점을 잘 살리고 융합하는 힘이 있었다.


 당시 사로국은 고조선의 유민으로 추정되는 북방의 세력과 서라벌이라고 불리던 경주 분지에 살던 토착 세력이 만나 6촌을 세우고 만장일치제인 화백 회의를 통해 중대한 의사 결정을 내렸다. 지금처럼 사람들의 생각과 추구하는 것이 달랐지만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만장일치제를 선택한 것 같다. 사로국에서 세력이 더욱 커지면서 신라로 이름을 바꾸고, 6촌도 6부로 변모하면서 화백회의는 진골 이상의 귀족 회의로 중대한 결정뿐만 아니라 왕권 견제와  귀족들의 은밀한 만남이기도 했지만 중요한 점은 화합의 장이었다는 것이다.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으로 불리며 리더의 역할을 했지만 아직 ‘왕’이란 칭호로 불리지 않던 시절은 박-석-김 씨가 돌아가며 최고의 자리를 자치했지만 내물 마립간 때부터는 김 씨만 추대되기 시작했다. 이는 경주에 유입된 후발주자였던 김 씨 세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존 세력인 박 씨와 석 씨를 몰아내고 경주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 시기 삼국 중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는 백제-가야-왜 연합군의 공격으로 경주가 함락되기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 속에서 수, 당나라마저 벌벌 떨게 만든 동북아시아의 최강자 고구려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였다.


 경주와 멀리 떨어진 고구려가 신라의 심장 경주 한복판에 있었다는 것은 ‘호우명 그릇’의 출토로 기절 사실이 되었으며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개마 무사에 의해 뛰어난 철기 문화를 자랑하던 가야는 처참히 무너졌다. 고구려의 강력한 철기문화와 기마술을 직접 목격한 신라인 속에 잠재되어 있는 북방 민족의 힘이 발휘되면서 북방에서 내려온 ‘불의 길’이 쇠가 아닌 고귀한 금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약한 존재가 아닌 하늘에 떠 있는 해처럼 빛나는 금족임을 세상에 천명하기 위해 경주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하늘신 해모수와 하백의 딸 유화의 아들로 하늘과 물의 연합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이나 북한 지역에 있는 고구려 고분들은 도굴의 피해를 입었거나 개발로 인해 파손된 것이 많아 고분 속 부장품들이 잘 발굴되지 않으며 특히 금 장신구가 출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원인 중 하나가 고구려에서는 금은 왕과 왕족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함 그 자체였으며, 특히 해신인 해모수의 후예로 빛나는 금은 마치 하늘의 해가 땅에 내려온 것처럼 왕가의 상징이자, 정체성이었다.


 고구려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김 씨 세력은 잊고 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계림 속 금빛관에서 나온 알지신을 모시며 하늘의 빛나는 해처럼 반짝이는 자신이 쇠보다 귀한 금임을 인지하는 순간, 경주는 변방이 아닌 세상의 중심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하기 위해 경주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하늘 위의 해가 땅에 내려온 것 같이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닌 훗날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금족의 집결이자, 정체성 회복을 위한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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