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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an 30. 2024

벨트가 끊어졌다

명품 인생을 살고 싶다는 욕망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바지를 입다가 살짝 당황했는데 벨트가 터졌기 때문이다.  조금 늦어서 옷장 속에서 다른 벨트를 찾아 착용하고 나왔지만 익숙한 것이 아니라 조금 어색하였다. 허벅지가 두꺼운 나의 독특한 체형 때문에 맞는 바지가 드물어 기성복을 입는 경우는 무조건 벨트를 해야만 한다. 항상 바지허리에 원래 한 몸인 것처럼 붙어 있는 벨트를 오랫동안 사용했기에 가죽이 해져서 끊어진 것이다.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도 주로 청바지를 즐겨 입다 보니, 갈색 가죽 벨트만큼 잘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이 벨트만 주로 착용했는데 대략 15년 정도 사용한 것 같다. 한 5년 전부터 회사의 규정이 변경되어 자율복장이 된 후로는 거의 매일 이 벨트만 착용했으니 끊어졌어도 벌써 끊어졌어야 했다. 물론 다른 벨트가 있기도 하지만 유독 이 벨트에 정감이 가서 이것만 사용했다.


 소유욕이 강한 나는 물건을 사면 고장 날 때까지 쓰고 정말 애착이 가는 물건은 수선을 맡겨 고쳐 쓰거나, 업체에 수선이 불가한 상황이라면 내가 직접 수선을 할 정도로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며 애착이 아닌 집착이라 놀리기도 하지만 내 손때가 묻은 물건을 사용할 때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놀림에도 내 취향을 바꿀 생각은 없다.

 혹시나 살이 쪄서 배가 나와 터졌는지 확인해 보니 다행히 배 때문이 아니라 벨트가 터진 것은 아니고 벨트가 오래되어 가죽이 삭아서 터졌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벨트 버클과 가죽 허리띠의 연결 부분이 끊어졌고 버려도 될 만큼 가죽이 해져 있었다. 나름 이탈리아 명품 벨트였기에 지금까지 버틴 것이라고 생각한다.


 벨트가 터졌을 때 깜짝 놀랐던 이유는 혹여 뱃살 때문이었는데 요즘 건강관리에 공들이고 있어 작은 신체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건강관리의 척도 중 허리둘레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는데 배가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건강에는 적신호이기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배는 인격이 아닌 관리의 부재이자 건강의 적신호일 뿐이다.


 움직이지 않고 먹기만 하면 쉽게 뱃살이 찌는 이유도 복부에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근육이 잘 발달되지 않기 때문인데, 날씬한 허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하는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복근 운동을 별도로 해야 초콜릿 모양의 식스팩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정말 운동할 시간이 없는 날은 복근 운동만이라도 꼭 하는데 아저씨처럼 나온 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끊어진 벨트를 보면서 더 뱃살을 줄여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15년의 시간을 버틴 벨트의 생명력에 감탄했다. 브랜드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회사의 제품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장인이 수제작으로 만든 명품 가죽 벨트라는 말에 구매한 것인데 정말 장인의 손길을 느낄 정도로 만족스럽게 사용했다.


 인간이나 물건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늙고 물건은 삭는다. 하지만 명품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빛낼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사용감에 의한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가죽 벨트 본연의 능력을 잃지 않았기에 15년이란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


 유명한 명품 브랜드는 아니어도 이런 품질의 벨트는 다시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명품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제품을 찾아보겠지만 일단 끝까지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가죽 공예용 실과 접착제를 주문했다. 아내는 그 돈으로 새 벨트 사는데 보태라고 하겠지만 나는 손때 묻은 내 물건이 더 좋다.


 필요 없는 것이 더 많다는 점이 문제지만 매일 하나씩 정리하고 있으니 내년 이맘때는 정리된 나의 공간에서 더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며 내 인생도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나도 이 벨트처럼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보다 먼저 내가 스스로 명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 인생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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