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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Sep 03. 2023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청어와 대구가 가져온 축복


 ‘지저스 피시’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물고기 문양은 고대 기독교인의 암호로 알려진 익투스(이크티스, ΙΧΘΥΣ)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로의 그리스어 앞 글자를 합친 것이라도 한다. 이런 의미 때문에 물고기는 생명을 상징하며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함께한 마지막 식사로 알려진 <최후의 만찬> 속 식탁에 있던 음식이 물고기와 빵이었다는 것은 종교적인 의미가 더 강하기도 하다.


https://youtube.com/watch?v=kHVeL7W5AZ0&si=lcReeEVGvWHQ3IB5


중세 유럽 사회는 지금과는 달리 정말 먹고사는 문제가 종교적인 문제와 신분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이슈였다. 특히 흑사병으로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라져 버린 팬데믹을 경험한 인류는 의료기술이나 공중보건 분야가 발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잘 먹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혹독한 추위와 험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농사와 목축이 어려웠기에 인근 지역을 약탈하거나 바다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중 물고기는 가장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주요한 식량이었다.


 조업의 시기마다 다른 종류의 생선을 잡으며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북해의 악명 높은 날씨와 거친 파도 가운데 잡는 물고기의 양은 늘 부족했을 것이다.  설령 만선의 기회를 잡았다 할지라도 많은 양의 물고기를 보관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획기적인 생선 보관 방식인 염장 기술이 사용되면서 만선의 기회는 먹는 문제를 넘어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 되었다. 또한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일 년 중 절반이 넘는 기간 동안 단식일을 정하면서 수도원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도 물고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북해의 청어는 아주 인기가 좋았다. 회유어인 청어는 봄철 북해에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잡혔지만 지방의 함유량이 높아 금세 상하는 물고기였다. 많이 잡아도 그만큼 많이 버려서 조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물고기이었지만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이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버려지는 양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청어 잡이와 염장 기술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가장 유명했는데 이 기술을 통해서 작은 어촌 마을에서 유럽 최고의 상업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염장한 청어를 나무통에 담아 보관하고 이를 유럽 전역으로 수출하던 당시 네덜란드에는 20만 명이 넘는 청어잡이 어부가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청어 잡이와 염장 기술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네덜란드령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면서 17세기 최고의 부국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청어 잡이를 통해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네덜란드는 청어와 관련된 축제가 있으며 네덜란드의 오래된 건물에서는 청어 문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르웨이의 차가운 바다에는 청어와 같은 반열의 물고기가 잡히는데 바로 대구이다. 청어와는 달리 지방의 함량이 적어 쉽게 상하지 않으며 단백질이 많이 있어 건조하여 오랜 기간 보관할 수도 있다. 특히 바이킹이 말린 대구를 주식량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오랜 기간 북유럽 사람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준 고마운 물고기이다.


 특히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보스턴  매사추세츠 주 의사당에는 <성스러운 대구상>이 걸려있는데 북유럽 사람들뿐만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던 초기 청교도들에게도 주요한 식량 자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북미 대륙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뉴펀들랜드 인근 해안까지 대구 잡이를 하러 온 어부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다.


 염장 기술은 대구에도 적용되어 청어를 밀러내고 유럽 최고의 물고기로 자리매김했으며 말리는 방식보다 대구를 온전히 즐길 수 있어 대구의 폭발적인 수요량을 불러왔다. 하지만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에서는 청어와 대구의 비싼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청어와 대구의 수요는 줄어들지 않았다.


 일 년 중 절반 이상 되는 단식일 동안에는 욕정을 상징하는 육식을 할 수 없었기에 물고기의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었으며 중세 유럽 수도원에서는 직접 물고기를 길러 <성 금요일의 피시 데이>를 누렸다. 지금도 중세에 세워진 수도원에는 잉어나 송어를 키운 양어장 시설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 물고기는 지금도 인간의 주요한 먹거리가 되고 있다. 물고기가 불러온 흥망성쇠는 중세 유럽의 역사뿐만 아니라 미국의 역사를 뒤흔든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건이었으며 지금도 기독교의 영향이 뿌리 깊게 내려있는 유럽의 식문화와 전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물고기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당시 유럽인의 배고픔을 해소해 주고 가난했던 주머니 사정을 해결해 주는 축복이었다. 만약 물고기가 없었다면 유럽인들에게 번영의 시대도, 생존의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물고기는 인간에게 종교를 넘어선 신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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