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가 할 말이 있다며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성까지 붙여 이름을 말하지 않아서 안심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 아이가 쉬는 시간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는다고 하며 아이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이의 훈육은 주로 내가 하기에 내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아이는 긴장하기 일쑤인데 어제도 아이가 혼나서 더욱 그러는 것 같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훈육이라는 포장으로 아이가 나의 잘못된 감정 표출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감정에 따라 몸도 반응하고 행동도 변하기에 내면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몸과 행동이 결정된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긍정적인 감정을 담아 내면을 가득 채우는 것이 중요한데, 현실에서 이런 말에 이상향에 가까울 정도로 정말 쉽지 않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침착하게 낮은 톤으로 이야기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아이의 행동을 보면 이내 목소리는 커지고 높은 톤으로 말하는 나와 마주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내 안에 어떤 기준이 들어 있길래 아이에게 화를 내고, 쉽게 가라앉지 않는 화라는 감정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내 감정 때문에 아이가 외로움을 느껴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나로 인해 아이가 느끼는 외로움은 있지 않은지 살펴보았다. 어제 아침 아이와 짧은 대화를 하며 왜 그렇게 있었는지 물어보았는데, 아이는 속마음이 틀기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그냥’이라는 대답으로 회피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가만히 앉아 있고 싶을 때는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말하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애정의 표현으로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해서 아이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어 주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며 휘파람을 불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의 진짜 감정이 외로움이 아닌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외로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져갔다.
내 브런치 서랍장 속에 오랫동안 완성하지 못한 체 저장되어 있는 글이 있다.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에 대한 글인데, 주제 자체만으로도 접근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쉽게 완성되지 않고 몇 번의 퇴고를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발행을 주저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을 완성하기 위해 몇 권의 심리학 서적을 읽고 나름대로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연구했지만 위대한 철학자들도 풀지 못한 것은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이며 이를 철학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는데 바로 ‘단독자’이다. ‘단독자(Der Einzelne)’라는 말은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거의 모든 실존주의에서 공통적인 입장을 취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하나의 특정한 주관적인 존재로 보았고 그 존재로서의 출발점을 단독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약하면 도태되는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표출하면 안 된다고 느끼고 진짜 감정을 숨기는 연습을 했다. 약해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이를 더욱 부추겼고, 얼굴 표정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이거나 과도한 제스처를 하기도 하며 진짜 감정을 감추고 가짜 감정으로 상대를 현혹시켰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이란 말이 생긴 것 같다.
흔히 감정은 표정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표면 감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표면 감정의 기저부에는 드러나지 않은 표면 감정과 동전의 양면인 이면 감정이 존재하고, 이면 감정 아래에는 심층 감정이 존재한다. 보통의 경우 이면 감정과 심층 감정의 존재 여부도 파악하기 힘들고 각각의 감정이 서로 역설적으로 대립한다는 것도 인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육아문제로 갈등 관계에 있는 부부의 경우, 아내는 육아에 무관심한 남편을 향해 ‘화’라는 형태의 표면 감정을 드러내지만 그 이면에 남편의 무관심과 관계의 단절 등이 불러온 불안과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 불안과 두려움 아래에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한 체, 점점 아줌마가 되어 간다는 사실에 대한 수치심을 느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경우 ‘화’는 가짜 감정이고, ‘수치심’이 진짜 감정이다.
외로운 존재인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 진짜 감정과 마주할 수 있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진다면 외로운 존재로 회기하여 가짜 감정으로 포장된 자신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감정과 마주할 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외로움은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 반드시 가져야 할 감정이며, 외로움은 진짜 감정이 담겨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이다.
그동안 새벽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왔기에 진짜 나와 진짜 감정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고 지금도 그 즐거움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매일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며 진짜 나와 대화하며 진짜 감정에 집중할 때 나만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모습으로 세상에서 존재하며 나만의 영역을 만들 수 있으며, ‘가짜’가 아닌 ‘진짜’에 집중하는 내가 되어 진짜 감정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글루틴
#팀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