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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Sep 15. 2023

그리워하는 마음

장인어른 기일

 오늘은 장인어른 기일이다. 오랜 기간 투병 생활하시는 동안 옆에서 모셨던 장모님의 정성스러운 간호가 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에 모시지 못했고, 그런 딸의 분신인 우리 부부의 아이도 보시지 못했다. 물론 사위인 나도 보시지 못했다.


 나는 장인어른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왜냐하면 아내가 26살 무렵에 지병으로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장인어른은 나와 같은 학교에 계셨기에 서로의 미래를 몰랐겠지만 우연히 스쳐 지나쳤을 수도 있다. 아쉽게도 그때는 서로의 존재를 미처 알지 못했다.


 결혼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인어른은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 근무하셨고 주로 중앙도서관에 계셨다고 들었다. 중앙도서관은 내가 전공 수업을 들었던 강의동 인근에 있었지만 나는 주로 연구도서관에 갔었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씩 가는 곳이었지만 장인어른이 계셨던 공간에 주로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혹여 내가 찾지 못했던 자료가 있어서 도움을 구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20여 년 전 일이라 확실치 않아서 기억해 내는 것조차도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나는 장인어른과 한 공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왠지 모를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장모님은 장인어른을 정성을 다해 병간호를 하셨다. 몇 번 들었던 응급실에 실려가셨던 일과 중환자실에서의 이야기는 단 한순간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장모님의 간절한 소망을 느낄 수 있었다.


 ‘긴 병에는 효자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장모님은 그런 편견을 깨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심지어 장인어른 간병뿐만 아니라, 시아버지 간병까지 하면서 아내와 처남, 그리고 시댁 식구들까지 챙겨야만 했던 장모님의 어깨에는 맏며느리라는 무거운 책임이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준비하시면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말없이 표현하시는 것 같다. 산소에 가서 차례를 지낼 때도 맨 흙바닥에 절하시는 모습을 보면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자신만 살아 있음을 너무나 미안해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먼저 간 분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형식은 다르지만 처남 식구들은 제사를 모시며 우리 식구들은 기도로 장인어른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우리 아이는 외할아버지가 귀여운 자신을 보지 못하고 가셨다고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아내와 장모님은 모르는 일이지만 가끔 거제도에 갈 때면 막걸리 두 통을 사들고 장인어른 산소에 간 적이 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아내의 뿌리인 장인어른으로 인해 우리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말없이 드셨던 막걸리가 좋으셨는지 그 후 산소에 가니 인근에 작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작은 소나무를 보며 장인어른의 친구가 되어 외로운 날을 함께 해줬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거제도의 푸른 바라를 보며 누워 계시는 장인어른을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석에 찾아가야겠다.

 그때 장인어른의 친손주, 외손주를 앞에 두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사진 속의 모습이라도 기억하도록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사상에 술 한 잔 올려드리지는 못하지만 가끔 홀로 산소에 들려 막거리 두 통을 드리고, 그 막걸리 곡기에 취하셔서 기분이라도 좋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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