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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an 07. 2024

여행의 말들

여행하면 현명해진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건축물이 아닌 바로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이다. 특히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순간은 마치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이 되어 어디를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이번 기회에 모든 곳을 다 가려는 무리한 코스를 정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가장 신나 있는 어른의 모습을 한 아이의 천진무구함이 떠오른다.


 편안한 집을 떠나 낯선 곳에 가서 현지인의 눈에 비치는 이방인이 되어 여행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여행을 위해 사는 아내를 만나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생활 방식이 궁금해졌고 그들의 문화가 어떻게 그들의 행동 양식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다. 특히 그들이 먹는 음식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가장 궁금했었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마다 박물관과 현지 시장을 꼭 방문한다. 기회가 된다면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벼룩시장에 방문해서 그들의 물건과 흥정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본전을 하는 경험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여행의 목적은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기에 이런 현지인의 생활을 구경하고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여행을 준비할 때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여행지에 대한 책을 반드시 본다. 전문 여행 작가의 눈에 비친 관광 명소와 현지의 이야기는 그곳을 처음 방문하는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이자 코스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그리고 1차 여행 코스가 결정되면 그 코스를 먼저 여행한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며 가장 최신 정보를 수집하고 어떻게 가야 할지, 주차 관련 정보 등을 확인하면서 1차 여행 코스를 수정하여 2차 여행 코스를 만든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레는 마음은 이미 여행지에 도착해서 새로운 광경과 풍경을 보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한다.  나에게 있어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이미 절반 이상의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여행지로 떠나는 순간부터 온몸을 피로감에 물들게 할 일들이 많아지겠지만, 그것 또한 여행의 묘미이다. 평소보다 많이 걷고, 무거운 짐을 메고 낯선 곳을 떠돌아다니는 이방인으로 현지인의 경계로 가득 찬 시선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여행자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힌다는 말이 있지만 꼭 여행을 간다고 견문이  무조건 넓어지는 것이 아닌 여행에 대한 태도에 따라 견물의 넓이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온 세계의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는 차인표 님도 그토록 가기 싫었던 인도 봉사 여행 중에서 한 소년이 내민 악수 때문에 마음의 경계가 녹아내려 진심으로 그들을 안아주고 품었다는 말처럼 여행자는 온전히 여행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여행이 단순히 관광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굳이 먼 거리를 떠나 그곳을 여행하는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여행은 직접 보고 만지며 느끼는 것에 진정한 매력이 있다. 그동안 사진으로 보아왔던 자연경관을 사진 찍는 것에 열중할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오랫동안 관찰하여 마음에 담아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행하고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여행 중 찍은 사진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직접 보고 만진 경험이다. 이 값진 경험만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이자, 여행을 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유럽 배낭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아등바등 애쓰다 정작 여행 중 피로감으로 잠만 자고 돌아왔다는 한 대학생의 이야기는 본질을 벗어난 여행의 준비 과정이 여행의 가치를 얼마나 훼손하는지 알려주는 것처럼 여행은 이미 준비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여행 중 체험한 경험은 내면을 채우고, 내 머릿속의 지식과 연결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의 생각과 시야를 넓혀준다.


 각자의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사진이 남는 것이 아닌 가슴 한편에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마음속을 가득 채울 무엇인가를 찾고, 그것을 느끼며 그 느낌 그대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큰 축복이자 다음 여행을 미리 준비하는 것과 같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의 묘미가 무엇이 될지, 또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여행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 이 태도가 바로 여행의 말들이다.



“여행하면 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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