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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Feb 04. 2024

단독자

성장을 이끄는 고독의 시간

가끔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사람들과의 대화는 좋아하는 내게 이렇게 혼자 있고 싶은 때는 그 누구가 전하는 위로의 말로 통하지 않고 그 어떤 조언도 필요 없이 말 그대로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멀리 떠나 한 달 정도 머무르다 오고 싶을 때도 있지만 고독은 공간의 문제보다는 시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고독이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이유는 새벽 독서를 하면서 내면에서 울리는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졌기 때문이다. 방해받지 않고 까만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새벽하늘 아래, 별빛도 보이지 않는 고요함 속에 오직 내가 있는 공간만이 환한 불빛으로 채워져 있고 그 안에서 나는 작가의 질문을 발견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작가가 내게 물어온 질문은 간단하게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 작가는 나에게 단답형의 질문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정답이 있는 질문도 하지 않는다. 정답은 없지만 나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삶의 지혜와 신의와 배신 속에 알게 된 인간관계에서 알게 된 느낌이 더해져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진솔하고 담백한 답을 찾는다.


 충고가 아닌 조언으로 이미 내가 경험했던 상황 속에 있는 이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정답이 아닌 답을 찾으며 작가의 질문을 곱씹어 본다. 새벽 독서를 통해 이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각을 해야만 하는 고독의 시간이다. 그 누구도 답을 찾는 것을 도와줄 수 없고 오직 나만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생각한다고 해서 바로 답이 떠오는 것이 아니기에 며칠을 고심하고 고심하며 찾은 답도 있다.


 이런 사유의 시간은 절대 고독감을 느낄 수 없다. 고독감은 혼자일 때의 기분으로  혼자만의 상태를 뜻하는 고독과 정의적 차이가 있어 고독과 고독감은 같은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것을 안 순간, 알량한 기분을 주는 고독감에 속아 고독을 바라보는 색안경을 벗기로 했다.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으로 고독, 그 자체만을 봐야 한다. 왜냐하면 고독은 성장에 대해 갈구하고 성장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이기에 혼자만의 상태에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볼 수 있다. 자신을 모르고는 절대 성장할 수 없기에, 성장을 하고 싶다면 성장을 해야 한다면 반드시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을 마주해야만 한다. 이 시간은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사물과 대상을 바라보게 하고, 외부의 소리가 아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고독은 이런 눈과 귀를 가지게 한다. 눈이 없다면 볼 수 없고, 귀가 없다면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질을 보는 눈과 본질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존재하기 않고 오직 나만이 홀로 존재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고독이 본질이 아닌 것과 외부의 외침에 오염된 나의 눈과 귀를 정화시켜 준다.


 성장하고 싶다면 고독해지자. 고독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온전한 고독의 순간을 누리자. 본질이 무엇인지 볼 수 있고 내면의 소리에 무엇을 말하는지 듣게 된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고독의 순간에 누릴 수 있는 성장의 촉진제는 성급함과 비교가 주는 허황된 꿈이 아닌 매일 한 뼘씩 성장하게 도와주는 축복의 물질이다. 나는 고독한 존재가 되어 이 물질 안에서 온전한 나와 마주하여 나만의 성장 속도로 나만의 꿈을 향한 몸부림을 할 것이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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