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 Nov 08. 2023

익숙한 새벽 세시

익숙함이 주는 선물

나는 익숙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공간은 익숙함으로 채워져 있고, 익숙함으로 채우려고 한다. 혹여 낯선 공간에 가게 되면 엄청난 경계심을 발동하여 혹시 모를 위협이나 사고에 대비하는 방어력을 가동하기에 나는 익숙한 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는 말처럼 익숙함은 무기가 될 수 있다. 내게 익숙한 공간에서는 어둠 속에서도 물건을 찾을 수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익숙함은 시간을 절약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안정감을 주고 나를 편안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편안함은 간혹 게으름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너무 익숙하기에 지금 당장 시작하면 금세 끝낼 일도, 여유를 부리며 느릿느릿 행동하게 만들기도 하는 단점도 있다. 익숙하기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익숙하다고 대충 하거나 늦게 시작하는 것은 익숙함에 대한 배신이다.


 또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어버릴 때도 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너무 익숙한 나머지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상대방의 진심을 몰라줄 때가 있어서 원치 않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익숙함은 양날의 검과 같다. 내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내 앞에 장애물을 개척하기도 하고 나 손을 배기도 하기에 칼자루를 쥔 사람에게 결과가 달려 있다.


 유한한 인생의 순간 속에서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모든 순간이 소중하며 심지어 나를 괴롭고 힘들게 한 시간마저도 나에게는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다.  일부 사람들은 고통의 순간을 잊으려고 노력하지만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힘들었던 시간이다. 몸도 마음도 그 순간을 기억하기에 잊는 것은 힘들다.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더욱 힘을 발휘하는 고통의 순간은 나에게 상처만을 주지 않는다. 경험의 축적이 나에게 익숙함을 주는 것처럼 상처받은 영혼도 부정이 아닌 받아들임을 선택하는 순간 고통 속에 숨겨진 참뜻을 보게 될 것이다. 조개 속의 진주도 작은 상처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마음의 진주도 타인이 나에게 준 상처에서 생겨난다.


 익숙함은 나에게 여유를 선물한다. 상처되는 말과 행동도 내 마음의 그릇 안에 여유가 가득하다면 그저 지나가는 말과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빛나는 진주 알갱이로 가득 찬 내 마음 그릇이 있다면 어떤 가시 돋친 말도 순화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익숙함으로 무덤덤해지는 것이 아닌 익숙함이 주는 여유로 그것을 진주로 승화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 때 인간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단 한 번만 살 수 있는 인생의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익숙함이 있어야 불안과 공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익숙함을 넘어 나를 온전히 믿는 자기 신뢰감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매일의 시도를 통해 가능성을 높여가는 치열한 노력을 통해 나 스스로 익숙함을 만들어 가는 행위이다. 인생은 누구도 대신 살아 주지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오직 나만이 내 인생을 살 수 있다. 인생의 익숙함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뿐이다.


 어떤 익숙함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가진 익숙함이 아니라 낯선 것이 주는 불안함을 이제 익숙하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를 통해 인생은 더욱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익숙함이 주는 여유를 낭비하지 말고,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고 또 시도하자.


 인생은 짧기에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최후의 순간, 너무나 많은 후회의 물결 속에 휩싸여 고통의 익사를 하게 될 수 있다. 후회하기 전에 익숙함의 그늘을 벗어나 낯선 것이 주는 경계감을 뚫고 나의 지경을 넓혀 보자.


 세상은 용기 있는 자에게 기회를 선물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자의 그릇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