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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Dec 07. 2023

두 가지 싫어하는 음식

싫어하는 것도 결국에는 나에게 좋은 것이더라

나는 미식가는 아니지만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어느 순간부터 맛이 주는 쾌락보다는 배고픔이라는 욕망을 채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입의 즐거움을 위한 먹기보다는 배고픔을 해결하고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는다. 이런 의미에서 라면은 나에게 있어 가장 효율적인 먹거리였다.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한 번 심하게 체해서 죽기 직전까지 가게 했던 떡과 죽은 웬만하면 먹지 않는다. 특히 떡은 가래떡을 제외하고는 안 입에 대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는데 시루떡을 잘못 먹고 그 자리에서 급체해서 민폐 하객이 됨은 물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어떻게 귀가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나마 스스로 트라우마를 깨기 위해서 가래떡을 먹는 연습을 했는데, 다른 떡들은 한 입 먹는 순간 옛날 기억이 떠올라 입에 있던 떡을 뱉게 만들어 몇 번 더 시도해 봐도 상태가 지속되어서 그냥 떡 먹는 것을 포기하였다. 한국 문화 속에서 잔칫날에 빠지지 않는 떡은 나에게 있어 말 그래도 ‘그림의 떡’이 되었다.


 떡보다 더 먹지 않는 음식은 죽이다. 일단 식감이 좋지 않고, 아플 때 먹는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들어 있어 사경을 헤맬 정도로 아파도 안 먹으면 안 먹었지 죽은 절대 먹지 않았다. 그리고 ‘죽 쑨다’는 표현도 좋아하지 않아서 죽이란 음식을 좋게 보지 않은 내 시선도 죽을 싫어하는 것에 한몫한다.


 요새 며칠 동안 아프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너무 힘이 없어 기운이 없었다. 곡기를 끊어서 축 처진 채 앉아 있으니 장모님께서 내가 죽을 싫어하는 것을 알지만 죽을 만들어 주셨다. 이른 새벽부터 만들어주신 정성을 봐서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먹지 않고 그냥 출근했다.


 하루 종일 물만 마시며 빈속의 채우다 집에 오니 따뜻한 죽 한 사발이 차려져 있는데 이것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나에게는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오랫동안 죽을 거부해 왔던 나의 식욕도 거부하지 못하고 손도 씻지 않고 자리에 앉아 죽을 허겁지겁 먹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면 참 좋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때론 싫어하는 일도,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기에 아프기 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싫어하는 죽을 먹고 힘을 내야 했다.


 아직도 울렁이는 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장, 그리고 두통까지 왔지만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자 인생의 시간 여행자로 생존하기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 식감도 좋지 않고 먹어도 금세 배고픈 죽이었지만 내 속을 편안하게 해 주고 독한 약을 먹어야 하는 위장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기에 오늘을 버텨낼 힘을 얻을 수 있다.


 그토록 내가 싫어했던 것도 결국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다. 또한 내가 싫어한 이유도 나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 합리화의 명분이자 트라우마로 굳이 내가 나를 괴롭히지 않아도 될 허상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프게 된 가장 근본적인의 원인은 평소 루틴대로 행동하지 않고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보다 내 욕심을 앞세워 빠르게 목표 달성만을 하려고 했던 어리석은 욕망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 년 365권의 책 읽기와 글쓰기를 조기에 달성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11월 말에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던 것이 화근이었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함이었는지 나의 글쓰기 영역의 확장을 위함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나 스스로 누구를 위한 목표였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욕심을 버리고, 매일 지속하는 힘과 꾸준함이 바탕이 된 순리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인생의 방향을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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