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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Sep 02. 2023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인조실록

폐륜과 치욕 그 자체인 모순 덩어리

두 번의 왜란을 통해 황폐해진 조선의 땅은 점점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지만 성리학을 토대로 현실과 괴리가 있는 이성적인 예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붕당정치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자신들의 세력 규합과 다툼에만 정신이 팔려있을 동안 백성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졌고 나라 살림은 더욱 악화되었다. 옥사와 폐륜에 반기를 들며 호기롭게 반정을 일으켰지만 인조도 서인들 없이는 위태로운 왕위를 지키기 어려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서인을 등에 얻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서인들의 주장을 가볍게 여길 수 없었기에 자신의 의지대로 정사를 펼쳐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병자호란 속 피난을 가는 모습은 군주로서의 위신을 무너트린 사건이었다. 특히 병자호란 동안 혹독한 추위 속 남한산성에서 45일간의 항쟁을 무의미하게 만든 논쟁 속에서 결국 삼전도의 굴욕을 맛보았다. 청나라식 삼배구고두를 하여 이마에서 피가 났던 인조는 사대의 예를 갖추다 오랑캐에게 머리를 숙이는 치욕을 경험했다.


 만약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계승하여 망해가고 있는 명나라 대신 후금과의 관계를 중시했더라면 정묘호란을 교훈 삼아 현실적인 득실을 중심으로 하는 외교를 하였다면 과연 병자호란이 일어 날을 까 상상해 본다. 또한 문만을 강조했던 조선사회에서 국방력을 키우며 전쟁을 대비했다면 삼전도의 굴욕보다는 홍타이지에게 조선의 매운맛을 보여주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명에 대한 의리와 종이와 같은 국방력을 가졌기에 보기 좋게 후금의 말 말굽에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


 병자호란 이후 인조의 모습은 마치 선조를 연상하게 했다. 종묘사직과 백성들을 위한 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안위를 더 챙기며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부부를 청의 볼모로 보내며 수많은 대신과 공녀를 청으로 보내면서도 슬퍼하기는커녕 자신이 끌려가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삼전도의 굴욕을 대갚음해 줄 노력을 하기보다는 꺼져가는 촛불의 형국이었던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모습은 청을 더욱 자극해 무리한 공물을 요구하도록 만들었다.


 남한산성의 항쟁 가운데 아버지와 종묘사직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바친 소현세자가 청의 신임을 받고 백성들이 자신보다 따르는 것을 시샘하고 질투하는 모습에서 인조는 더 이상 군주의 자격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9년 동안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갖은 고생을 했던 세자를 반기기는커녕 외면하고 질투했던 인조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한 나라의 지아비는 고사하고 자신을 대신해서 볼모생활을 한 소현세자의 아버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볼모생활 동안 청의 권력자들과 친분을 쌓았으며 특히 청의 선진문물을 보면서 조선의 미래를 꿈꿔왔다. 서양 선교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국제 정세와 감각을 키웠기에 그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의 개화가 200년 이상 빨리 이루어지고 일제강점기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심지어 인조가 청나라의 신임을 받은 소현세자를 질투하며 자신의 어의 이형익을 통해 독살시켰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고 인조가  신뢰한 이형익의 침술이 문제가 되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게 하였다. 특히 이형익의 침술은 봉림대군조차 거부할 정도로 인조를 제외하고는 믿을 만한 의술은 아니었다고 본다.


  광해군의 폐륜을 문제 삼아 반정을 일으킨 인조의 인생은 왕실과 백성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선조의 환생 그 자체를 넘어 3배는 더 옹졸한 선조의 부활이었다. 자신이 일으킨 반정의 명분으로 광해군과 무조건 반대로 하기를 원했던 인조는 오히려 광해군보다 더 심각한 패륜을 일으킨 모순 그 자체였다. 소현세자의 의문사와 함께 세자빈과 그녀의 아들들까지 모두 죽게 만든 인조가 벌인 폐륜은 가히 광해군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합리적인 정책과 계획도 없이 무조건 광해군과 반대되는 행보만을 주장하며 청이 조선을 침략할 수 있게 구실을 만들었고 제대로 된 항전조차 하지 못하며 도망가기 바빴고 말로만 종묘사직을 위할 뿐 실제로 자신의 안위만을 챙긴 지지리도 못난 군주였던 인조를 그의 묘호조차도 과연 인자한 왕이었는지 의심마저 들게 하는 치욕의 역사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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