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 Sep 23. 2023

완벽이 아닌 최선을 위해

지속 가능한 수준의 최대의 선

학창 시절 시험을 치고 난 후 받은 성적표에 학부모 서명을 받으면서 ‘최선을 다했으면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쉽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고는 했다. 한 살 터울의 누나 성적과 비교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성적보다 더 잘 받을 수 있었는데라는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최선을 다했으면 괜찮아’라는 말은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 말이 되었다. 열심히 노력한 모습을 보셨던 부모님께서 하신 위로의 말이었지만 나는 더 높은 점수를 위해 최선보다는 최상을 선택해야만 했고,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 주안점을 두고 살았다.


 점수를 몇 점 더 받는다고 달라지는 대입 결과 앞에서 나는 고득점을 받아야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성적을 위해 공부했었다. 다만 위안으로 삼는 것은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닌 나와 비슷한 시기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성적 지상주의> 속에 살았고 그것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따라서 인간이 한 행동이나 생각은 당연히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완벽하다는 착각을 한다. 그 이유가 인간은 항상 혼자가 아닌 타인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있기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완벽함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학창 시절부터 대학원을 다니던 때까지 성적표를 부모님께 드리면서 성적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서울대에 들어갈만한 성적을 받은 적도 없기에 내가 생각하는 성적으로 인정받는 행위는 내 기준 안에서 작용하는 완벽함이었다. 더 큰 범주로 나갈수록 나의 완벽함은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나의 행복이자 부모님의 행복이었고, 나의 미래에서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에 완벽함의 오류 속에서도 나는 높은 성적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주는 행복의 달콤함을 포기할 수 없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는 것을 윤리적 행위로 보았던 공리주의는 19세기 영국에서 태어났다. 공리주의는 인간을 언제나 쾌락,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이나 불행을 피하려 하는 본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한다.


 특히 공리주의에서 도덕이란 지구상의 모든 지각 있는 존재를 위해 최대의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최대의 선을 얻는 것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수록 인간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절대다수의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공리주의는 ‘지속 가능한 수준의 최대의 선’을 추구한다.


 이는 완벽함이 주는 부담과 강박에서 자유로워지고 지속하며 평생 즐기는 가운데 행복을 추구하는 어떤 행동으로 인해 개인의 선을 만들고 모두의 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