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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Nov 14. 2023

가을야구의 향연, 그리고 29년 만의 우승

간절한 염원이 현실이 되는 순간

1994년 이후 곧 올 것만 같았던 한국시리즈 우승의 순간을 다시 보기까지는 29년의 기다림이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수많은 무적 LG팬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개막경기부터 패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까지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기만을 응원했고, 다행스럽게도 그 염원대로 1위를 할 수 있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야구는 확률의 경기이기에 역대 정규리그 1위로 진출한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최종전은 7전 4선 승제로 진행되는데 7번의 경기 중 4번의 승리를 하면 된다. 그래서 첫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확률적으로 중요한데 첫 경기부터 철벽 마무리가 블론세이브를 하면서 아쉽게 졌다. 모두가 아쉬워하는 상황 속에서 염경엽 감독님의 인터뷰가 이상하리만큼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LG트윈스의 홈인 잠실에서 우승하기 위한 큰 그림이었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29년을 기다린 팬들은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하지 못 하는 내 모습이 나도 우스웠지만, 떨리는 마음에 차마 경기를 볼 수는 없었다. 이런 큰 경기는 소리만 들어도 대충 경기의 진행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소리에 집중하며 두 손 모아 응원했다.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선취점을 먼저 내자 조금 안심이 되면서 편하게 경기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에 오직 승리만을 위해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이 혹여 부상을 입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해질 만큼 호수비라는 표현을 압도할만한 허슬플레이가 나오면서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된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내가 경기를 보면 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잠자코 경기 중계를 들으면서 승리를 응원했다.


 너무나 간절히 기다린 순간이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기뻐서 소리를 지를 힘도 없이 눈물이 났다. 29년의 기다림이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조차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소개팅 나왔을 때 상대방 남자가 LG트윈스, 리버풀 팬이라면 절대 배신하지 않으니 꼭 잡으로는 말이 나올 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린 분에게는 정말 감격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 엘린이가 되었을 때 너무 기뻐서 브로마이드 북을 밤새도록 보면서 선수 이름을 외우던 일, 부산 사직야구장에 LG트윈스 잠바를 입고 갔다가 부산아재들한테 욕먹고 소주병에 맞았던 일, 가족들과 리모컨을 가지고 채널 다툼을 한 것과 서울 출장을 마치고 7회 잠실야구장에 잠시 가셔 직관을 했던 일 등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29년 동안 간절히 원했던 것이 드디어 이뤄졌다는 사실에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중계방송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 화면을 보니 모두가 얼싸안고 응원가를 목 노아 부르며 노란 목도리를 흔들고 있었고, 선수들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것이 하나 된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다시 눈물이 났다.  그동안 이런 팬들의 염원을 알아 우승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선수들, 부담감 속에 제 실력이 나오지 않아 힘들어했던 감정들이 눈 녹듯 없어지며 뜨거운 눈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야구를 너무나 사랑하였던 왕회장님께서 남기신 우승 축하주와 롤렉스 시계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는 이제 궁금하지도 않다. 모든 선수가 다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기에 누가 받던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승 트로피를 들었기에 29년의 한은 사라졌고 베테랑과 젊은 선수들의 조화로 이루어낸 정규리그 1위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내년에도 보여줄 수 있도록 더 간절히 응원할 것이다.


LG트윈스의 2024 시즌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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