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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Oct 01. 2023

국군의 날

자유를 향한 소리 없는 헌신

 오늘은 국군의 날이다. 연휴 중간에 있고 일요일이라 잊고 있었는데 국군의 날 퍼레이드도 안 해서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리맡에 있는 글감 달력을 보며 달이 바뀌었음을 알았고, 오늘이 국군의 날이라는 것을 인지하였다.


https://www.youtube.com/live/Xc8BukIFYM8?si=H8IWLkqdBcZqNTRL


 찾아보니 국군의 날 퍼레이드는 이미 9월 26일에 진행하였다. 왠지 모를 아쉬움과 함께 더 이상 국경일이 아니라서 잊고 지낸 나 자신에 대한 한탄을 하는 시간을 잠시 보냈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보며 나도 군인의 꿈을 꾸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군인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의미를 느꼈던 시간도 벌써 거의 20 년 가깝게 지났다. 멋모르고 혈기만 왕성했던 시절, 군대의 짬밥을 먹으며 점점 노련함으로 무장했던 시간도 이제는 전역한 지 오래된 예비군의 모습을 하고, 오늘이 국군의 날인지도 몰랐던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대한민국 남자들에게는 군대라는 것이 주는 사회로부터의 단절된 시간이자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신성한 시간 속에서 좋은 추억과 나쁜 기억을 함께 주고 있다.

전역하는 날 위병소 문을 나서는 전역자에게 이곳에서의 나쁜 기억은 다 버리고 가라는 당부의 말처럼 군 복무 기간 중 안 좋았던 기억도 있었지만 대체로 좋았던 추억이 더 많았다.


 심지어 고등학교 동창이 나보다 먼저 자대에서 복무했고, 수송부 담벼락에 낙서한 것을 보고 그 친구가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역하기 한 달 전에 알게 되었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부모님 슬하를 떠나 처음으로 나 혼자 살았던 군대에서는 성장환경도 취향도 달랐던 20대 청춘들이 국가를 위해 모였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현대화되어서 침상형 내무반에 동기들끼리 지내는 등 복무 환경이 좋아지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군 복무를 하지 않는 방향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군인의 마음속에는 끌려왔다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는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얼마 전 실종자 수색 시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채상병 님을 보면서 전쟁뿐만 아니라 국민이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군인들의 헌신이 발휘한다는 것을 느꼈다.  군대라는 조직은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이다. 단 한 번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적과 싸워 무조건 승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다면 전혀 쓸모없는 조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군대 없는 나라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지금의 국방력과 비교하면 약하고 약했던 1950년 6월 25일 새벽, 우리는 북한의 기습남침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던 그런 군대를 가졌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군대가 약했기에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했던 기억은 나는 경험해보지 않았고 전사를 통해서만 이론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최후의 보루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학도병이 교복을 입고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차 한 대 없던 당시 우리 현실 속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류탄을 들고 전진으로 돌진하는 모습은 이제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죄송스럽기만 하다.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이 수십 년 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군인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임을 기억하고 유사시 국가의 부름에 화답하고 전쟁이 나면 반드시 싸워 승리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의 평화는 강력한 국방력을 가지고 있고 최신예 무기를 통해 지키는 것이기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말없이 소리 없이 헌신하신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반드시 승리한다는 필승의 정신력 속에 있다.


 AR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등장한 정조대왕함의 위용 속에 필승의 정신이 깃들여져 있고, 비 오는 날이었지만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날이 선 군기를 보여주었던 대한민국의 군인들 덕분에 오늘도 맘 편히 잠들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2004년 어느 추운 겨울날, 눈 내린 철책을 순찰하고 막사에 복귀하여 “오늘도 서부전선 이상 없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라고 적었던 문장이 잊히지 않는다. 순국선열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2004년도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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