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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Nov 04. 2023

가볍게 살고 있습니다

공간의 여백이 주는 의미를 아시나요

  물건에 욕심이 많았던 나는 맘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똑같은 상품을 두 개씩 샀다. 하나는 지금 사용할 용도로, 다른 하나는 나중에 사용할 용도로 두 개를 구매했다. 어떤 것이든 한 번 사면 고장 날 때까지, 떨어질 때까지 쓰는 나에게 나중에 사용할 목적의 상품은 처음부터 사지 말아야 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중에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내 방과 내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는 늘 부족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진 물건을 버리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다 쓸 때가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차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새로 사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하는데 나는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새로 사기만 하니 물건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종량제 봉투 75리터 사이즈로 10개가 넘게 버렸지만 아직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너무 많다.


 물건이 많으면 그것을 정리하거나 보관할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할 공간이 줄어들게 된다. 이런 극명한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 때문이며 순간적인 소유욕이 이성을 이겼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소비자였다면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같은 종류끼리 분류하여 보관하고, 그 쓰임새를 판단할 것이다. 일단 나는 물건을 같은 종류끼리 분류하지 않았기에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을 소유하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이미 구매하려고 하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 재구매하여 같은 것이 두 개나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내가 소유한 물건의 리스트이다. 이것만 있으면 이미 소유한 것을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구매하는 실수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보유하고도 사용하지 않고 어디엔가 처박아두고, 어디 있는지도 몰라 다시 구매한다는 것은 애당초 그 물건에 대한 사용목적이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물건을 정리하면서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필요 있다고 판단되는 물건에 대한 리스트를 적어야 한다. 그 리스트 중에서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 20 퍼센트가 진정으로 내가 소유해야 할 물건이 된다. 그 이상의 것들은 모두 버리거나 정리해야 한다.


 한때 비싼 돈을 들여 구매한 책들이 한 번도 읽지 않은 상태로 중고서점에 정가의 10 퍼센트도 안 되는 금액에 팔 때, 왜 읽지도 않을 책을 샀는지 후회했다.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다시는 읽지 않을 책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했고,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기로 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책에 대한 맹목적인 소유욕은 없어졌고, 일정 기간 동안 대출할 수 있는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해서 일 년에 100권 이상도 읽어 봤고 지금은 일 년 365권의 책 읽기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센터 직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내 책들은 나의 소유욕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만약 내가 책을 읽고 그 안에 있는 지식과 지혜를 행동으로 옮겼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책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책을 좋아하고 책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 착각하였고 나의 공간은 그렇게 가치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물건으로 잠식당하고 있었다.


 어지럽게 공간을 차지해 가는 물건으로 뒤덮인 내 방처럼 내 마음은 점점 여유를 잃어버렸고, 감정의 여유도 생각의 여유도 없어졌다. 이사를 하면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일부 정리한 덕분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지만 아직 정리해야 할 물건이 너무 많다.


 내가 소유한 물건을 절대 나를 나타내거나 나를 대변해 주지 않는다. 그것을 사용하며 가치롭게 할 때 나를 나타내는 도구로서의 의미를 발휘하게 될 뿐이다. 이제 단지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절대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다. 물건의 효용성과 사용 목적, 사용 가치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한 후 구매할 것이다.


 또한 이전의 내가 가지고 있는 의미 없이 똑같은 물건을 한 번에 두 개 구매하는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그 물건을 소유해서 내가 편해지고, 나를 더 효율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도구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만을 구매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너무 많기에 더 이상 구매할 것도 없다는 게 문제이다.


 소유는 나를 만족시키거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물건으로 가득 찬 공간을 물건을 치우고 정리하여 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내 마음의 상태도 내 공간과 같이 넓은 ‘여백의 미’를 실현하도록 만들겠다. 그렇게 하여 내 정신도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는 공간의 여백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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