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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Dec 27. 2023

대화의 정석

대화는 관심에서 시작한다

나는 과묵한 편은 아니지만 교육담당을 하던 시절에는 말을 퇴근 이후 다음 날 출근하기 전까지  말하지 않을 정도로 말을 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하루 종일 말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었지만 가족들은 나를 과묵한 사람으로 오해했었다. 하루 종일 말하다 보면 퇴근 무렵에는 진이 빠진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던 적도 있었다.


 당시 나는 일방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었지, 상대방과 호흡하며 대화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대화를 많이 했다고 할 수 없지만 나는 내가 말을 잘하고 대화에 능숙하다고 착각했었다. 이는 대화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착오였는데 대화는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 통행이다. 나처럼 혼자서 떠드는 것은 대화가 아니며, 상대와 호흡을 맞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화답하는 것이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화자, 청자 그리고 대화의 소제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청자는 있었지만 그들의 반응을 보고 변화를 주는 대화가 아닌 속사포처럼 나 혼자 쏟아내는 일이 많았기에 지금도 간혹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지 못하고 혼자 말의 주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는 대화가 되기는커녕 내 말을 듣기만 해야 하는 상대방도 점점 지쳐갈 뿐이다.


 <대화의 정석>을 통해 지난날 나의 대화 습관을 살펴보니 문제의 원인을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주도했던 모든 대화가 이어지기 어려웠던 원인은 감정이 아닌 결과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감정에 집중해서 물어보면 대화는 답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무한대로 연결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친구와 만나면 3시간 넘게 이야기하는 아내를 보면서 감정에 집중한 대화는 얼마나 진솔함을 나눌 수 있는지 알게 한다.


 대화의 달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솔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 앞으로는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묻고, 감정에 집중할 것이다. 이런 대화의 관심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화에 집중하게 만들고 내면의 진솔한 소리를 내게 만든다. 상대방을 탐색하며 내는 대화가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담긴 대화는 점점 서로에게 집중하게 만들고 서로의 이야기 속으로 동화하게 한다.


 업무적으로 해야 되는 대화도 그 시작은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대화에서 출발하기에 자녀에게도 ‘야, 너‘와 같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호칭부터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집에서 존중받는 아이가 밖에서도 존중 받을 수 있기에, 내 아이가 어디서나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나 먼저 대화에서 아이에게 존중감을 주어야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곧 나이며, 그 언어를 통해 나의 됨됨이를 알게 한다. 내가 비속어와 욕설을 사용한다면 내 존재 자체가 비속어와 욕설이 되기에, 언어의 사용부터 단속하며 나를 알릴 수 있는 언어를 쓸 것이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대화에 집중하며 존중감이 담긴 언어를 사용한다면, 나도 존중받고 동시에 내 존재도 존중받을 수 있다.


 물론 대화의 목적이 존중받기 위함만은 아니겠지만 누군가와 대화할 때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어느 누구도 그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을 시작으로 경청의 자체를 통해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면 그것이 바로 대화의 정석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하면 애쓰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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