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선물한 아내 찬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도 금요일 저녁은 주말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산하고 늦은 시간까지 잠 못 이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와 함께 주말에 어디를 갈지 정하느라 고민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내는 주말 일정을 미리 알려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준비하도록 도와준다. 이번 주 일정은 토요일 자유시간, 일요일 본가 방문으로 정해졌는데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아내가 와서 ‘함안 갈 생각 있냐’고 물어본다.
함안은 가족 나들이로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어서 굳이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산 고분군’ 간다는 말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아내 회사 박물관에서 주최하는 문화 탐방 행사로 말이산 고분군을 비롯해서 함안의 문화유적을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너무 가고 싶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꼼짝 못 하시고 집에서만 계시는 장모님을 두고 혼자 즐길 수는 없었고, 내일 비 예보가 되어 있어서 가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조금 고민해 보고 안 가겠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미 모집인원을 모두 채워서 신청하신 분께서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가게 된다면 오랜만에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낼 것 같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서 책 보고 글쓰기를 할 생각으로 새벽 루틴을 해야 했기에 아내가 확인한다는 것을 듣기 전에 먼저 잠들었다.
토요일 새벽에 읽어나 활동을 하니 아내가 와서 문화 탐방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운 좋게도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 분들이 있어서 내가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밤늦도록 잠도 못 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알아봐 준 아내의 노력 덕분에 오랜만에 문화유산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장모님의 말에 의하면 올해 본 내 얼굴 중에 가장 신나 보인다는 표정이었다고 하실 정도로 나는 몰랐지만 엄청 설레었나 보다. 문화유산을 직접 보는 것은 언제 들어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특히 말이산 고분분은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서 더 의미가 특별해질 수밖에 없다.
‘아내 찬스’라고 해도 아내가 안 되는 것을 해준 것이 아니라 아내 덕분에 좋은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으로 가족 나들이 때는 가보지 못한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정말 기대된다. 왜냐하면 아내는 아직도 역사를 어려워하기에 나 혼자 좋자고 문화유산을 보러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코스는 무기연당~대산리석불~말이산고분군이었는데 조선시대에서 삼국시대로 역행하는 순서가 마음에 들었다. 현재에서 너무 먼 과거로 갑자기 가게 되면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고한 학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연 속에서 수양하며 인위적으로 꾸미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던 조선 사대부들이 정원을 만드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조선의 정원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대되었다.
무기연당은 조선 왕 중 가장 오랜 기간 재위했던 영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출신에 대한 엄청난 트라우마와 형을 독살했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영조를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갔던 ‘이인좌의 난’을 토벌한 의병 장수였던 주재성을 위해 건립된 것이 무기연당이다
임금에 대한 충절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조선 사대부의 정신과 같이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겠다 ‘는 신념을 보여주는 연못 주변의 나무처럼 강직한 선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둥그런 하늘과 네모난 땅을 표현한 유교적 세계관이 나타나 있는 조선의 정원을 보면서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성리학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불교 전파와 수용은 왕권 강화와 민생을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했으며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호국불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특히 성리학을 통치이념과 사회질서로 숭상했던 조선왕조는 승유억불 정책을 통해 불교를 탄압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많은 사찰과 불교문화제들이 훼손되거나 불타 없어지기도 했다.
대산리에 있는 삼존 석불은 목이 없는 석불이 있는데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조선의 승유억불 정책에 의해 파괴될 수도 있고 둘째, 수많은 외침에 의해 파괴되었거나 마지막으로 제작할 때부터 석조 불상은 목 부위가 가장 취약한 부위라서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쉽게 부서질 수 있다.
돌이라는 재질이 섬세하게 표현하기 어렵지만 의복의 상태나 허리끈까지 표현한 석불은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에 제작된 석불로 추정되며 중간에 있는 석불은 목뿐만 아니라 광배까지도 파괴된 세월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석조삼존상 인근 지역을 발굴해 보니 남북국시대의 기와와 고려, 조선시대의 흔적이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다 폐사된 절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승유억불 정책으로 많은 절들이 폐사되거나 평지가 아닌 산속으로 들어가게 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이었다.
점심을 먹고 올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말이산 고분군과 함안박물관의 문화유산을 보면서 연맹체의 한계를 보였지만 아라가야만의 불꽃 문양 토기와 말 갑옷,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아라홍련의 부활을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을 통해 사서로 남겨지지 못했던 가야의 위대한 흔적을 불 수 있었다.
문화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신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그동안 내가 보았던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으며 역사적 식견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자극을 받는 기회였다.
아내 덕분에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역사적 에너지를 충전하니 그 어떤 토요일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도 이런 좋은 기회가 있으면 꼭 알려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하며 다음에는 어떤 문화 탐방을 하게 될지 기대하며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