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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Oct 24. 2023

여행의 기술

인간적 번영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공간

 주말이나 공휴일에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전형적인 집돌이인 나는, 잠자는 것 이외에 단 한순간도 집에 있으려고 하지 않는 아내를 만나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기간 만료가 되기까지 단 하나의 입국 승인 도장이 찍히지 않았던 10년짜리 복수여권을 갱신하면서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내와 나의 첫 여행지는 다시 못 갈 것 같은 나라라고 생각했던 뉴질랜드였다. 급하게 신혼여행지를 정하느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여행 베테랑 아내의 선택은 신혼여행은 다시 못 가볼 곳을 가는 것이라고 했다. 편도 12시간 비행을 해야 하는 거리에 있는 남반구의 낯선 나라, 뉴질랜드에 입국하면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 여행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가 멀고 여행경비가 많이 들어서 한 번만 오는 것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나는 이곳에 다시 올 것만 같았다. 실제로 가족들과 다시 오게 되었고 또다시 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아이와 함께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되면서 많은 곳을 가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여러 번 가서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삿포로와 오키나와는 5번 다녀왔지만 아직도 이름만 들어도 다시 가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다. 매년 2월 말이 되면 삿포로의 하얀 눈을 보고 싶고, 5월이 되면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와 츄라우미 수족관을 보고 싶어 진다. 심지어 삿포로는 눈을 지독할 정도로 싫어했던 나의 관점을 변화시켜 준 곳이기도 하다.


 올해 2월 말, 삼일절 연휴를 이용해서 존경하는 선배님과 함께 삿포로에 다녀왔다. 그동안 주로 갔던 비에이가 있는 동부지역을 가는 대신, 남부 하코다테와 노보리베스에 가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는 여행이었다. 여러 번 삿포로를 갔지만 눈 덮인 낯선 길을 운전해서 간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한 번도 가지 못한 새로운 공간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여행에 앞서 사진으로 보았던 것과 실제 광경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사진으로 남기려 하지 않고, 눈을 보고 가슴에 담으려고 했다. 말로, 그림으로도 표현하기 어렵고 그 무엇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은 오직 내 마음에만 담아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현재에 충실하게 될 때 문득 떠오르는 그때의 추억은 다시 그때로 나를 되돌려 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매력적인 장소는 보통 언어의 영역에서 우리가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처럼 여행지에서 보게 되는 아름다운 광경을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일이 많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의 감수성은 수많은 요소들을 향하게 되지만, 그런 요소들의 숫자는 그 공간에서 우리가 찾는 기능에 맞추어 점차 줄어든다. 새로운 공간이 주는 느낌은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넓고 넓은 세상에서 여행을 가야 할 매력적인 장소는 너무나 많고 가야 할 이유도 많지만 보다 여행을 여행답게 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알게 하는 여행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기술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이유로 여행을 통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시간이 되기 위한 특별한 기술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린, ‘인간적 번영’을 이해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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