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 Aug 30. 2023

트렌타

크기의 매력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근무하는 사무실이나 집 근처에는 항상 스타벅스가 있었다. 일명 ‘스세권’이라고 하는 혜택을 누리고 살았는데 작년 이사 온 집 근처에도 스타벅스가 있다.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종종 이용하는데 주로 제주 유기녹차를 마시다가 무더위가 기승하던 무렵부터는 아이스 자몽허니블랙티에 푹 빠졌다. 처음에는 그냥 마시다가 너무 달아서 클래식 시럽을 없애고 자몽시럽도 반으로 줄이니 달지 않고 시원하게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8월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텀블러 속 얼음으로 가득한 음료도 정오가 되면 다 녹아버려 한계를 보이곤 한다. 아침 출근길에 구매한 자몽허니블랙티는 점심이 되기도 전에 얼음만 남는 경우가 많았기에 적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에 늘 부족한 음료에 대해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즐겨 먹는 벤티사이즈는 591ml이나 되지만 무더워에 속절없이 녹고는 했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는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 벤티보다 더 큰 트렌타 사이즈를 시범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트렌타 사이즈는 무려 916ml로 1L에 약간 부족한 엄청난 용량의 사이즈이다. 매장에서 마실 경우 해당 사이즈의 컵이 없어 테이크 아웃 전용으로 운영되고 아이스 자몽허니 블랙티를 포함해 4가지 메뉴만 트렌타 사이즈를 이용할 수 있다. 과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2L가량 마셨던 나에게는 엄청난 호재였을 것이다.


 지금은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아이스 자몽허니 블랙티에 만족하지만 유럽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트렌타 사이즈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1L에 가까운 음료를 마시려면 매장에 얼마나 오랜 시간을 체류해야 할지 생각도 들지만 스타벅스는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트렌타를 구매하면서 하루에 여러 번 스타벅스에 가고 싶은 유혹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출근길 한 번의 구매로 마시는 속도만 조절하면 퇴근할 때까지 마실 수 있어서 무덥지 않은 봄, 가을에는 하루 종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한시적인 운영이라 계속 이런 기쁨을 누릴 수는 없겠지만, 혹여 상시 운영하는 사이즈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해본다.


 트렌타와 같은 대형 사이즈를 이용하면서 크기의 매력을 다시금 느껴본다. 트렌타 사이즈와 같은 마음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평서 벤티 사이즈의 마음으로 살아온 감정에 대한 반응을 보다 유연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 그릇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늘어난 용량만큼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담을 수 있다면 내 감정에서 크기에 따른 여유가 생길 것이다.


 매일 마음의 그릇을 빚으면서 조금씩 확장하고 있지만 가끔 나는 옹졸한 사람이 되고는 한다. 넓은 태평양처럼 작은 돌멩이로 인한 파동쯤은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는 마음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보다 내 주위에 더 많을 사람이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 감정 상태도 보다 여유 있어서 그릇의 크기만큼 감내할 수 있는 미덕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크기에 대해 집착하기 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크기를 가지고 싶다. 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크기는 나에게 백해무익할 뿐이다. 그래서 크기에만 집착하기보다는 크게 만들려는 의지와 매일의 노력에 집중하고 싶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시간에 최선을 다할 때 나에게 주어지는 내일의 선물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크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갈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변화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