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 Sep 23. 2023

노인과 바다

사투의 결과

 8살 무렵 아버지 직장 때문에 푸른 바다가 있는 부산으로 이사 왔다. 이곳에서 초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다니며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고 있지만 바다가 주는 매력은 이루 다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오션뷰’가 있는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바다는 단지 경치를 위한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부산이라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 안에는 바다가 있기 때문에 곳곳에 ‘어촌계’가 존재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도시 안에 어업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낙동강 인근 지역에는 내수면 어업을 하는 어촌계가 있다.


 파도가 일렁이는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고 저 먼바다 끝에 있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있어 바다는 생각하고 머리를 식히기 최적의 장소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어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다는 ’ 사투‘하는 곳이 된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파도와 싸워야 하고, 그물을 내리고 올리는 행위를 통해 이를 거부하는 물고기와 싸워야만 하는 대결의 공간이 된다.


 바다는 무한한 생명력의 공간이지만 절대 아무것도 그냥 내어 주지 않는다. 자맥질을 하는 제주 해녀에게도 숨을 참는 고통이 있어야, 그물주머니에 바다의 생산물을 가득 넣을 수 있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에게도 그물을 내리고 올리는 행동을 해야 만선의 기쁨을 준다.


 바다는 인간에게 절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오랜 시간 말없이 바다가 키운 생산물도 거저 얻는 것이 아닌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바다 바깥으로 그것을 가져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혹여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생산물을 가져갈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더 큰 어려움과 마주하게 되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만 바다의 생산물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바다의 생산물을 온전히 얻기 위해서는 주변의 방해물을 제거해야 하지만, 손쓸 틈도 없이 나를 위협하고 방해하는 존재가 나타나 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빼앗아 갈 때도 있다.


 내 노동을 투자하여 얻은 노획물도 결국 내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하고, 그 무엇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어둠 속에서 파도와 싸우며 자신의 노획물을 지키고자 여러 마리의 상어 떼와 사투를 벌인 결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했다. 타인에게 자랑할 만한 거대한 크기의 청새치는 이제 머리를 제외하고 뼈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뼈밖에 남지 않은 청새치를 얻는 과정 속에서 노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투를 벌였다. 잔혹한 상어 때로부터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비록 상품성이 전혀 없는 청새치만 남았지만 결국 자신의 것을 지켰고 무너지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노인은 몸속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지쳐 쓰러져 잠들었지만, 다시 일어나 바다로 나아갈 것이다. 내 인생도 모든 것을 걸어 기력을 소진하여 쓰러지는 순간이 있도록, 인생의 순간순간에 집중할 것이다.


 특히 노인이 그토록 잡길 원했던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 순간이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죽기 살기로 하여 반드시 얻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이다. 혹여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이 주는 의미를 통해 결과보다 더 값진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이 아닌 최선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