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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Nov 05. 2023

필사의 이유

쓰는 것을 넘어선 기쁨의 행위

책 읽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 중 하나가 책 내용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느냐였다. 책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망각하게 되지만 어렵게 배운 책 속의 지식과 지혜를 망각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하고 슬픈 일이었기에 어떡해서든 기억하고 싶었다.


 재독을 하는 법도 있지만 아직 재독 하는 여유는 없기에 책 읽기를 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는데 바로 책 내용을 베껴 쓰는 필사이다. 필사는 책이 귀한 시절부터 유용하게 사용되어 온 오래된 책 읽는 방법 중 하나이다. 한 예로 고대사의 역사를 알게 해주는 <환단고기>의 필사본이 존재하지만 그 진위 여부를 밝히지 못해서 역사적 사료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필사만을 따로 게시판을 만들어 포스팅하고 있는데 몇 개의 필사가 모이면서 점점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니 블로그 차트 순위가 급락했지만 처음부터 순위와 조회수라는 것이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큰 문제로 여기지는 않는다.


 필사를 따로 구분하여 콘텐츠를 올리니 좋은 점이 있다. 기존에는 필사를 하위 메뉴로 포함시켰기에 글쓰기 분량을 적당히 하고 필사하는 시간을 부여하다 보니 구분 후보다 글쓰기 량이 적었다. 그리고 필사를 빠르게 하려고 했기에 기억하기 위한 필사가 아닌 콘텐츠 포스팅을 위한 필사가 되어가고 있었기에 만족할 만한 필사는 아니었다.


 필사만을 위한 시간을 부여하니 어떤 부분을 필사할지 더 신중하게 고르게 되고, 글씨를 더욱 정성 들여 쓰게 되어 필사를 하면서 책 내용을 복귀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쓰면서 책 내용을 떠올리며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또한 필사한 사진만을 포스팅하는 것이 아닌 필사의 이유와 필사의 도구를 이야기하면서 왜 필사했고, 필사를 하게 도와준 도구에 대한 소개를 통해 문구 덕후의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구를 사용하면서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기쁨이다.


 이런 아날로그 기록법이 시대에 역행하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기록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 중 하나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온라인 공간에 기록하는 것도 좋지만, 종이와 펜을 이용해서 기록하는 행위가 내 머릿속의 기억하려는 욕망을 자극하고 보다 오랜 시간 책의 지혜를 알려고 할 것이다.


 필사를 통해 책을 더 오래 기억할 뿐 아니라 손으로 기록하며 체득하는 책의 지혜를 통해 나를 더욱 성숙한 존재로 만들고, 쓰는 행위를 통해 작가의 문장을 훔쳐서 훗날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문장을 재창조하는 모방의 행위로써의 필사를 하며 나를 한 뼘 더 성장시킬 것이다. 필사는 이제 나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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