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알 수 없는 동물의 속사정
‘용인 푸씨’ 푸바오의 중국 귀환이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이 푸바오를 보기 위해 에버랜드에 몰리는 것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이 정도로 동물에 집중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요즘 웬만한 가정집에서도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기에 동물에 대한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보다 자연스러워졌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개나 고양이는 야생의 상태로 살아가던 동물이었지만, 어느 순간 인간의 옆에서 곁을 내어주고 배를 보이며 인간에게 복종하고 길들여진 가축이 되었다. 인간의 재산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추수한 곡물을 쥐로부터 지키는 파수꾼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인간의 곁에서 조력자로 반려동물로 살아온 개나 고양이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들만의 신비로운 영역이 있지만 인간은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말하곤 한다. 특히 골든 리트리버처럼 순한 견종일수록 자신의 본성을 거스를 정도로 불편한 상황도 인간을 위해서 감내하는 모습이 리트리버의 본성인 양 말한다.
하지만 ‘천사견’이란 별명을 가진 리트리버도 길들여진 것일 뿐 결국에는 본능에 지배받는 동물이란 사실은 변함없다. 그리고 그 본능은 리트리버만 알고 있는 신비로운 세계이다. 따라서 인간이 동물들을 키우면서 문제라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 인간의 눈에만 문제이지 동물들에게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인간의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길들여진 동물들도 이러한데 야생에서 사는 동물들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 인간은 그저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자로 그들의 생활을 보기만 하면 되는데 인간은 그들을 평가하려는 행동을 한다. 그들의 속 사정도 모른 채, 관찰한 내용을 그들과 상의하지 않고 연구 발표하면서 마치 그들을 아는 척 행동할 뿐이다.
야생동물은 말 그대로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이 그들의 지상과제이고,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하고 번식을 하며, 포식자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화려한 외형을 가진 조류의 수컷은 숲 속에서도 너무나 눈에 잘 보이지만 포식자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 암컷의 눈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계에서는 암수의 비중이 이상적이지 않다.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현상에 의해 암컷이 많을 때도 있고 수컷이 많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방법을 이용해 번식을 하는데 한 예로 수컷 조류 부부에서 볼 수 있는 ‘탁란’이라는 현상이다. 암수의 번식에서 태어난 위탁란을 수컷 부부에게 전해져서, 알에서 나온 새끼는 각인들 통해 부모로 인지한다.
조류뿐만 아니라 다른 종에서도 동성애의 행동이나 트랜스젠더의 모습은 심심치 않게 관찰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동물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인간이 하나의 현상만을 보고 그들의 동성애 행위를 매도하고 자연계에서 사라져야 할 추악한 존재로 치부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다. 동물이 되지 않고 그들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오직 암컷과 수컷의 매칭만 존재하는 자연계라면 지금처럼 그 많은 개체들이 번식하고 새끼를 키워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낼 수 없다. 동물에게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고, 인간은 그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방식을 대체할 수 없으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그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도 자중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자연의 선택과 방식이 생물학적 풍요를 가져왔다. 더 이상 어리석은 인간의 개입과 표면적인 관찰에 의존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지구의 구성원으로 각자의 서식지를 지키며 살아가는 공존의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