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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Oct 01. 2023

대추 한 봉지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추억

 오늘은 진정한 집돌이 모드를 하고 사상 초유의 6일간의 연휴가 주는 여유를 즐기고 있다. 잠시 읽은 책을 반납하기 위해서 도서관을 다녀온 것을 빼고는 집에서만 있었다. 아내는 아이와 함께 모임을 갔고 장모님도 잠깐 쉬시다 외출을 하셨다.


 외출 후 돌아오신 장모님이 먹으라고 하시며 대추 한 봉지를 내미신다. 갓 수확한 것 같은 햇대추를 보니 어린 시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떠오른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학교 입학 전 외가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군부대만 있는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복잡하고도 도시만의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외가의 대문을 열면 아름드리 사이즈의 대추나무가 있었다. 누가 언제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맘때가 되면 늘 햇대추를 선물해 주는 고마운 나무였다. 추석 때 외갓집에 가면 들어가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내 손에는 늘 대추가 있었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주머니에 한가득 넣어 오기도 했다.


 대추는 어린 시절 나의 추억을 소환시켜 주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대추를 볼 때마다 외가에서 보냈던 좋은 시간들이 떠오르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외가는 서울에 있었지만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고 가을에는 대추, 여름에는 앵두나무, 자두나무에서 갓 익은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천연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재건축을 해서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였던 마당이 없어졌지만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추나무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60여 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추나무를 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후손을 위해 심으셨다는 할어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 속에서 태풍과 천둥, 벼락을 보았지만 나는 대추 한 알 속에서 추석 부산에서 서울로 가던 민족대이동과 키 작은 나를 위해 손수 대추를 따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촌형의 모습, 그리고 대추 한 묶음을 주신 큰외삼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큰외삼촌의 마지막은 코로나19가 극심했던 시기였기에 어머니도 나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화장을 하고 바다로 돌아가셨기에 다시 만날 수도 없는 인연의 아쉬움은 대추를 보며 더욱 커져만 간다.

 아직 대추의 붉은 기운을 볼 수 없는 푸릇한 대추를 먹으며 아삭한 식감과 함께 전해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만으로 배불러지고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을 누린다. 이런 감정이 추석 연휴 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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