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 Nov 11. 2023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진짜 나와 본질을 향한 발걸음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 속에서도 나는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알려고 하는지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평생 살면서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알아차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알고 있다’는 것은 이미 경험을 했거나 배워서 인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기에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앎이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러지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알고 있다면 행동으로 증명해야 진정 알고 있는 것이 된다. 나는 그동안 안다는 것을 잘못 알고 있었고 내가 아는 것이 나는 알리고 증명해 준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것은 ‘진짜 나’가 아닌 착각 속의 ’ 가짜 나‘였다.


 ’ 진짜‘를 찾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데 그 노력의 결과물이 ’ 가짜‘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 참(된) 나‘도 결국에는 본연의 내 모습, 진정한 나를 알기 위한 접근으로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성향과 날개를 알기 위한 노력이다.


 ‘진짜 나’를 알기 위한 모든 것이 바로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림을 통해 자욱한 안개처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형국 속에서 ‘가짜 나’와 ‘진짜 나’를 분별할 수 있고 불안한 모습일지라도 한 걸음씩 ‘진짜 나’를 향해 걸어가는 모든 노력과 의지, 행동이 결국에는 알아차림이 된다.


 알아차림은 우리의 근본적인 경험이며, 알아차리고 있음이 알아차림의 근본적인 경험이다.  알아차림은 그저 스스로 존재함으로써 스스로를 알기에 ‘마음’이나 ‘주의’라는 형태가 필요 없다. 그저 알아차림은 자기 안에서, 자기를 통해서 스스로를 알 수 있다.


 “알아차리고 있음을 통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명상의 정수”라고 말하는 저자의 외침을 통해 알아차림에 접근해야 한다. 어떠한 형태나 생각, 느낌 등은 단순히 알아차림의 내면에서 활동하는 알아차림의 단편이자 동시에 그 자체이기에, 대상적인 경험만으로는 알아차림이 될 수는 없다.


 즉, 알아차림은 본질의 알고자 하는 노력이며 동시에 그 자체가 알아차림이 되는 과정을 통해 점점 본질에 다가갈 수 있게 되며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는 대상이 ’ 가짜 나‘가 아니길 바란다. 나는 더 이상 ‘가짜 나’에게 목매며 허황된 것을 쫓으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유한한 인생의 시간을 ’ 진짜 나‘가 아닌 ’ 가짜 나‘에게 투자할 수 없기에 알아차림으로 ’ 진짜 나‘를 만나 나를 위한 인생의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이런 투자는 직접적인 길(Direct Path)을 보여주며 본질에 대한 접근과 가치 있는 행동에 대한 결과를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정한 심플라이프, 휘바 핀란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