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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ug 30. 2023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선조실록

후안무치의 표본

조선 최초 방계 출신의 왕이 된 선조는 중종의 서자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었다. 명종의 후사가 없어 급히 진행된 후계 구도에서 세 형제 중 유일하게 익선관을 쓰지 않은 기지를 발휘하여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명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준비 없이 왕이 된 선조는 항상 정작자가 아니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대신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정통성을 증명하려 노력했지만 별 소용없었다.


 몇 번의 사화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사림은 동서 분쟁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와 세력을 굳히는 것에 급급했으며 사리에 맞는 주장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입장과 다르면 과감히 배척하고 모함하는 유학자로서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조선통신사 보고에서 절대 왜국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 김성일의 보고를 동조한 동인들은 전쟁의 책임을 져야만 한다.


 전쟁을 정보과 첩보 등 상황적인 판단이 아닌 일개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결정한 동인들의 암묵적 동조와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했던 조선 권력자들은 두 번의 왜란 앞에서 왕을 모시고 피난 가는 것만 했던 사람들이다. 물론 왕의 목숨과 존재 여부는 중요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자신의 안위부터 챙기는 왕을 보고 과연 백성들의 지아비라고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선조의 모습과 대비되는 리더가 있는데 바로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이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치러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개전 초기 젤렌스키 대통령이 망명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수도 키이우에 남아 국민들과 함께 항전했고 지금도 전쟁의 중심에서 자국과 국민들을 이끌고 있다. 심지어 그는 개그맨 출신으로 정치적 기반이 약하지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하는 이 시대의 참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양을 버리고 북을 도망한 선조의 행동에 분개한 백성들이 경복궁에 불을 지르고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 왜군과 싸우고 무능력했던 관군을 대신했다. 물론 성웅 이순신 장군님처럼 미리 왜국의 계략을 간파하여 대비한 분들도 있어서 호남의 곡창지대를 차지해 군량미를 조달하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홍의장군 곽재우, 진주 목사 김시민과 같은 분이 계셨기에 임진왜란 속 무너져가는 조선을 지켰지만 여차하면 압록강을 건너 명으로 망명할 것을 준비했던 선조는 백성들의 삶보다는 항상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전후 공신 책봉에 있어서도 전장에서 싸운 장수보다 자신의 곁을 지킨 대신과 내관들에게 더 높은 공을 준 선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후안무치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쟁 전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만 묵살되지 않았어도, 성웅 이순신 장군님이 경상우수사에 계셨으면 임진왜란 때 왜군이 쉽게 한양으로 진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의 대신 중 중앙 정계에서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학문적 이상향만 추구하지 않았던 이이와 같은 대신이 더 많았더라면 권신과 척신으로 이미 보였던 망국의 기운이 개혁 정치로 사라졌을 것이란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처럼 조국의 수호하신 이순신 장군님의 활약 속에서 전쟁은 끝났지만 구국의 영웅 대접을 받지 못했던 연유는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를 시셈하는 어긋난 군주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이처럼 시대적 정신과 상황을 꿰뚫어 보는 식견도, 간언을 듣는 귀도 없었던 선조는 조선왕조실록 최초로 수정실록을 만들게 한 원인 제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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