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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ug 13. 2023

비고츠키 아동학과 글쓰기 교육

몸짓, 놀이, 그리기에서 비롯되는 글쓰기

 선사시대에는 인간의 말을 표현해 주는 글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연하게도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사시대 사람들은 기록에 대한 욕망을 기호나 그림을 통해 해소하였고, 지금까지 그것이 전해지지만 정확한 의미나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그림 속 대상이 가지는 상징성은 시대적 해석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의도를 모르고 접근하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글쓰기에게 있어서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는 힘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면서 이런 의도를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특히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면서 새벽 시간을 누리는 나를 보고 늦잠을 자서 아침마다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새벽에 일어나면서 책 읽기를 하고 있는 내 옆에 앉아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루틴에 방해가 된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이제는 나의 루틴을 하는 시간을 앞당기면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기니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아이는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는데 지금의 자신과 과거의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옛날에는 어떠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 같다.


 아이와 새벽에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회상하며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만약

지금 아이와 같은 나이로 돌아간다면

어떤 것을 할 것인가??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만약’이라는 것은 수많은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지만, 나에게는 이제라도 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준다. “만약 지금 아이와 같은 나이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조건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초등학교 현직 교사로 다년간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육을 한 저자의 노력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고, 특히 아직 쌍자음이나 받침과 같은  글자의 구성이나 연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내 아이의 행동을 관찰해 본 결과와 유사함을 느꼈다. 이것을 ‘이행적 쓰기 활동’이라 부른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에게 쓰기 학습은

의미 구성과 문자 구성이라는 이중의 추상화 과정을

의식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새로운 정신 활동이다.


이제 첫 공교육의 관문에 들어온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 뿐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어렵고 힘든 과제라고 포기하거나 배워야 할 시기를 연기하는 것은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어려워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워나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과 시기라고 생각한다.


 비고츠키는 ‘쓰기 “ 활동의 발생적 기원은 ’ 읽기‘가 아니라 ’ 몸짓-놀이-그리기‘라고 했던 주장은 읽기는 되는데 왜 쓰기가 안 되는지 의문을 품은 학부형과 교사에게 가장 좋은 답이 된다. 인지능력 발달 과정의 속도와 학습 역량에 따라 다소 글쓰기가 늦을 수도 있지만 그전 단계인 몸짓과 놀이와 그리기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통해 상위 단계인 글쓰기로 발전되는 과정을 반복한다면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모두가 글쓰기의 묘미를 알게 되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 매일 글을 쓰는 루틴인 글 루틴의 수행자가 된 나는 내 아이도 나와 같이 글쓰기를 하고 멋 훗날같이 책 쓰기를 하여 공저자가 되는 꿈을 꾼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은연중에 아이에게 글쓰기 할 것을 강요하고 있지만 이것은 분명히 나의 욕심이자 단계를 거스르는 망상일 뿐이다. 모름지기 부모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이루지 못한 나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과 아이의 재능을 무시하고 욕심을 버리는 것을 제일 경계해야 한다.


 아이가 글쓰기를 하게 하려는 나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몸짓과 놀이, 그리기로 표현할 때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훈련을 하려고 한다. 눈치가 없어 아이의 의도를 모를 때는 아이에게 의도를 물어보면서 아이의 생각과 감정에 동화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부모의 역할을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도록 지지하고 아이 뒤에서 지켜보는 인내심에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할 것이다. 나는 아이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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