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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Dec 13. 2023

더는 나를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

진짜 인생을 산다면 증명 따윈 필요 없다

뼛속까지 이과생이라고 말하는 나는 글쓰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다가 우연히, 그것도 정말 우연히 글쓰기를 하게 되었고, 지금도 글쓰기의 삶을 동경하며 매일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표현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대대분 한 문장 이내 축약하고,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겨했던 내가 글쓰기를 한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과적 사고의 기반은 과학에서 말하는 가설을 증명하는 과정에 있다. ‘가설’은 거짓 명제로 아직 증명되지 않은 이론으로 내가 생각한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통해 이론이 맞는지 증명해야지만 참 명제가 되며 이론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과학적으로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험군과 대조군을 만들어 실험을 진행해야 하고, 특히 실험군과 가설의 중심이 되는 단 하나의 차이가 있는 대조군을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 전공 수업 중 나는 이 대조군에 대해 엄청난 매력을 느꼈고, 대조군을 통제하는 과학적 논리력과 증명의 과정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하얀색 실험복을 입고 눈앞의 실험 과정에 집중하던 대학원 박사과정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며 한때 과학자의 길을 꿈꾸기도 했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업에 매진해야 하는 고된 길을 가기에는 너무 부담이 되었다. 벼를 연구하시던 한 선배는 벼의 싹이 나지 않아 싹이 나기를 3년 동안이나 기다렸다는 말을 듣고 그런 인내심이 없었던 나는 지레짐작으로 미리 포기한 것일 수도 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이론을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하여 타당성을 밝히면 새 이론의 창시자로 인정받는다. 이런 인정을 받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좁은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실험하기를 반복하여 받는 엄청난 보상이다. 한 간에 인턴이 새로운 논문의 공동저자로 등재되었다는 뉴스는 순수한 과학의 업적을 무시하는 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인정의 결과를 공유하기도 한다. 부단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고, 본인의 노력보다는 주변의 도움으로 얻은 결과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인정받는다는 것에 집착해서 남의 노력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위장하는 경우도 있다.


인정이라는 것은 대부분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된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인정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가치관을 어쩔 수 없이 또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도 발생한다. 나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타인의 가치관을 따르게 된다면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의 손에 넘어가게 되어 버린다.  


 내가 사는 인생, 나만이 살 수 있는 인생인데 인생의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의 손에 있다는 것은 내 인생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마치 인생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과도 같기에 인생의 과정을 통해 이 가설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증명으로 오직 내 기준에 의해 진행되어야만 하는 과정이다.


 이제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지 않고, 나에게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조금 늦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불완전하지만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나도 내 인생을 스스로 증명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내가 인정하는 인생이라면 굳이 타인에게 증명할 필요도 없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단 하나의 ‘진짜’ 인생이기 때문이다.


 오직 삶으로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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